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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화(徐宗華), 「청평산기(淸平山記)」, 『약헌유고(藥軒遺稿)』

상세정보

서종화(徐宗華, 1700~1748): 관은 달성이고 자는 사진(士鎭), 호는 약헌(藥軒)이다. 평생토록 거의 학문에만 전념하였는데 약헌유집(藥軒遺集)에 그의 학문적인 사유와 분장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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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평산기(淸平山記): 서종화의 기록은 청평산 유산기 중 가장 자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행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九松臺이층폭포歡喜嶺오층석탑盛香院 옛 터影池청평사西川부도식암나한전천단견성암소요대立巖龜巖혈암경운봉 정상식암이층폭포칠층석대서천

번역문 / 원문

수춘(壽春)의 관청으로부터 동쪽으로 40리에 청평산(淸平山)이 있는데, 본래의 명칭은 경운산(慶雲山)이다. 산이 험하고 깊은데다가 도적과 맹수가 많았으나, 고려 때 처사 이자현(李資玄)이 와서 머물며 사나운 짐승들을 물리치고 도적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청평산(淸平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청평산의 물이 산의 입구에서 흘러 나와 소양강 상류로 들어가는데, 여기서부터 강에서 계곡으로 들어간다. 시내를 거슬러 올라가자, 길은 험하고 나무는 빽빽이 들어차 있다. 길은 다한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고, 산은 합쳐진 듯하다가 다시 열리곤 한다. 십여 리를 가서 비로소 구송대(九松臺)에 이르렀다. 구송대는 돌을 쌓아 만들었다. 예전엔 대() 주변에 아홉 그루의 소나무가 있었는데, 이 중 하나가 작년에 바람에 의해 쓰러졌다. 구송대의 북쪽에 이층(二層) 폭포가 있다. 아래쪽에 위치한 폭포는 위쪽 폭포의 길이에 미치지 못한다. 산의 눈이 막 녹기 시작해 계곡의 물이 막 불어나니, 폭포의 물은 세차게 부딪치며 물보라를 내뿜는다. 그 소리는 마치 용이 뛰어오르려고 큰 소리로 으르렁거리는 듯하다. 두 폭포 사이에는 용담(龍潭)이 있는데, 웅덩이의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일찍이 용이 이곳에서 숨어 살았기 때문에 이름 지었다. 앞에 버티고 서있는 돌은 오는 길에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붉은 단애(斷崖)와 푸른 절벽이 깎아지른 듯 서 있고, 양 옆에는 단풍나무와 향나무, 삼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하면서 빛나고 있다. 이 때 산새 두세 마리가 나무 사이로 울며 날아다니니, 청평에서 가장 처음 눈에 띄는 곳이다.

북쪽으로 돌 많은 비탈길을 오르면 바로 환희령(歡喜嶺)이다. 고개 오른쪽의 작은 언덕에는 오층으로 되어 있는 석탑이 있다. 또 그곳으로부터 수십 보 거리에 성향원(盛香院)의 옛터가 있다.

