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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청평산문수원중수기(春川淸平山文殊院重修記)」

상세정보

기문(記文)

 

고려시대에 이자현이 거처하자 진락당중수기(眞樂堂重修記)가 있게 되었다. 김부철(金富轍)이 짓고 스님 탄연(坦然)이 썼는데 필력이 힘차다. 조선 명종 때 보우선사(普雨禪師)가 이 절에 주지로 있었을 때 중수하였다. 청평사중수기(淸平寺重修記)에 이르길.조선보우화상(朝鮮普雨和尙)()함은 번성의 어머니요, 이루어짐은 무너짐의 자식이 되므로, 낡은 것을 수리하여 새로움을 도모하는 것은 아들과 어머니에 따르는 일이다.

나는 선림(禪林)의 병든 잎으로서 다행히 훌륭한 임금이 다스리는 조정을 만나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일으킨 뒤 을묘년(乙卯年; 1555) 가을에 이 절에 들어왔는데, 이 절은 진실로 창건한 지 너무 오래되어서 모두 퇴락하였다. 그 뒤 정사년(丁巳年; 1557) 봄에 삼가 국왕의 어머님 교지를 받들어 많은 시주를 거두어 들여서 여러 요사채를 한꺼번에 모두 새롭게 수리하였으나, 오직 능인보전(能仁寶殿)은 그대로 둔 채 겨우 서까래만 갈았을 뿐이다. 일은 비록 삼베실로 비단옷을 기운 격이지만, 그 공은 돌을 갈아 하늘을 기운 것과 같을 것이다.

! 천지가 생긴 지 몇 만 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영현(永玄)처음 절을 창건한 당나라 스님이다.을 만났고, 영현을 만난 지 몇 백 년 뒤에야 다시 오늘이 있게 되었으니, 고요히 생각하면 비록 제아무리 정밀하게 계시하는 자라도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즐거운 마음으로 시주하신 분들의 성명을 적어서 뒷사람들의 귀감으로 삼는다.

라고 하였다.

 

春川淸平山文殊院重修記

高麗李資玄所居, 有眞樂堂重修記, 金富軾撰, 釋坦然書, 筆力遒勁, 朝鮮明宗時, 普雨禪師, 住持是寺, 爲之重修, 其淸平寺重修記云。【朝鮮普雨和尙

衰惟盛母, 成乃壞子, 修舊圖新, 可應子母, 余以禪林病葉, 幸遇聖朝, 重興之後, 歲次乙卯之秋, 退老是寺, 寺實刱久, 盡爲朽落, 越丁巳之春, 欽奉慈旨, 兼募衆緣, 凡諸寮舍, 一皆重新, 惟能仁寶殿, 依舊改椽而已, 事雖同綴麻而完錦, 功可伴鍊石而補天, 嗚呼, 自有天地幾萬年, 而乃遇永玄, {初刱本寺之唐僧也} 自有永玄幾百年, 而又有今日也, 靜言思之, 雖巧曆, 有不可思算者也, 玆記隨喜檀施姓氏, 以爲後來之龜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