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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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록(雜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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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나라의 평양공주가 몸에 상사뱀이 붙었는데, 여기에 와서 가사공덕을 쌓음으로써 뱀의 원한이 풀어졌다. 이에 공주가 이 절을 중창하여 보현원이라 하였다.

 

1. ()나라 평양공주(平陽公主)가 상사뱀을 물리친 후 대법전(大法殿)을 중건하고, 만불도(萬佛圖)를 봉안하고 대법전 앞에서 조석으로 참배할 때 기거할 이궁(離宮)을 건설하며 법우중신비(法宇重新碑)를 세울 때 저수량(褚遂良)으로 명령을 받들어 쓰게 하였다. 이 절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상간척리(上看尺里) 민호(民戶) 전부를 절의 노비로 정하여 이궁(離宮)과 중신비(重新碑)를 수호케 하였다. 공주가 귀국한 후 상간척리 황씨 일동이 절의 노비란 두 글자에 원한이 골수에 맺혔는데 마침 황씨중에 상궁(尙宮)이 된 한 사람이 뽑혀 궁궐에 들어가게 되자 청평사 승려가 참람함을 범하여 궁궐까지 미리 준비하였다고 왕에게 무고하였다. 위에서 금부나졸(禁府邏卒)을 보내 중을 압송하는 동시에 이궁을 불태우고 중신비(重新碑)를 깨부셨다고 하며 만불도(萬佛圖)도 법당(法堂)이 불탈 때 불탔다고 한다.

 

1. 이 산에 8개 암자가 있다. 견성암(見性庵)절 북쪽 2리 쯤에 있다.양신암(養神庵)절 왼쪽 1리 쯤에 있다.칠성암(七星庵)태고국사가 있던 곳이다.선동암(仙洞庵)절 서쪽 5리쯤에 있는데 벽 위에 청평식암 네 자를 새겼다.곡란(鵠卵)이라고도 한다. 등운암(騰雲庵)선동 위에 있으며 의상조사가 설법한 곳이다.복희암(福禧庵)절 남쪽 1리 쯤에 있으며 나옹화상이 복을 빌던 곳이다.지장암(地藏庵절의 동남쪽에 있다.식암(息庵)선동상암(仙洞上庵) 뒤 석벽에 청평식암 네 자를 새겼는데, 그 바위 위로 좌선하는 곳이다.

 

1. 환성대사(喚惺大師)가 이 절에 있을 때 학도 수백 명과 대승경(大乘經)을 강하였다. 하루는 여러 학생이 영지에서 수영을 하다가 하나의 둥근 비석을 얻었는데 새긴 글자가 있었는데, “유충관부천리래(儒哀冠婦千里來)”였다. 환성대사가 자세히 보더니 뜻을 풀이하길, “()는 사()자이고, ()은 심()자니, 합하여 말하면 지()자다. 관부(冠婦)는 안()자며 천리(千里)는 중()자니 모두 지안(志安)이 다시 온다는 것이다. 지안은 나의 이름이니 나의 전신이 이 절에서 중이 되었던가라고 하였다. 대개 예전에 나옹선사가 이절에 있을 때 돌에 새긴 예언을 못 가운데 던졌다고 하니, 환성은 나옹의 후신이라고 한다.(전설)

 

감사(監司)인 정() 아무개가 법당의 단청이 황홀한 것을 미워해서 소나무 그을음으로 검게 만들었다. 지은 행위에 대해 과보를 받았으니 기락천(岐落川)변에서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전설)

 

조선 철종(哲宗) 임술년(壬戌年) 대웅전 터에 요사채를 중건했다. 대개 전년의 화재 때문이다. 고종(高宗) 경진년(庚辰年)에 다시 화재가 났다. 그해 요사채를 세 번째 창건했다. 광무(光武) 4년에 익랑(翼廊) 10칸을 건축했다고 한다.(전설)

 

1. 원태정황후문수원비음기(元泰定皇后文殊院碑陰記) 이 비에는 생각건대 상사뱀 전고가 있었을 것이나 비의 소재를 알 수 없으니 애석하다.어떤 이는 저수량이 명령을 받고 쓴 당나라 평양공주의 중신사우비문(重新寺宇碑文) 중에 상사뱀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하는데, 이 설이 맞을 것이다.

 

1. 청평사(淸平寺)는 청평산 아래에 있다. 문정대비(文定大妃) 때 승 보우(普雨)가 문수원(文殊院)을 중수하였는데 그 옛 제도는 더욱 창활해지고 커져 그 넓고 화려함이 지극하였다. 이름을 고쳐 경운산만수성청평선사(慶雲山萬壽聖淸平禪寺)라 하고, 법전의 이름은 능인전(能仁殿)이라 하였다. 전의 동쪽에는 구광전(九光殿)과 사성전(四聖殿)이 있는데, 구광전은 일월성신을 그려서 벌여 놓았으며, 사성전에는 유불선도(濡佛仙道)의 네 가지 책을 가져다가 수장해 놓았다.