서북쪽으로 40보쯤 가서 첫 번째 다리를 건너니 길가에 산죽(山竹)이 빽빽이 우거져 있어 볼만 하다. 비스듬히 올라가서 영지(影池)에 이르렀다. 연못은 사방이 5() 가량 되는데, 문석(文石)으로 계단을 만들었다. 계단 위에는 적목(赤木) 네 그루가 빙 둘러 서있는데 나옹(懶翁)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크기가 모두 수십 아름이 되며, 몸체가 구불구불하게 틀어져 있고, 가지와 잎은 매우 기이하다. 북쪽으로 부용봉(芙蓉峰)과 마주하고 있는데, 멀리 몇 리까지 보인다. 떨어질 듯이 높이 솟은 산의 모습이 연못에 비치는 것을 보니 대암(臺庵)의 창문과 바위의 위아래가 모두 역력히 보인다. 바람이 잔잔한 곳에 불어와 물결이 일렁이면 봉우리와 초목이 모두 동요하니, 그 광경은 황홀하여 도저히 표현해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두 번째 다리를 따라 가다가 꺾어지면 동북쪽에 큰 절이 있다. 산은 열려 있고 물은 에워싸 흐르고 있으며 사방의 신이 주위에서 호위하는 듯한 것이 진정한 사찰의 뛰어난 경계이다. 처음 이름은 백암(白巖)이며 보현(普賢)이라고도 하였다. 당나라 스님 영현(永玄)이 지었는데, 진락공(眞樂公)이 중수하고 이름을 고쳐 문수(文殊)라고 하였다. 이에 관한 전말이 고려의 보문각(寶文閣) 학사(學士) 김부철(金富轍)이 찬한 비석에 기록되어 있다. 비는 회전문(回轉門) 밖 정원의 서쪽 뜨락에 있다. 정원의 동쪽에 또 파손되어 읽을 수 없는 비가 있고, 두 비 사이에 제석단(帝釋壇)이 있다. 제석단의 아래에 참죽나무 두 그루와 노송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모두 수십 아름 된다. 노송나무의 색깔은 앞 봉우리와 서로 섞여 푸르게 보인다.

정원 위에 두 개의 연못이 있는데, 모두 막혀 말랐다. 연못의 주변에는 적목(赤木)이 두세 그루 줄지어 심어져 있는데, 달빛 아래 그림자가 너울대는 것이 즐길 만하다. 회전문으로 들어가면, 원해문(圓解門)이 있고, 문의 위는 강선루(降仙樓)이다. 루의 기둥은 열 개이며 넓어서 수백 사람 정도가 앉을 수 있다. 이환문(離幻門)을 지나면 비로소 불전(佛殿)에 이르게 된다. 불전의 이름은 능인(能仁)이다. 능인전과 강선루가 마주하고 있는데, 단청은 밝게 빛나고 규모는 크고 화려하며 두공(斗拱)이 교묘하고도 화려하여 예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 가운데에 세 좌의 금부처가 있다. 불전의 서쪽에 향적당(香積堂)과 동쪽에 사성전(四聖殿)과 구광전(九光殿)이 있다. 구광전에는 일월칠성(日月七星)과 여러 부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림이 비록 오래되었으나 아직까지 더럽혀지거나 흐려지지 않아서, 정기가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스님들이 오도자(吳道子)가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하니, 대개 신라 이후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향적당(香積堂)의 수좌(首座) 묘영(妙映)이 앉아 있다가 쇠 지팡이를 꺼내 보여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태조가 도읍을 세울 때, 나옹(懶翁)화상이 가지고 다니면서 성터를 획정하던 것이라고 한다.

불전 아래에 두 개의 곁채가 좌우로 있는데, 좌측에 있는 것은 제하(齊霞)이고, 우측에 있는 것은 연적(宴寂)이다. 그 아래쪽에 또한 동남쪽으로 요사채가 있다. 회전문을 끼고서 좌우에 회랑이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승려들이 거처하고 있다. 그 남쪽의 북측에는 창고가 있는데, 삼보(三寶)라고 한다. 절 안에 전해져 오는 집기와 물건이 모두 이곳에 수장되어 있다. 나옹의 돌 거울 또한 그 안에 있다. 향적당의 뒤쪽에 감로천(甘露泉)이 있고, 서쪽으로 꺾어서 가면 북쪽에 극락전이 있다. 극락전의 기이하고 교묘함과 영롱히 빛나는 것은 능인전과 비교하면 더욱 정채롭고 화려하다. 서쪽에 있는 회랑의 서쪽에 샘물을 끌어들여 우물을 만들었다. 계속 따라가면 서쪽에 시왕전(十王殿)이 있고, 전의 아래쪽에 자음각(慈蔭閣)이 있다.

