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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 제8상, 고려 숙종(肅宗) 9년부터, 병인 고려 인종(仁宗) 24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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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강목8, 고려 숙종(肅宗) 9년부터, 병인 고려 인종(仁宗) 24년까지

9월 전() 대악서승(大樂署丞) 이자현(李資玄)을 불러서 행재소(行在所)에 나오게 하였다이자현은 이의(李顗)의 아들이다. 체격이 크고 헌걸찼다. 과거에 올라 대악서승이 되었는데, 갑자기 관직을 버리고 임진강(臨津江)에 이르러 강을 지나면서 스스로 맹세하기를, “이번에 가면 다시 서울에 들어오지 않겠다.”하였다. 춘주(春州)의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서 문수원(文殊院)을 수선하여 거처하고, 채식하고 베옷을 입고 참선(參禪)을 즐기고 도()를 좋아하여 사물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스스로 즐겼다. 왕이 여러 번 조서를 내려 부르니, 자현이 표문을 올려 사양하기를, “새 기르는 방법으로 새를 길러 종고(鐘鼓)의 근심을 없게 해 주시고, 물고기를 보고 물고기의 본성을 알아서 강호(江湖)의 성품을 이루게 하옵소서.”하므로, 왕이 표문을 보고는 그를 오게 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때에 와서 그 아우 자덕(資德)을 보내어 손수 쓴 편지로 그를 부르니, 자현(資玄)이 그제야 부름에 응해서 행재소(行在所)에 나왔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이 노인의 도덕(道德)을 사모한 지 오래이니 신하를 대우하는 예로 볼 수 없다.”하고서, 명하여 전상(殿上)에 올라와서 절하고 좌석에 앉게 한 뒤에 조용히 심신(心神)을 수양하는 요령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하고, 마침내 심요(心要) 1편을 바쳤다. 조금 후에 산에 돌아가기를 굳이 청하므로, 이에 다향(茶香)과 도복(道服)을 하사하여 특별히 대우하였다. 그러나 자현은 성품이 인색하여 재물을 늘리어 그 지방에서 그를 싫어하고 괴롭게 여겼다오씨(吳氏)는 이렇게 적었다세상의 군주들은 항룡(亢龍)이 되기를 만족하게 여기고, 미천한 사람에게 굽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김이 많으니 비록 선행(善行)을 좋아하고 현인을 좋아하는 일을 권려(勸勵)하더라도 오히려 그가 스스로 성인인 체할까 두려우니, 만약 반드시 신야(莘野)위수(渭水)남양(南陽)의 현인(賢人)을 기다린 후에 비로소 현인(賢人)을 초빙하는 예물(禮物)의 예절을 시행한다면 장차 임금의 곁에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현인을 초빙하면서 먼저 곽외(郭隗)로부터 시작하고, 은거(隱居)해 사는 곳을 황제가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 세상에서 미담(美談)이 되었다. 자현의 됨됨이를 비록 환하게 알 수는 없지만, 예종(睿宗)이 선비를 대우하는 정성은 비난할 수 없다. 애석하게도 임금을 도와 치적(治績)을 올리는 신하가 없기 때문에 현인(賢人)을 올바르게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

九月 徵前大樂署丞李資玄 赴行在 資玄顗之子也 容貌魁偉 登第爲大樂署丞 忽棄官 至臨津過江 自誓曰 此去不復入京城矣 入春州淸平山 葺文殊院居之 蔬食布衣 嗜禪悅道 逍遙自樂 王屢詔徵之 資玄上表辭曰 以鳥養鳥庶無鍾鼓之憂觀魚知魚俾遂江湖之性 王覽表知不可致至是遣其弟資德 手書徵之 資玄乃赴召詣行在 王曰 朕慕此老道德久矣不宜以臣禮見 命上殿坐 從容問養性之要對曰莫善於寡欲 遂進心要一篇 旣而固請還山 乃賜茶香道服以寵之 然資玄性吝殖貨 一方厭苦之 吳氏曰 世之人君 甘爲亢龍 多恥下賤 雖勸以樂善好賢 猶懼其自聖 若必待莘渭南陽之賢 然後始加束帛之禮 則其將無人乎君側 所以先從隈始 幽居帝盡 世爲美談 資玄爲人 雖不能灼知 睿宗待士之誠 不可非也 惜其贊襄無臣 不能正得其賢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