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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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응(成海應), 「기관동산수(記關東山水)」,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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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응(成海應), 기관동산수(記關東山水),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청평산은 춘천에 있다. 고려조 이자현이 은거한 곳이다. 이자현은 진락공(眞樂公)이라 일컬어졌다. 퇴계 이황 선생은 일찍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은일전(隱逸傳) 누가 올려 전하려나, 아주 작은 흠 꼬집어서 흰 구슬을 타박하지 말라라 하였다. 이는 아마도 진락공이 비록 재물을 불러들였다는 욕을 먹지만, 속세를 훌쩍 떠나 은둔하였던 풍모는 우뚝하여 매몰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리라.

기락잔(起落棧)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가면 구송대(九松臺)가 나온다. 구송대 아래에는 바위가 희고 물이 깨끗하다. 두 개 폭포가 있으며 다시 용담(龍潭)이 있다. 용담을 지나가면 영지(影池)에 이른다. 영지는 물이 몹시 푸르고 맑으며, 작은 바위 서너 개가 못 가운데 나란히 있다. 산 중턱에 있는 견성암(見性菴)의 그림자가 못에 비추기 때문에 영지(影池)라 이름 한 것이다. 영지 주위에는 한 아름 되는 적목(赤木) 네다섯 그루가 있는데, 고려조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심은 것이라 한다.

청평사는 본래 경운산(慶雲山) 보현원(普賢院)이었는데, 이자현이 이름을 청평사로 고쳤다. 절 앞 서쪽에 있는 비석은 송나라 건염(建炎) 4년에 김부식(金富軾)1)이 이자현의 행적을 기록한 것인데, 글씨는 중 탄연(坦然)이 썼다.

동쪽에 있는 비석은 원나라 태정황후(泰定皇后)가 태자를 위하여 이곳에 불경을 비장하고 복을 기원하였는데,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이 짓고 행촌(杏村) 이암(李嵓)이 글씨를 썼다.

절 남쪽 골짜기 안에 있던 세향원(細香院)은 청한자(淸寒子) 김시습(金時習)이 거처하던 곳인데, 지금은 허물어지고 없다.

절에서 서쪽으로 수백 보를 가면 서천반석(西川盤石)이 있다. 너럭바위가 반들반들하고 물이 맑아서 산봉우리가 비친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부용봉(芙蓉峰)과 경운봉(慶雲峰)이 더욱 기이하다.

서천에서 오른 편으로 돌아 6~7리를 가면 선동(仙洞)으로 들어간다. 선동에는 작은 암자가 있다. 암자 뒤 석벽에는 청평식암(淸平息菴)이란 네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어떤 이는 이자현의 필적이라고 한다. 옛 지리지에 이르길 식암은 둥그렇기가 고니의 알과 같고, 겨우 두 무릎을 구부려야 앉을 수 있다. 이자현은 암자 안에 묵묵히 앉아서 몇 달이 되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라고 하였는데, 곧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의 작은 암자는 후대 사람이 세운 것인데 매우 외딴 곳에 홀로 떨어져 있다. 암자 뒤에는 깎아지를 듯한 푸른 절벽이 있고, 그 위는 송단(松壇)이다. 

 

 

1) 김부식(金富軾): 김부철(金富轍)이 지었는데, 작자가 잘못 알고 김부식이라 기록하였다.

淸平山 淸平山在春川高麗李資玄隱居之所也資玄一稱眞樂退溪李先生嘗有詩曰三韓隱逸誰修傳莫把微瑕屛白珩蓋言眞樂雖招貨利之譏其逃世遐擧之風卓然不可沒也過起落棧入洞得九松臺臺下石白水潔有雙瀑復得龍潭鞍潭而至影池水甚澄綠小石數四離立其中山腰見性菴瀉影其中故名影池環池赤木四五株連抱麗僧懶翁所植云淸平寺本慶雲山普賢院資玄更名淸平寺寺前西碑宋建炎四年金富軾紀資玄事而僧坦然書之其東碑元泰定皇后爲太子藏經于此以祈福李益齋譔李杏村書寺南洞中有細香院淸寒子所棲今廢寺西數百步有西川盤石凝滑淸流映帶其上仰見芙蓉慶雲之峯甚奇由川右轉六七里入仙洞有小菴菴後石壁上刻淸平息菴四大字或云資玄筆也舊誌息菴圓如鵠卵只得盤兩膝默坐其中數月不出者卽此也今之小菴乃後人所建極孤絶菴後蒼壁削立其上爲松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