이곳으로부터 서남쪽으로 70보 떨어진 곳에 서천(西川)이 있고, 서천의 아래쪽에 절구처럼 생긴 연못이 있다. 연못 위쪽에는 대()가 있고, 대의 위쪽에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독송(獨松)이라 부른다. 매월당 김시습이 예전에 이 대 위에 정자를 지어 놓고 거처하였다고 한다. 대개 산골짜기의 물이 합류하여 이곳으로 흘러온다. 바위를 침식하고 돌에 부딪치고 꺾이면서 물을 뿜으며 매우 빠르게 흘러오다가 연못에 이르러서 물거품을 일으키며 흐르는 물이 둥근 모양을 만들어낸 뒤에 잔잔하게 흘러간다. 단풍나무 숲과 버드나무, 괴석과 고목이 양쪽 언덕을 덮어 가리고 있어 매우 깊고 그윽한 흥취가 있다.

()의 서쪽에는 이 층의 단()이 있다. 고을의 수령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다. 정성스럽게 기원하면 종종 감응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꺾어져서 북쪽으로 수백 계단을 가면 두 개의 부도가 있다.

북쪽으로 몇 리 가면 암자가 있는데, 날아갈 듯이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암자의 오른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그곳에 청평식암(淸平息庵)이란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바위 위에는 잣나무 두 그루와 소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뿌리가 서리고 얽혀져 구불구불하게 되었으니 괴이하다. 바위 옆에는 이층폭포가 있는데, 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이 마치 백학이 날개짓 하는 것 같다. 옆에 선동(仙洞)의 옛 터가 있는데, 진락공(眞樂公)이 뜨락 앞의 오래된 두 그루 배나무에 지팡이를 걸어두었다고 한다. 이것이 진락공이 심은 것일까?

그 위쪽이 바로 나한전(羅漢殿)이다. 가운데에 토불(土佛)이 있는데, 세월이 오래되어 많이 떨어져 나갔다. 나한전의 계단 아래에는 반석이 평평하게 깔려져 있는데, 산골짜기의 물이 졸졸 흘러내리면서 돌을 움푹하게 파서, 위아래에 탕()을 만들어 놓았다. 진락공이 예불할 때 목욕을 하던 곳이다. 골짜기 옆에 석함(石函)이 있다. 바깥 면에 팔괘(八卦)가 새겨져 있고, 가운데에 질항아리가 안치되어 있는데, 진락공의 유골이 담겨져 있다.

동쪽으로 언덕을 오르고 계곡을 지나 몇 리 가면 견성암(見性庵)에 이르니, 일찍이 영지에 거꾸로 비친다고 한 곳이다. 견성암과 선동의 사이에 천단(天壇)이 있는데 스님들이 기도하는 곳이다. 단으로부터 조금 북쪽으로 가면 암벽이 깎아지른 듯이 부용봉을 에워싸고 있다. 부용봉 허리 아래는 푸르른 것이 괴이하게 아름다운 옷처럼 주름졌다. 이러한 까닭에 상암(裳巖)이라고 한다. 견성암은 빈터에 의지하여 지어져 있어 아득하게 속세와 떨어져 있다. 돌을 뚫어 잔교를 만들어 놓았으며 에워싸고 있는 바위가 병풍처럼 있다. 뒤로 흰 구름이 어렴풋이 비추며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앞으로는 연못이 거울처럼 맑기만 하다. 난간에 기대 한번 보니 마음은 편안해지나 눈은 놀라는데, 홀연히 회오리바람이 위로 올라와 하늘까지 이른다.

계단 아래에 백 길이나 되는 노송나무가 있다. 뒤쪽으로 가서 북쪽으로 돌아들고, 또 꺾어져서 서쪽으로 백여 층계를 가면 소요대(逍遙臺)에 다다르게 된다. 산기슭의 머리 부분이 잘라져 돌이 드러나면서 대가 된 것인데, 그 위에 너 댓 사람이 앉을 만하다. 험한 골짜기에 임하여 있는데 수천 길이나 된다. 이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층층이 쌓여 있는 봉우리가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다. 뛰어올라 솟아나온 듯한 대단한 산의 기세를 모두 보여주는데, 기이한 형태와 자태를 모두 다 기술할 수 없다. 산의 푸르른 기운은 아래로 퍼지고 상쾌한 기운은 옷소매를 가득 채우는데, 마침 늙은 중 천호(天浩)가 따라왔다. 그와 반나절 동안 얘기를 나누었는데, 이야기가 맑고 깨끗하여 들을 만 한 것이 마치 신선인 홍애(洪厓)와 선문(羨門)과 함께 세상 끝 아득히 먼 곳에서 같이 있는 듯하다.

