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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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원(朴長遠), 「중유청평기(重遊淸平記)」, 『구당집(久堂集)』

상세정보

박장원(朴長遠, 1612~1671):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중구(仲久), 호는 구당(久堂)이다. 외할아버지인 심현(沈誢)을 따라 강화도에 피난하였다. 1639년 검열(檢閱)이 되고, 1640년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으로 춘추관기사관이 되어선조수정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춘천부사를 역임했으며 강원도관찰사를 지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 「중유청평기(重遊淸平記): 박장원은 165112월에 두 번째 유산기를 남겼다. 두 번째의 산행에서의 이틀 동안 산행을 기록한 것이 중유청평기(重遊淸平記)이다.

번역문 / 원문

나는 살아오면서 소동파(蘇東坡)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찌 감히 구양자(歐陽子)가 두보(杜甫)를 좋아하지 않은 것에 비길 수야 있겠는가? 그런데 지난번 아이들이 교정하여 베낀 시집을 열람하다가 우연히 소동파의 시 납일(臘日)에 고산(孤山)을 유람하다 스님을 방문했네라는 작품을 보고 나도 모르게 기뻐하였다.

대개 춘천에도 고산(孤山)이라는 산이 있다. 땅이 서로 천만리나 떨어져 있지만 산 이름이 서로 같은 것을 괴이하게 여겼는데, 예전과 지금 사람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며 천년이란 먼 시간이 있음을 알지 못하여서이다.

지난 가을에 청평산의 유람은 마음껏 놀아 즐거웠다. (소동파가) 다시 적벽(赤壁)⑴을 지을 때는 그 기약이 폭포와 얼음에 있었는데, 손수 소동파의 시를 살펴보니 반드시 납일(臘日)을 기다렸었다. 아팠지만 나의 습관도 여전히 없어지지 않았으니 절로 그만 둘 수가 없다. 드디어 빈(), () 두 아들과 생질 이제두(李齊斗), 제태(齊泰)와 더불어 나란히 산에 올랐다. 월초부터 나날이 산행을 재촉한 이는 이민채(李敏采)인데, 앞의 기()에서도 언급한 사위이다.

이 날 저녁 일행이 용담(龍潭)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해가 져서 캄캄했다. 조금 쉴 때 술을 데웠는데, 얼어붙은 폭포가 반짝이는 것을 앉아서 보니 참으로 기이하다. 그 모양은 유리로 만든 항아리 같았는데, 항아리 속의 술이 출렁이며 번쩍거리는 듯하다. 혹은 백금(白金)을 녹여 만든 물건 같기도 한데, 눈 덮인 곳을 환히 밝혀보기 어려웠던 것이 한스럽다. 용담 옆 돌길은 기다란 얼음이 덮여있어 사람과 말이 기어 올라가야 겨우 넘어지고 자빠지지 않을 정도이다.

절에 도착하여 잠을 잤다. 밤중에 옷을 걸치고 산책하노라니 서천(西川)쪽에 달이 떴다. 개울의 얼음이 달빛을 받으니 그 빛은 사람을 쏘는 듯하다. 송단(松壇)에 눈이 쌓여 밤의 한기가 뼈를 뚫는 듯하다. 추워서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다.

다음날 기미일(己未日)은 곧 납일(臘日)이다. 돌아오는 길에 우선 상담(上潭)으로 갔다. 어제 저녁에는 날이 어두워져 하담(下潭)의 폭포만 보았기 때문이다. 폭포의 모양은 하담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얼어붙은 형상이 더욱 뛰어나고 기이하게 느껴져 거의 표현할 수조차 없다.

산길을 나와 봉의산(鳳儀山)을 거쳐, 북쪽으로 소양정(昭陽亭)에 올랐다. 소양정 아래의 고산(孤山)은 상하가 수십 리 쯤 된다. 차가운 강물이 휘감아 나가고 눈 위에 길은 서로 뒤섞여 있다. 참으로 소동파의 누대(樓臺) 위로 어둠이 깔리니 산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네라는 말과, 구양자의 바람과 서리, 얼음과 눈이 청수(淸秀)함을 아로새기니, 사계절의 경치가 저마다 사랑스럽네라는 말은 오랜 세월 사람 사는 경계를 남김없이 드러냈다고 할만하다.

청평산의 유람은 앞서 이미 기록한 것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 기문(記文)에는 단지 연못과 폭포의 얼어붙은 형상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다시 군더더기를 달지 않는다. 또한 나의 버리지 못한 습성과 분수를 기록하여 스스로를 경계하고 다른 사람을 경계한다. 이 또한 하나의 뜻이다. 신묘년(辛卯年)⑵ 납일에 기록한다.


1) 후적벽부(後赤壁賦)를 말한다.

2) 신묘년(辛卯年): 1651.

 

余生來不喜蘇豈敢自附於歐陽子之不喜杜也頃閱兒輩讎鈔偶及蘇詩臘日遊孤山訪僧之作不覺心喜之蓋春亦有山曰孤山竊怪夫地之相去不啻千萬里而山名相符古今人同不同不自知千歲之遠也去秋遊淸平山翫而樂之重賦赤壁期在瀑氷而自閱蘇詩必待臘日亦病夫習氣猶未除而自不能已也遂與鑌銓兩兒甥李齊杜漢卿齊泰有道聯鑣入山自月初日日催行者李敏采載仲前記所謂 坦腹郞者也是夕行抵龍潭已昏黑矣小憩煖酒坐觀氷瀑闌干眞異狀也其狀或如琉璃作瓮瓮裏酒瀲灎相似或如鎔白金被物而所恨雪覆處難燭也潭傍石逕長氷橫亘人馬攀援廑免跌仆抵寺而宿夜披衣步月出西川川氷受月光彩射人松壇積雪夜寒徹骨凜不可留也越明己未乃臘日也歸途先抵上潭蓋前夕日昏只望下潭瀑故也瀑形比下潭差大故凍合之狀尤覺瑰奇殆不可喩也出山路由鳳儀山北登昭陽亭亭下孤山上下數十里許寒江縈繞雪徑交錯眞蘇子所謂樓臺明滅山有無者而 歐陽子所謂風霜氷雪刻鏤淸秀四時之景無不可愛云者可謂畫出千載人境淸平之遊前已有記此不須記記亦只記潭瀑氷凍之狀而他不復贅且記余之未除習氣分數聊以自警警人此亦一意云爾辛卯臘日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