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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예종문효대왕 2(睿宗文孝大王二)정유 12년(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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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사절요, 예종문효대왕 2(睿宗文孝大王二)정유 12(1117)

청평거사(淸平居士) 이자현(李資玄)을 불러 행재소에 나오게 하였다. 자현은 중서령 자연(子淵)의 손자인데, 용모가 크고 성질이 총명하고 민첩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여 대악서승(大樂署丞)이 되었다가, 갑자기 벼슬을 버리고 춘주(春州; 강원 춘천) 청평산(淸平山)으로 들어가 문수원(文殊院)을 수리하여 거처하면서 채식하고 베옷을 입고 선()을 좋아하고 도를 즐기며 소요하면서 스스로 즐거워하였다. 왕이 내신을 보내어 차비단을 하사하고 여러 번 조서로 불렀다. 자현이 사자를 대하여 말하기를, “신이 처음 도성 문을 나올 때에 다시 서울의 거리를 밟지 않겠다고 맹서하였으니, 감히 조서를 받들 수 없습니다." 하고 드디어 표문을 올려서 사양하기를, “새의 본성으로 새를 길러 거의 종고(鐘鼓)의 근심이 없게 하고, 물고기를 보고 물고기의 기쁨을 알아 강호(江湖)에서 노니는 성정을 온전하게 해 주옵소서."하니, 왕이 표문을 보고서 나오게 할 수 없음을 알고, 특히 남경에 행차하여 그의 아우인 상서 자덕(資德)을 보내어 행재소에 나오기를 권하며 어제시 한 수를 하사하니, 자현이 부름을 받아 달려왔다. 왕이 이르기를, “도덕 높은 노인을 사모한 지 오래되었으니, 신하의 예절로 뵐 수 없다."하고, 명하여 전(殿) 위에 올라 절하게 하며, 자리를 주고 차를 내어 조용히 서로 말하고, 이내 명하여 삼각산 청량사(淸涼寺)에 머물게 하였다. 두 번째 만났을 때에는 양성(養性)하는 요결을 물으니, 대답하여 아뢰기를,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니, 왕이 탄복하여 칭찬하며 매우 후하게 대우하였다. 얼마 후에 굳이 산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니, 향과 법복을 주어 은총의 뜻을 표시하였다. 

召淸平居士李資玄赴行在資玄中書令子淵之孫容皃魁偉性聰敏登第爲大樂署丞忽棄官入春州淸平山葺文殊院居之蔬食布衣嗜禪悅道逍遙自樂遣內臣賜茶香金帛仍累詔徵之資玄對使者曰始出都門有不復踐京華之誓不敢奉詔遂上表辭曰以鳥養鳥庶無鍾鼓之憂觀魚知魚俾遂江湖之性王覽表知不可致特幸南京遣其弟尙書資德諭赴行在賜御製詩一首資玄赴召王曰道德之老嚮風久矣不宜以臣禮見命上殿拜賜坐茶湯從容相語仍命留三角山淸涼寺及再見問養性之要對曰莫善於寡欲王特加嘆賞待遇甚厚旣而固請還山乃賜茶香法服以寵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