부용봉은 대의 북쪽에 있다. 극락전 서쪽의 산기슭으로부터 북쪽으로 몇 리를 가면 동쪽으로 부용봉의 자락에 이르게 된다. 석벽이 우뚝 솟아있어 곧바로 올라갈 수 없고, 돌길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면 꼭대기에 입암(立巖)이 있다. 바위 남쪽의 돌은 거북 모양으로 튀어나와 귀암(龜巖)이라고 부른다. 북쪽에 향로봉(香爐峰)이 있는데, 높이가 부용봉과 같다. 서북쪽에 경운봉(慶雲峰)이 있는데, 양 봉우리 사이가 깎아지른 듯 험하여 새들만이 길을 통하여 갈 수 있을 정도이다.

경운봉의 아래쪽에 혈암(穴巖)이 있는데, 겨우 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혈암의 좌우는 모두 절벽으로 되어 있어 발을 디딜만한 곳이 없다. 혈암으로부터 위로 올라가면, 마침내 앞 봉우리의 정상에 이르게 되는데, 앞 두 봉우리보다 더 높아 시야가 더욱 넓어진다. 동쪽을 보니 사방이 환히 보이고, 서쪽으로 용화산(龍華山)을 마주 대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낭천(狼川)에 임하여 있고, 남쪽으로는 천전(泉田)이 보인다. 그러나 중첩된 산봉우리와 높이 솟은 고개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불과 100여리에 지나지 않는다.

세 봉우리의 위와 아래에 기이한 돌과 바위가 늘어서 있는데, 마치 사람이 서 있는 듯. 짐승이 쪼그리고 있는 듯 하며, 혹 대()를 이루고, 혹 병풍을 이루며, 동굴이 깊이 패여 있고, 각 봉우리가 들쑥날쑥한 것이 기이한 형상 아닌 것이 없다.

경운산으로부터 서쪽 아래쪽으로 2리 쯤 가면 식암(息庵)이 나온다. 수승(首僧) 행균(行均)이 조를 조리하여 대접한다. 이곳에서 잠시 쉰 후 다시 선동(仙洞)의 옛 터를 보기 위해, 시내를 따라 수십 걸음 내려가니 이층 폭포가 보인다. 서쪽에 7층 석대(石臺)가 있는데, 처음엔 누가 이렇게 기묘한 것을 만들었는가 생각하였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부터 서천(西川)에 이르기까지 몇 리쯤 되는데, 골짜기가 좁았다가도 혹 넓어지기도 하면서 기이한 바위와 푸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그 아래쪽은 반석으로 되어 있는데, 돌이 솟아 있으면 물이 튀어 올라 희게 보이고, 돌이 평평하거나 우묵하게 되어있으면 물이 모여서 푸른색으로 보인다. 물이 합해졌다가 흩어지고, 갈려졌다가 모여지고, 콸콸 흐르기도 하고, 졸졸 흐르기도 하며, 거문고가 소리를 내는 것 같고, 마치 구슬을 토해내는 소리와도 같다. 깊은 골짜기라 조용하고 깊으며 한가로운 흥취와 맑고 깨끗함에 고즈넉이 긴 시를 읊으며 머뭇머뭇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

유유주(柳柳州)가 말한 청랭(淸冷)한 모양은, 눈이 생각한 것은 콸콸 흐르는 물의 소리이고, 귀가 생각한 것은 고즈넉이 빈 것이며, 정신이 생각한 것은 깊고 조용함이며, 마음이 생각한 것은 이 중의 아취를 먼저 본뜨는 것이니, ! 진실로 선동(仙洞)이다. 그러므로 나는 청평(淸平)의 경치를 평하기를, 비교적 드러난 것으로 여섯 가지가 있는데, 구송대(九松臺), 서천(西川), 영지(影池), 선동(仙洞), 소요대(逍遙臺), 부용봉(芙蓉峰)이 그것이다. 이중 오직 저 선동이 제일이다.

