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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우선사피참록(普雨禪師被讒錄)」

상세정보

중 보우는 무차대회(無遮大會)⑴를 열어, ()()이 다 우러러보게 되어 궐내에 알려져서 위로 문정왕후(文定王后)를 속여 세력을 얻고, 불사(佛事)를 크게 베풀어 양종(兩宗)⑵의 선과(禪科)를 설치하고 도를 깨달았다고 자칭하며 궐내에 거처하였다. 석담일기

기유년에 명하여 새 인수궁(仁壽宮)을 옛 정업원(淨業院) 자리에 짓게 하였다. 신해년에 다시 양종을 세워 선과를 베풀었다. 이때에 문정왕후가 불사를 숭상하자, 보우가 방자히 떠벌려서 이교(異敎)가 크게 성하므로, 양사와 홍문관이 해가 지나도록 간하여도 듣지 않고, 대신 또한 백관을 거느리고 궁정(宮庭)에 나아가 논핵하여도 윤허하지 않았다. 윤원형(尹元衡)만이 시종 참여하지 않았으니, 대비의 뜻을 거역하지 않으려 함이었다. 동각잡기

 

과거에 궁중에서 바야흐로 불교를 숭상하니, 감사 정만종(鄭萬鍾)이 요승 보우를 천거하여 크게 불법을 펴, 봉은사(奉恩寺)정릉(靖陵) 곁에 있다.는 선종(禪宗), 봉선사(奉先寺)광릉(光陵) 곁에 있다.는 교종(敎宗)으로 삼았다. 이듬해 임자년부터 선과초시(禪科初試)를 베풀고, 회시(會試)에 강경(講經), 제술(製述)로 시험하고 합격자에게 첩()을 주어 문과의 제도를 대강 모방하였다. 8도의 사찰이 일시에 새로워지니, 삼사에서 이를 간하고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궁정에 나아가 보우의 죄상을 논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성균관 유생이 보우를 죽일 것을 여러 차례 상소하여 청하였으나, 또한 윤허하지 않으니, 권당(捲堂)하고 나갔다. 임금이 날마다 승지와 사관(史官)을 보내어 유생을 타일러서 식당에 나아가게 하여도 유생이 나아가지 않으니, 조정에서 유생의 부형이 되는 조정의 관원을 불러 이들로 하여금 각각 자제들에게 관에 나아가도록 권유하게 하였는데, 한 달 남짓이나 이렇게 하였다. 서애잡기(西厓雜記)

 

과거에 중들이 계통이 없는 것을 염려하여 대신과 의논하여 양종(兩宗)을 세웠는데, 영상 심연원(沈連源)과 좌상 상진(尙震)은 아첨하여 어기지 않고 한 마디 말로도 그 불가함을 다투지 않았다. 심지어 임금이 대신에게 물을 때 바로 깨우칠 수 있었는데도 상진은 직언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부드러운 말로 순종하여 마침내 선과(禪科)를 다시 회복하였다. 연원(連源)은 경술년에 죽었다.

 

함경도 어사 왕희걸(王希傑)의 장계에, “북도 사람에게 들으니, 중 보우가 역적 유()의 종으로 중이 된 자와 안변 황룡사(黃龍寺) 초암(草菴)에 같이 있었는데, 유가 망명해 오자 굴 속에 있게 하였다가 크게 수색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우는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석왕사(釋王寺)로 옮겼는데, 유의 종 무응송(無應松)이 작은 쪽지를 보우에게 주니, 보우가 보고, ‘요새는 길일(吉日)이 없으니 너는 수일 동안 물러가 있거라.’ 하고는 쌀을 꾸어 깊은 산골짜기에서 여러 차례 재를 올렸는데, 쌀을 꾸어 온 중이, ‘아직도 석왕사에 있다.’ 합니다.” 하였다. 정원(政院)에서 법관에게 추문할 것을 청하니, 전교하기를, “보우를 해하려는 자의 지어낸 말이 분명하니, 추문하지 말라.” 하였다. 양사와 대신이 추문할 것을 청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이조 판서 송세형(宋世珩)이 홀로 아뢰기를, “보우의 권세가 중하고 너무 교만하여 모든 국민이 다 우러러 받들기를 군부(君父)와 같이 하여도 한 사람도 말하는 이가 없으니, 불칙한 화가 있을까 두렵습니다.”하고, 수백 가지 패악한 소행을 역력히 들어 말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동각잡기

 

보우가 오래도록 봉은사 주지로 있으면서 중종의 능을 절 곁으로 이장하여, 그 절의 세력을 굳히고자 문정왕후를 기만하여, “선릉(宣陵) 근처가 길한 조짐이 있으니, 중종의 능을 그리로 옮기기를 청하나이다.”하였다. 문정왕후가 그 말을 믿고, 윤원형(尹元衡)이 대비의 뜻을 맞추어 영합하여 대신을 위협하니, 대신 안현(安玹) 등이 아부에 따라 어기지 않아 마침내 이장하는 계책을 이루었다. 장차 문정왕후가 죽으면 역시 거기에 함께 장사하려 하였으나, 지세가 낮아서 매년 강물이 넘쳐 들어오므로, 문정왕후의 장지는 부득이 다른 곳에 정하고, 공론이 다 중종의 능을 이장하려 하였으나, 두 번 옮겨 모시는 것이 어렵다 하여 중지되었다. 석담일기

 

20년 을축년에 문정왕후가 승하하니, 대간이 태학생 김충갑(金忠甲) 등과 더불어 계속 상소하여, 보우를 죽이기를 청하여 제주로 귀양 보내었는데, 목사 변협(邊協)이 다른 일로 매를 때려죽이니 사림(士林)이 통쾌하게 여겼다. 석담일기』ㆍ『지봉유설

