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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박(梁大撲), 「금강산기행록(金剛山紀行錄)」 , 『청계집(靑溪集)』

상세정보

■ 양대박(梁大撲, 1543~1592):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사진(士眞), 호는 청계(靑溪)·송암(松巖)·죽암(竹巖)·하곡(荷谷).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배웠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담양으로 가서 고경명(高敬命)을 만나 맹주로 추대하고, 북상하여 5월에는 전주에서 의병 2천 명을 모았다. 고경명과 함께 금산으로 갔는데 고경명은 금산에서 왜적을 맞아 싸웠고 양대박은 아들 양경우와 함께 진산을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의병을 모을 때의 피로로 진중(陣中)에서 병을 얻어 진산에서 죽고 말았다.


■ 양대박(梁大樸)은 남원 출신인물로 어렸을 때부터 지리산 밑에서 성장하여 산수에 노니는 일에 열정을 바치기도 했다. 1572년(선조 5) 여름 4월에 양대박은 상소문 초안을 교정하는 일로 서울에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승진하여 금강산을 다스린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급히 휴가를 얻어 아버지를 모시고 4월 3일 금강산으로 향했다. 횡성 홍천을 지나 4월 7일에 청평산을 찾았는데, 그 날의 일정부분만 실었다. 


■ 번역문과 원문
  7일 임술(壬戌), 날씨 맑음. 새벽에 수레가 곧바로 청평산으로 향하게 했다. 마침 우리 고향 사람 최곤(崔崑)은 수령의 친족으로서 객관에 묵으며 노닐고 있은 지 여러 달이 되었는데, 우리가 풍악산으로 놀러간다는 말을 듣고 동행하기를 청한다. 그가 비록 글재주는 없으나, 그래도 세속을 벗어날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길동무를 얻은 것이 매우 기쁘다.
  늦게 소양강을 건넜다. 강가에는 정자가 날아갈 듯이 서 있고, 정자 주변에는 키 큰 나무들이 있으며, 난간 밖에는 깨끗한 모래가 펼쳐 있어 경치 좋은 곳이라고 할만하다. 나루지기가 맞이하여 배를 끌고서 호위하며 강을 건넜다. 우두사(牛斗寺)를 지나 강을 따라 사십여 리를 가노라니, 산은 갈수록 높아지고 물살은 더욱더 빠른데 구름과 연기가 점점 자욱해지고 수풀의 나무들은 빽빽하다. 비스듬히 동쪽으로 난 길 하나가 바로 석문(石門)을 통과한다. 지나는 곳마다 선경이 아닌 곳이 없다.
  동구에 들어간 지 두어 걸음도 안 되었는데 이어진 봉우리와 첩첩이 싸인 묏부리가 깎아지른 듯이 서서 만 겹으로 에워싸고 있다. 층진 바위와 어지럽게 흩어져 널려 있는 돌들이 쭈그려 앉은 듯, 튀어 오른 듯 하고, 기이한 꽃들과 풀들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짙은 향기를 낸다. 환희현(歡喜峴)을 지나 폭포 옆의 대(臺)에 앉아서 감상했다. 대 주변 소나무는 검푸른 빛을 띠며 하늘에 닿아 있다. 소나무 사이로 아래위에 절벽이 있는데 한 줄기 폭포수가 층층이 거꾸로 쏟아져 내린다. 비록 여산(廬山)의 천 척 폭포라도 그다지 양보할 것이 없다. 나무에 기대서 물끄러미 바라보노라니 한기가 사무쳐 와서 심신은 상쾌하나 머물 수 없다. 절에 있는 스님 오륙 명이 합장을 하면서 나와서 맞이하고 손님들을 위해 앞장서 안내해 준다. 호금(胡琴)과 철적(鐵笛) 소리가 언덕과 골짜기를 찢을 듯이 울리는데, 말고삐를 늦추고 천천히 가노라니 마치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길 왼쪽에 영지가 있는데, 사방이 백보쯤 되고 거울 같은 수면에 바람 한 점 없어 맑은 물결이 반짝반짝 빛나니 온 산의 봉우리와 구렁은 그림자를 물속에 거꾸러뜨린다. ‘영(影)’으로 이름 한 것이 부끄러울 게 없다. 못 주변에 적목(赤木) 수십 그루가 있다. 크기가 소 한 마리를 가릴 만하니 또한 세상에는 없는 것이다.
 운수교(雲水橋)를 건너 보광문(寶光門)에 들어가니, 바로 청평사의 절 문이다. 문 안에 대(臺)가 있는데, 대 좌우에 열 척쯤 되는 옛 비석이 서 있으니, 진락공(眞樂公) 이자현(李資玄)이 지은 것이다. 지금까지 수백 년이 되었는데도 자획(字畫)이 완연하여 어제 쓴 것과 같아서 하나하나 다 읽을 수 있다. 이공(李公)은 고려 때의 학사(學士)다. 젊은 나이에 벼슬을 버리고 산속에 은둔하며 평생토록 골짜기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니, 그 고상한 마음씨와 우아한 흥취는 비록 진은(眞隱)에 견주어도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그가 한 일을 공정히 따져보면, 선설(禪說)을 끔찍이도 좋아하여 이미 식암(息庵)을 지었고, 또 말을 끊고 단정히 앉아서 몇 달 동안 나가지 않았던 등의 일은 공(空)을 배우는 무리와 거의 다를 것이 없다. 게다가 거처하던 방을 문수원이라고 이름 했으니, 더욱 가소로운 일이다.
  범각(梵閣)을 지나 법당으로 들어가니, 처마에 편액이 걸려 있는데 능인보전(能仁寶殿)이라고 되어 있다. 아로새긴 창과 수놓은 합문(閤門), 그리고 채색이 화려한 은빛 깃발이 사람의 눈을 어질어질하게 만든다. 서쪽에는 극락전이 있는데, 그 토목의 공교로움과 주옥의 번화함은 화려하여 비할 것이 없다. 빈 처마 바깥을 모두 황금으로 칠했는데, 겹겹의 기둥과 층진 난간이 모두 용트림 무늬와 비단 자리를 펴놓았으니, 이것은 바로 요승 보우(普雨)가 창건하여 살던 곳이다. 보우는 명리를 피하여 부처를 배우려고 불교에 몸을 의탁하였으나, 능히 망령된 생각을 없애고 청정함을 지키지 못해서 옳지 않은 도(道)로써 서울에 출입하면서, 안으로는 환관과 결탁하고 밖으로는 권간들에게 아첨하여, 헛되이 국고를 소비하고 제멋대로 산골짜기를 메워 백성들을 그가 시키는 일에 몰려들게 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귀신과 사람이 모두 격분하여 그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주지승 일주(一珠)가 가사 장삼을 입고 와서 절을 하니, 바로 십년 전 운산(雲山)에서 옛날 알던 사람이다. 서로 옛날 이야기를 하며 함께 차를 마셨다. 일주가 이르기를, “서천(西川)은 이 산에서도 대단히 빼어난 곳이니, 구경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하고 석장을 짚고 앞장섰다. 극락전에서 내려와 서쪽 담 밖으로 걸어 나오니, 큰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옥 같은 산골물이 가로질러 흐르며 얼기설기 구불구불 이어진 바위와 돌들이 평평하게 물 밑에 깔려 있는 것이 거의 한 마장(馬場)에 이른다. 물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면 경운동(慶雲洞)에 이르니, 옛날 사람들이 수련하던 곳으로 단약을 만들던 부뚜막과 우물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구경을 마치고 법당으로 돌아와서 자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기를 “생각해 보니, 초여름이 차차 더워져가니 나뭇잎들이 점점 무성해지는구나. 금강산을 유람하고자 한다면 그곳의 일기는 여기보다 조금씩 늦으니 반드시 길을 곱절로 서둘러 가면 나머지 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하신다. 그리하여 가마를 재촉해 길에 올랐다. 일주는 영지까지 와서 작별하였다. 여기서부터 산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고량협(古良峽)을 뚫고 지나가서 저녁에 남진강(南津江)을 건너 낭천현(狼川縣)에 투숙하였다.