영지에는 지장암(至莊庵)이 있는데 우파새(優婆塞)가 거처한다. 암자는 경운산과 향로봉, 부용봉과 마주하며 멀고도 넓게 보인다. 동쪽으로 석벽을 보면 깎아지른 듯 우뚝 솟아 높이가 천 길 쯤 된다. 일찍이 학이 찾아와 그 꼭대기에서 노닌 까닭에 학암(鶴巖)이라고 부른다. 선동의 서쪽에 폭포가 가로로 수 길이나 걸려 있고, 나무가 빼곡하니 들어서 있다. 그늘지어서 앉아 쉴만하다. 북쪽에는 원통암(圓通庵)의 옛 터가 있고, 또 그 북쪽에는 상암(上庵)이 있다. 경운산 자락에는 경운암이 있다. 양신암(養神庵)은 견성암(見性庵)의 동남쪽에 있다. 00암은 구송대의 서남쪽에 있는데, 남쪽에 또 수도량(修道場)이 있다. 모두 볼만하다.

! 나의 삶은 잠깐인데 산의 우뚝 솟음과 물의 흐름은 무궁하다. 잠깐의 삶으로 무궁한 사이에서 노니니 어찌 하루살이가 태허(太虛)를 지나감과 다르겠는가? 나보다 앞서 노니는 사람이 몇 사람이고, 나보다 뒤에 노니는 사람이 또한 다시 몇 사람일터인데, 장차 모두 종적 없이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진실로 슬프다. 또 내가 늦게 태어나 진락(眞樂), 나옹(懶翁)의 무리들과 함께 하지 못함을 괴롭게 여기는 바이다. 용담(龍潭)에 갓끈을 씻고, 부용에서 옷을 떨치고, 선동과 구송대 사이에서 서로 끌어주며 노닐다가, 홀로이 큰 뜻을 가지고 남은 자취를 어루만지니 감회가 일어, 높은 언덕에 올라 걱정스레 머리를 긁적인다.

 

 

1) 수춘(壽春): 춘천의 옛 이름.

2) 문석(文石): 빛 또는 무늬가 화려한 돌.

3) 김부철(金富轍):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金富軾)의 막내 동생이며, 시문에 능하였다.

4) 오도자(吳道子): 성당(盛唐)시대의 화가.

5) 홍애(洪厓): 보통 홍애 선생(洪厓先生)으로 불리는 상고(上古)의 선인(仙人)이다.

6) 선문(羨門): 옛 선인(仙人)으로 이름은 자고(子高)이다. 전한서(前漢書), “시황(始皇)이 동으로 노닐면서 신선(神仙) 선문(羨門)의 무리를 구했다.”라고 하였다.

7) 낭천(狼川): 화천의 옛 이름.

8) 유유주(柳柳州): 유종원은 자가 자후(子厚)이며, 유주(柳州)의 자사를 지낸 탓에 유유주(柳柳州)라고, 또 조적(祖籍)이 하동(河東)인 까닭에 유하동(柳河東)이라고도 불린다.

