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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강목』 제8상, 고려 숙종(肅宗) 9년부터, 병인 고려 인종(仁宗) 24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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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강목8, 고려 숙종(肅宗) 9년부터, 병인 고려 인종(仁宗) 24년까지

청평산인(淸平山人) 이자현(李資玄)이 졸하였다이자현은 부귀한 집안에서 태어나 왕의 외척과 연줄이 있었으나 번화한 것을 싫어하여 관직을 버리고 산에 들어가서 한평생을 마쳤는데, 그가 병이 있자 왕이 내의(內醫)를 보내 문병(問病)하고 차와 약을 하사하였으며, 졸하니, 시호를 진락(眞樂)이라 하였다이황(李滉)은 이렇게 말하였다이자현(李資玄)은 문벌이 좋은 집안에서 생장하여 풍류(風流)와 문아(文雅)가 그 당시에 가장 뛰어나서 견줄 만한 이가 없었다. 일찍이 벼슬하여 현관요직(顯官要職)에 올랐으니, 공경(公卿)의 지위를 얻는 것은 땅위의 쓰레기를 줍는 것처럼 쉬웠을 터인데도 이에 능히 매미가 더러운 속에서 허물을 벗고, 기러기가 만 리 밖에서 높이 나는 듯하였으니, 마음속에 즐거워하는 바가 있지 않다면 어찌 이와 같았겠는가! 사신(史臣)이 깎아내리며 가벼이 여겨 욕심이 많고 비루하다고 지칭함이 어찌 그다지도 심한가? 옛날에 충명일(种明逸)1)이 만년(晩年)에 전원(田園)을 사두니, 고인(古人)의 언행과 인격을 평론하는 선비가 큰 명성은 실제보다 지나치기가 쉽다.’ 했거나, 청의(淸議)가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 하였을 뿐이지, 어찌 지금의 사관(史官)처럼 너무 지나치게 해치는 의논이 있었던가?”

청평산(淸平山)을 지나면서 느낌이라는 시()는 이러하다.

산협 사이 감도는 물 잔도는 구불구불 / 峽束江盤棧道傾

홀연히 구름 밖에 맑은 시내 흐르네 / 忽逢雲外出溪淸

지금까지 사람들이 여산사를 말하는데 / 至今人說廬山社

이곳에서 그대는 곡구 밭을 갈았다네 / 是處君爲谷口耕

허공 가득 하얀 달에 그대 기상 남았는데 / 白月滿空餘素抱

맑은 이내처럼 자취 없이 헛된 영화 버렸구나 / 晴嵐無跡遣浮榮

우리나라 은일전(隱逸傳)을 누가 지어 전하려나 / 東韓隱逸誰修傳

조그만 흠 꼬집어서 흰 구슬을 타박 말라 / 莫指微疵屛白珩

유씨(兪氏)는 이렇게 적었다이씨(李氏)는 자연(子淵) 이후부터 대대로 초친(椒親)2)이 되어 문호(門戶)가 높고 권위가 매우 성대한데, 이자겸이 몰래 흉역(凶逆)한 마음을 품고 있다가 마침내 집안을 전부 소멸시켜 유배되어 거의 없어졌는데도, 이자현(李資玄)만은 초연히 재앙을 면하게 되었으니, 대개 당나라 무유서(武攸緖)3)의 무리이다.”

 

 

1) 충명일(种明逸): 송나라 충방(种放)을 말한다.

2) 초친(椒親): 후비(后妃) 친정(親庭)붙이.

3) 무유서(武攸緖):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조카이다. 성품이 담백하고 욕심이 적어 매일 주역(周易)과 노장서(老莊書)를 읽으면서 기껍게 지냈다. 용문(龍門)과 소실봉(少室峯) 사이에 은거(隱居)하였으며, 겨울에는 띠와 산초로 집을 짓고 여름에는 석실(石室)에 거처하였다. 만년(晩年)에도 피부에 윤기(潤氣)가 충만하였으며, 눈동자에서 자광(紫光)이 쏟아져 나와 낮에도 별을 볼 수 있있었다고 한다.

淸平山人李資玄卒 資玄生長富貴 夤緣戚里 乃厭紛華 棄官入山 以終身 及有疾 王遣內醫問疾 賜茶藥 諡號眞樂 李子曰 資玄生長閥閱風流文雅冠絶當時亦嘗筮仕而登顯要其取靑紫不啻如拾地芥然乃能蟬蛻於濁穢之中鴻冥於萬物之表非有所樂於胸中者安能如是哉史臣貶剝指爲貪鄙何甚耶昔种明逸之晩節置田園 尙論之士不過曰盛名難副而已淸議惜之而已安有如今史氏刻害過甚之論乎過淸平山有感詩曰 峽東江盤棧道傾 忽逢雲外出溪淸 至今人說廬山社 是處君爲谷口耕 白日滿空餘素抱 晴嵐無迹遣浮榮 東韓隱逸誰修傳 莫指微疵屛白珩兪氏曰 李氏自子淵以後 世作椒親 門戶崇高 威權翕赫 自謙潛懷凶逆 卒之覆宗 流殛殆盡 資玄超然免於禍網 蓋唐武攸緖之流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