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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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에 대한 몇가지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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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 보현사 대웅전(출처:미상)
상세정보
청평사는 1800년대에 수차례에 걸쳐 불이나 대웅전이 소실되고 한국전쟁 직전에는 극락보전이 불에 탔다. 또한 한국전쟁기에는 대웅전 자리에 있었던 승방이 폭격으로 불타는 등 여러 차례 피해를 보았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1970년대부터 극락보전과 대웅전, 경운루와 행각, 승방 등이 복원 또는 신축되었다. 그러나 회전문과 주변 회랑, 경운루와 주변 회랑, 대웅전은 복원을 전제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이에 준거하여 복원되었다. 그러나 발굴조사결과에 의하지 않거나 문헌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과거와는 다르게 복원되었다.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회전문과 회랑

청평사에는 구역에만 승방이 있다. 그런데 이 구역에 대한 터파기 공사를 할 때에 건물지의 유구가 확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청평사의 승방은 ~구역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구역에 대한 발굴조사 당시에 승방이라고 추정되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 서종화(徐宗華), 청평산기(淸平山記)에 의하면 불전 아래에 두 개의 곁채가 좌우로 있는데, 좌측에 있는 것은 제하(齊霞)이고, 우측에 있는 것은 연적(宴寂)이다. 그 아래쪽에 또한 동남쪽으로 요사채가 있다. 회전문을 끼고서 좌우에 회랑이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승려들이 거처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도 청평사에 승방은 대웅전 동남쪽과 회전문의 좌우에 있는 건물이 승방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 회랑으로 복원한 것은 승방으로 복원되어야 할 건축물이 잘못 복원된 것이다. 이는 회전문의 기둥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회전문의 남서쪽 귀기둥 서쪽면에 상·하인방의 위치에 먼저 사용하였다 폐기한 구멍의 흔적이 남아 있다.

초석의 주좌를 치석한 상태를 보면 회전문 내측만을 반원형으로 다듬고 외측은 치석하지 않았다. 삼풍엔지니어링, 『청평사 회전문 수리실측보고서』, 춘천시, 2002, 8385쪽에서도 현재 복원된 건물구조와 달리 회전문과 행각이 연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특기할 것은 후면 양측의 귀초석의 노출된 부분을 가공할 때에 후면쪽 반원만 가공하고 측면 벽쪽 나머지 부분은 가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회전문의 좌우에 달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회랑의 흔적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며 측면으로 연결되는 초석상면을 덮는 부재가 아마도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가공을 하지 않았던 것이고, 측면의 회랑은 개방된 형태가 아니라 하방이 회전문과 서로 결구된 상태로 행랑채와 같은 하나의 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하였다. , 회전문에 행각을 연결하고 개방형 행각이 아니라, 실내가 있는 구조로 건축하였기 때문에 초석에서 보이는 부분은 치석을 하고 행각의 내부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부분은 치석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며 회전문 통로의 초석도 이와같이 치석하였다.

이로 보았을 때 행각지는 회전문과 건축구조가 연결된 상태로 건축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회전문의 기둥은 모두 10개이다. 이중 남서쪽 귀기둥만이 오래된 것이고 서북쪽과 동북쪽의 내진기둥이 그 다음으로 오래된 것이며 나머지는 근대에 교체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기둥의 부식상태와 나이테의 수축현상으로 볼 때 새로 교체한 부재임이 확실히 관찰되고 있어서 남서쪽 귀기둥 외에는 기존의 건축구조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남서쪽의 기둥에 남아 있는 인방의 흔적으로 볼 때 이는 행각지와 회전문은 연결된 건축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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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전문 정면도                           회전문 서측면도(붉은 색이 인방구멍)                    회전문 초석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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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전문 남서쪽 귀기둥(인방구멍)                              회전문 북서쪽 귀기등 초석                                                       초석의 치석한 모습     

 

(2) 대웅전의 구조

현재의 대웅전은 1990년대 초에 정면 3,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복원되었다. 그러나 발굴보고서에 의하면 활주 초석 3개가 확인되었다고 하였다.1) 그런데 맞배지붕에서는 활주 초석이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청평사 대웅전은 현재와 같이 맞배지붕이 아니라 팔작지붕으로 복원되어야 온전한 복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극락전의 내부구조

극락전의 구조는 전면 3,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그런데 청평사의 극락전은 독특한 건축구조로 되었있었는데 전면 1, 측면 1, 전면 3칸은 건물의 내부가 아닌 실외로 건축되었다. 향교의 대성전에서 볼 수 있는 건축구조였으나 1970년대에 복원하면서 이와같은 구조가 아닌 일반적인 금당의 구조로 복원되었

. 이는 일제강점기 사진에서 확인된다. 또한 공포도 수서에서 앙서로 바뀌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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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조선고적도보』:소실전)​                             극락전(복원: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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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닫집(『조선고적도보』:소실전)​                        극락전 닫집(복원: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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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공포(『조선고적도보』:소실전)​                      극락전 공포(복원후:현재)

청평사 극락전과 같은 구조의 법당을 보면 강화 정수사 대웅전과 안동 개목사의 원통전은 청평사의 팔작지붕과 달리 맞배지붕이고 후대에 보강한 퇴칸이다.


 

1) 이상필, 「춘성군 청평사지 정비 및 영지 발굴조사보고」, 『문화재』18, 문화재관리국, 1985, 62.

조유전 외, 「청평사 영지 및 능인전지 발굴조사」, 『문화재』20, 문화재관리국, 1987, 116. 원당 사찰인 봉선사·봉은사·용주사·여주 신륵사·영월 보덕사의 금당이 모두 팔작지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