 

壽春治東四十里有淸平山本名慶雲山險而邃且多盜賊猛獸自高麗處士李資玄來居乕豺屛跡盜賊不入因以淸平稱之云淸平之水從山口流出入于昭陽上流自此舍江入谷溯溪而行崎嶇叢欝路若窮而復續山若合而復開者十數里始至九松㙜㙜累石以成臺之上曾有九株松其一昨年爲風所倒矣臺之北有二層瀑布下瀑之不及上瀑丈許山雪方融溪水正漲瀑之流峻激噴薄其聲潨然若白虬之騰躍叫哮兩瀑之間爲龍潭潭之深不知其幾許嘗有龍潛居故名之前有撑石以關來道丹崖翠壁削立兩邊楓栝杉松菁薈交暎時有山鳥數三飛鳴其間淸平之最初開眼處也北躋石磴乃歡喜嶺嶺右小邱有五級石塔又數十步有盛香院故基西北四十步渡第一橋路傍山竹叢生蓊蔚可愛迤而至影池池方五畒以文石爲階階上有赤木四株環立懶翁所植大皆數十圍槎枒蟠屈柯葉甚奇北對芙蓉峯可數里遠望之但見其硉兀形俯鑑于池則臺庵之窓櫳巖石之頫仰皆可歷歷數之已而風至澄波熨皺峯巒草木皆動搖光影怳惚殆不可狀循第二橋折而東北有大伽藍山開水繞四神周護眞寶林勝界初名白巖或曰普贒唐僧永玄所刱眞樂公重修之改名文殊顚末在高麗寶文閣學士金富轍所撰碑碑在回轉門外庭西畔庭之東又有碑剝裂不可讀兩碑之間有帝釋壇壇之下立二春一檜皆數十餘圍檜色與前峯參望之蒼然庭之上畔雙池皆湮涸赤木數三列植其傍月下景影婆娑可喜入回轉門又有圓解門門之上爲降仙樓凡十楹而寬敞可坐數百人度離幻門始至佛殿殿名能仁能仁與降仙相對丹雘照耀制作宏麗欂櫨之巧節梲之華曾所未覩也中有三金佛殿之西香積堂東四聖曁九光殿九光掛日月七星諸佛圖圖雖古猶未漫漶精氣如生僧徒云吳道子眞蹟盖非新羅以後之手也香積堂首座妙暎居焉出鐵筇示之曰此我太祖刱都時懶翁所持而畫定城基者殿之下翼之以兩廡左曰齊霞右曰宴寂其下又有東南寮挾回轉門而排左右廊皆緇徒居焉南之北有庫名三寶寺中傳來什物悉藏之懶翁石鏡亦在其中香積後有甘露泉西折而北極樂殿殿宇奇巧金碧玲瓏比能仁尤爲精麗西廊之西引泉爲井循而又西十王殿殿之下慈蔭閣自此西南去七十步有西川其下爲臼潭潭之上臺㙜之上立一長松以獨松名之金梅月堂悅卿嘗於此臺上築亭以居云盖山澗之水合流至此齧厓抵石屈折噴迅而下逮潭流沫成輪然後平鋪而逝楓林檉柳恠石枯木蔭暎兩厓深邃多幽趣㙜之西有二層壇州守禱雨處禱之以誠往往有應云折而北數百級有兩浮屠又北數里有庵翼然臨絶壑之上其右巨巖刻淸平息庵四字巖之上生二栢二松根相蟠結爲一輪囷可恠巖邊懸着二層瀑布水色暎日如翻白鶴其傍有仙洞古址眞樂公掛錫處庭前兩老梨木云是眞樂所種然乎其上乃羅漢殿中有土佛歲久多剝落殿階之下盤石平鋪山澗潺湲鑿其石爲上下湯眞樂公禮佛時沐浴處澗邊有石凾外面刻八卦中安陶甁瘞眞樂公遺骨也東而登崗越壑數里至見性庵曾所倒暎於影池者也見性仙洞之間有天壇緇徒祈禱處自壇而稍北巖壁削成抱繞芙蓉峯腰下蒼翠詭恠襞積如雲錦裳故名裳巖見性憑虛結搆縹緲絶塵石爲棧繞巖爲屛白雲隱暎藩擁於後淸潭澄澈鏡平於前凭欄一視心舒目駭忽然若飄浮上騰以臨空虛也階下有百丈老檜由後而北轉又折而西百餘級至逍遙臺山麓斗斷石出爲㙜上可坐四五人臨絶壑殆數千仞南向而望之層巒疊巚環擁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