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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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중, 「성언(醒言)」, 『청성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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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중, 성언(醒言), 청성잡기

춘천의 승려인 지안대사(志安大師)1)가 청평사(淸平寺)에 머무니, 춘천에 사는 사대부 대다수가 그를 찾아가 절하고 뵈었다. 그러나 풍원군(豊原君)2)의 조카 조재극(趙載極)만은 그를 배척하며, “머리 깎은 중놈이 사대부들의 절을 받는단 말인가. 내 눈에 안 띄었기 망정이지, 나한테 걸리면 반드시 혼내 주리라.”하였다. 대사가 이 말을 듣고 조재극에게 사과를 하러 가는데, 조재극이 마침 소를 타고 교외로 나가다가 도중에 대사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대사의 용모가 출중하고 따르는 중들도 모두 모습이 깨끗하고 엄숙하여 세속의 태도가 없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소에서 내려 절하였다.

 

 

1) 지안대사(志安大師): 조선 후기의 대선사(大禪師)로 자는 삼락(三諾), 호는 환성(喚醒), 성은 정씨(鄭氏)로 춘천 출신이다.

2) 풍원군(豊原君): 조현명(趙顯命, 1690~1752)을 말한다. 조현명은 영조 통치기에 온건세력을 중심으로 한 완론탕평을 주도했다. 한편 백성이 힘든 근본 원인이 양역에 있음을 지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본래 집안의 당색은 서인이었고, 뒤에는 소론에 속했다. 그러나 외가는 전통적인 노론 가문이었다. 1721년에 연잉군, 후의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되자, 이를 둘러싸고 노론과 소론이 격심하게 대립한 신임사화가 일어났다. 이때 소론의 핍박으로 곤경에 처해 있던 왕세제를 보호했다. 영조 즉위 후 용강현령·지평 등을 지냈으며, 탕평을 주장하는 만언소를 올렸다. 1750년 영의정에 올라 균역법의 재정을 총괄하고 감필에 따른 재정손실을 보충하는 대책을 마련했으나 채택되지 못했고, 오히려 재정손실의 책임을 묻는 대사간 민백상의 탄핵을 받아 영돈녕부사로 물러났다.

 

志安大師春州僧也住淸平寺春之士大夫多往拜之趙載極者豊原相從子也獨斥之曰髡而受士夫拜耶幸我不見見必榜之師聞之往謝於趙趙適騎牛出郊遇之於塗見其儀容魁偉從僧皆潔肅無雜不覺下牛而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