初七日壬戌晴黎明命駕直向淸平山適有吾鄕人崔崑以府伯門族旅遊賓館已閱月矣聞將遊楓岳請與同行雖無翰墨之才尙有出塵之想深喜其得一友也晩渡昭陽江江上有亭翼然亭邊喬木檻外晴沙足云勝地津吏迎拜拏舟護涉過牛頭寺沿江以行四十餘里山益高水益駛雲烟漸稠樹林如簀迤東一逕是通石門所過無非仙境入洞口未數步連峯疊嶂削立萬重層嵒亂石或蹲或躍奇花異草時因風起蓊葧香氣焉過歡喜峴坐玩瀑臺臺邊松檜黛色參天松間有上下絶壁一派飛流層層倒瀉雖廬山千尺不必多讓也倚樹凝望寒氣逼人形神颯爽不可久留居僧五六叉手出迎爲客前導胡琴銕笛響裂崖谷緩㘘徐行疑入畫圖間也路左有影池方可百步鏡面無風晴波瀲灎一山峯壑倒映水底名以影者無愧焉池邊有赤木數十株大可蔽牛亦世間所未有也渡雲水橋入普光門乃淸平寺沙門也門內有臺臺左右竪十尺古碑眞樂公李資玄之所撰也至今數百年字畫宛然如昨一一可讀李公高麗時學士也早年掛冠嘉遯山中平生足跡不出洞門其高情雅致雖比之眞隱無媿而夷考其行事則酷好禪說旣作息庵又默言危坐數月不出等事與學空之徒異者無幾而所居之室名以文殊院者尤可笑也過梵閣入法堂當簷揭扁曰能仁寶殿雕窓繡閤彩勝銀幡眩矅人目西偏有極樂殿土木之巧珠玉之繁侈麗無比虛簷外方皆以黃金塗之重楹覆檻盡鋪龍紋綺席乃妖僧普雨所創而自居者也雨也逃名學佛托迹空門不能除妄想守淸凈顧以左道出入都下內結䆠寺外附權奸虛竭內帑謾塡廬壑使甿俗輻輳於指揮之間竟致神人共憤得以誅之豈非理數歟住持僧一珠荷衲來扖乃十年前雲山舊知也因與敍舊共啜茗飮珠云西川此山之奇絶處不可不賞杖錫先導由極樂殿以下步出西墻外長松落陰玉磵橫流縈巖絡石平鋪泉底者幾至一馬場沿流深入則可到慶雲洞古人修煉處也藥竈丹井祗今宛然云覽畢還法堂將欲留宿家君言念初夏向熱木葉漸䌓金剛之遊日候乍晩必須倍道入山可及殘花促駕登途一珠到影池相別自此緣山而東穿古良峽夕渡南津江投宿狼川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