 

과거에 보우가 불사를 굉장하게 베풀고, 거처가 참람하게 임금에 비겼으며, 또 회암사(檜岩寺)에서 무차회(無遮會)를 여는데, 그 비용이 매우 많이 들었다. 이때에 이르러 대간의 아룀과 유림의 상소로 인하여, 밖으로 축출하고 경산(京山)에 드나들지 못하게 하였더니, 포마(鋪馬)를 훔쳐 타고 달아나다가 인제에서 붙들려서 제주로 귀양 갔다. 고사촬요

 

보우가 마음대로 떠벌려 불교가 크게 성하니, 사월 초파일에 회암사에서 무차대회를 행하려 할 때 비용이 국고를 거의 다 비게 하고, 8도의 승려와 백성들이 분주히 몰려드는데, 때는 곧 47일이었다. 문정왕후가 갑자기 이날 승하하니 승려와 백성들이 놀라 흩어졌다. 당초에 수천 석의 쌀로 밥을 지으니 그 빛이 붉어 피로 물들인 것 같아서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었더니, 불사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태천일기(苔泉日記)

 

병인년에 양사에서 아뢰어 양종선과(兩宗禪科)를 파하였다.

1) 무차대회(無遮大會): 불교에서 행하는 행사로 중을 불러 공양을 할 때, 중의 수를 제한하지 않고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2) 양종(兩宗):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 불교의 여러 종파가 있던 것을 조선 시대에 와서 불교를 도태시키기 위하여 선ㆍ교(禪敎)의 양종(兩宗)으로 합쳤다.​

 

 

普雨禪師被讒錄

僧普雨, 以設無遮大會, 爲僧俗所推敬, 聞于闕內, 上罔文定王后, 因之得勢, 大張佛事, 設兩宗禪科, 普雨自稱得道, 居處大內{右 石潭日記}

己酉, 命搆新仁壽宮于舊淨業院基, 辛亥復立兩宗, 設禪科, 時文定, 方崇佛事, 普雨恣爲譸張, 異敎大盛, 兩司玉堂, 爭之踰年, 不能得允, 大臣亦率百官, 廷請不允, 元衡獨終始不爲進叅, 盖不欲逆慈旨也{東閣雜記}

, 宮中方崇佛事, 監司鄭萬鍾, 引進妖僧普雨, 大張佛法, 以奉恩寺, {靖陵側}爲禪宗, 以奉先寺{光陵側}爲敎宗, 自明年壬子, 始爲禪科, 初試而會試, 講經, 製述, 賜牒, 畧倣文科, 八道寺刹, 一時鼎新, 三司爭之, 大臣率百官, 廷論普雨之罪, 不從, 舘學儒生, 請誅普雨, 屢䟽, 亦未得, 請空舘出去, 上日遺丞旨史官, 招諭儒生, 令就食堂, 儒生無就者, 朝廷招朝官之爲父兄者, 使各勸踰子弟就舘, 如此幾月餘{西崖雜記}

, 慮僧徒無統, 議大臣復立兩宗, 領相沈連源, 左相尙震, 阿諂不違, 而無一言面爭其不可, 至於下問之際, 正値納約之時, 而震非徒不進直言, 又從以軟順之辭, 遂復禪科

咸鏡御史王希傑, 狀啓, 因北方人, 聞僧普雨, 與逆瑠之奴爲僧者, 同居于安邊黃龍山草庵, 瑠亡00, 使之穴處, 聞大索之奇, 雨懼禍及, 移住釋王寺, 瑠奴無應, 私持小紙授雨, 雨覽訖曰, 近無000, 汝可避處數日, 貸米設聖齋于深谷者, 非一而貸米之僧, 尙在釋王寺云云, 政院請付有司推之, 傳曰, 欲害雨者, 造言判然矣, 勿推, 兩司及大臣, 請推問, 不允, 吏判宋世珩, 獨啓, 極陳普雨權重驕悍, 一國之人, 仰戴奔趨, 如君父, 而無一人爲言者, 恐有不測之禍, 歷數所行, 悖惡之事, 累數百言, 不允{東閣雜記}

普雨, 久作奉恩寺住持, 欲移中廟陵寢于寺側, 以固其寺之勢, 乃誑惑 文定, 謂 宣陵近處, 有吉兆請遷 中廟山陵于其地 文定信之, 元衡逢迎慈旨, 脅持大臣, 大臣安玄等, 依阿不敢違, 遂成遷陵之計於文定 百歲之後, 使得同兆而地勢卑下, 每年江水漲入, 文定之喪, 不得已更卜他處, 物儀皆欲遷陵而以再遷爲難而止{石潭日誌}

二十年乙丑 文定昇遐, 臺諫與大學生金忠甲等, 連章請誅普雨, 命流于濟州, 牧使邊協, 因事杖殺之, 士林快之{石潭日記及芝峯類記}

初普雨, 廣張佛法, 居處僣擬, 又設無遮會於檜巖寺, 其費萬計, 至是, 因臺啓儒䟽, 命黜于外, 毋令出入京山, 乃竊舖馬而走, 被獲於麟蹄, 命流于濟州撮要

普雨, 恣爲譸張, 異敎大盛, 四月八日, 將行無遮大會於檜巖寺, 所供幾竭國力, 八道僧俗, 奔走塡咽, 時四月初七日也, 文定王后以是日薨逝, 僧俗驚惶潰散, 當初米數千餘斛作飯, 其色赤如血染, 人甚怪之, 事竟不成{苔泉日記}

丙寅兩司啓罷兩宗禪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