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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원(李裕元), 「시장경비(施藏經碑)」, 『임하필기(林下筆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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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원(李裕元), 시장경비(施藏經碑), 임하필기(林下筆記)

청평산(淸平山)의 오래된 삼나무 아래 폐해진 연못가에서 비석 하나를 파냈는데, 바로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선생이 지은 시장경비(施藏經碑)였다. 이 비는 문수원비(文殊院碑)와 더불어 똑같은 산 속의 문헌(文獻)이다. 주승(主僧) 송파(松坡) 장로(長老)가 그 비를 옮겨다가 절의 처마 밑에 두어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였다. 비석은 깨어져서 크고 작은 것이 모두 다섯 조각이었다. 그 비문에, “황태자와 아들을 위해 복을 빌되, 각각 그들이 태어난 날에 승려들에게 밥을 공양하고 불경을 열람하는 일을 해마다 상례로 삼으라.” 하였다. 고려사(高麗史)매번 태어난 날마다 승려들에게 밥을 공양하는 일을 해마다 상례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다. 2행은 추성양절공신중대광김해군신이(推誠亮節功臣重大匡金海君臣李)”이며 그 이하는 마멸되었다. 상고해 보면, 선생은 처음에 김해군(金海君)에 봉해졌다가 뒤에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에 봉해졌다. 상고해 보건대, 이른바 첨의정승신이등(僉議政丞臣怡等)’은 바로 광정공(匡定公) 김이(金怡)이다. 익재난고(益齋亂藁)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모두 신흡(臣恰)’으로 되어 있는데, 고려사를 상고해 보면 ()’이란 이름을 가지고 정승 벼슬을 한 자가 없으니, 이 비석에 적힌 신이(臣怡)’이 광정공이란 것을 의심할 것이 없다. 또 상고해 보건대, 광정공은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서 원나라 진종(晉宗) 때인 태정(泰定) 4(1327) 5월에 죽었으니, 이 비석을 세울 때에 아직 탈 없이 관직에 있었다. 광정공이 젊은 시절에 화장사(華藏寺)에서 자면서 꿈을 꾸었는데, 왕이 전각에 임하여 시 한 구를 부르기를, “푸른 구름 붉은 기운이라 신선의 집임을 알겠노라.[靑雲紫氣知仙閣]” 하였고, 이에 대해 광정공이 화답하기를, “푸른 머리 맑은 말씀이라 바로 귀인이십니다.[綠髮淸談是貴人]” 하였다. 이 시구로써 장차 광정공이 존귀하고 현달하게 될 것을 점칠 수 있었다.

淸平山古杉下廢池邊 掘得一碑 乃益齋李先生所撰施藏經碑也 此碑與文殊院碑 均爲山中之文獻 主僧松坡長老 移置寺簷下 以庇風雨 石斷裂 大小凡五段 碑文曰 爲皇太子皇子祈福 各取其誕辰 飯僧閱經 歲以爲凡 麗史云 每於誕辰飯僧 歲以爲常 第二行 推誠亮節功臣重大匡金海君臣李 此以下泐揖 按先生始封金海君 後改封鷄林府院君 按所謂僉議政丞臣怡等 卽匡定公金怡也 本集與圖經 皆作臣恰 考之麗史 更無以恰爲名 而官政丞者 此碑臣怡之爲匡定 無疑也 又按匡定 以僉議中贊 卒於泰定四年五月 則立碑時尙無恙而居位也 匡定少時 宿華藏寺 夢王御殿唱一句云 靑雲紫氣知仙閣 匡定賡云 綠髮淸談是貴人 以是卜其貴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