 

1. 법정(法庭) 가까운 북쪽에 극락전이 있는데 또한 보우가 세운 것이다. 그 굉장히 화려하고 문체만은 비할 데가 없다. 황금을 써서 불좌를 조성하고, 집의 사면 기둥과 서까래는 모두 먼저 가는 모시로 짜고 다시 전체를 옻칠하고 마지막으로는 주홍으로 윤색하니 접촉하는 물상이 비치는 바 빛나는 것이 거울과 같았다. 당초의 물력(物力)의 비용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

 

1. 법당의 남쪽에는 누각 하나를 세웠는데 강선각(降仙閣)이라 한다. 선왕 세 분의 위판을 여기에 봉안하였는데, 북쪽으로 불전을 향하고 있으며 이것도 곧 보우가 지은 곳이다.

 

1. 이절은 보우가 창설하고 살았는데 이름난 꽃과 이상한 풀들이 모두 궁원(宮苑)에서 옮겨다 심은 것이다. 한여름에는 대나무로 와상(臥床)을 만드는데 사면에 금환(金環)을 붉은 끈으로 매어놓고 그 속에 누우면 큰 놋쇠동이에 얼음을 채워서 비치게 하고, 네 사람이 일시에 들어서 네 모퉁이에 걸어놓아 벼룩이나 빈대가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무릇 스스로 받들고 드러내는 바가 이러하였다.

 

1. 나옹철장(懶翁鐵杖)은 청평루 위 창고에 있다. 서향원(瑞香院)의 옛터는 영지(影池)의 서쪽 골짜기에 있는데 김시습이 살던 곳이다.

 

석굴은 법전(法殿) 동남쪽 산록에 있는데 넓이는 4~5칸이고 가운데 석불 23, 목불 1좌 가 있는데 모두 본사가 창건되었을 때의 불상이다.

 

 

1. 영지는 절 아래 1리에 있는데, 못물은 장마가 지고 크게 가물어도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견성암(見性菴)은 먼 봉우리에 있는데 그림자가 비치며, 중이 지나가도 못 속에 있는 듯하였다.(읍지)

 

1. 고골(古骨)은 선동(仙洞)에 있는데 질그릇이 성하였다. 그릇 속 네 모퉁이에는 건곤감리(乾坤坎离)의 괘()를 새기고 주홍색으로 메워서 돌 사이에 갈무리하여 두었다. 전설에 이르기를, 진락의 유해는 정두원(鄭斗源)⑴이 방백일 때 기와와 벽돌에 명을 새기고 승 문옥(文玉)으로 하여금 개장하게 하였다고 한다.

 

오층석탑의 높이는 10척 이상이고 구송폭포 왼쪽 기슭 바위 위에 있다.

 

우두사(牛頭寺)는 우두산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도승(道僧)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잊었다. 우두산에 올라서 사방의 경치를 보다가 강 가운데 바위 위를 보니 나이 많은 스님이 홀로 앉아 있었다. 바로 내려가서 강가에 이르러 찾았으나 없었다. 도승은 깍지를 끼고 꿇어 앉아 사흘 밤낮 동안 염불을 하면서 돌아보았으나 마침내 보지 못했다. 도승이 범어로 소리치길, “우두문수(牛頭文殊)”라 했더니 어떤 석불이 물 위로 몸을 드러내더니 바위 위로 나와 앉았다. 도승이 절을 하면서 절을 지을 쌀과 돈을 내달라고 빌어서, 절을 짓고 부처를 봉안했다고 한다. 지금 문수석불은 우두산 꼭대기에 드러나 앉았는데 우두사 창설 때 지내촌(枝內村) 삼성당(三聖堂)에서 매일 밤 악기를 펼치고 잔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절이 불타는 초기에 매일 밤 통곡하며 슬퍼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읍지)

 

1. 삼회사(三檜寺)는 경운산의 서쪽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절은 소양정과 함께 모두 삼한시대에 세워졌는데 천 년된 옛 집이 조금도 기울거나 틈이 생긴 곳이 없으며, 섬돌은 잡석으로 어지러이 쌓았는데 조금도 미세한 틈으로 물이 샐 곳이 없으니, 보는 자가 기이하게 여겼다. 을해년에 화전으로 개간하는 자에 의해 모두 타 없어졌다고 한다.

 

1, 법화사(法華寺)는 용화산(龍華山) 서북쪽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1, 양화사(楊花寺)는 서상면(西上面) 양화(楊花) 언덕에 있었으나, 지금은 오래된 탑만 있고 건물은 없다.

 

1, 반수암(伴睡庵)은 양화사(楊花寺) 경내에 있다.

 

1, 조면사(造麵寺)는 서상면(西上面) 수정동(水精洞)에 엤는데, 주춧돌과 설돌만 있다.

 

1, 고정암(孤淨庵)은 삼악산(三岳山) 동쪽 바위 아래에 있다. 요즘 고정암(高精庵)이라 부른다.

 

1, 삼악사(三岳寺)는 삼악산에 있다.

 

1, 안화사(鞍化寺)는 안화산(鞍化山)에 있다.

 

1, 전방사(箭防寺)는 전방산(箭防山)에 있다.

 

1, 충원사(冲圓寺)는 봉의산 서쪽에 있었는데 찾을 수 있는 형태와 기초가 없다. 계해반정(癸亥反正) 초에 충원현감(忠原縣監) 유정립(柳鼎立)이 화를 입어 춘천에 와서 살았다. 터를 닦을 때 땅을 파다가 불기(佛器)를 얻었다. ()신라충원사(新羅冲圓寺)’라 쓰여 있어서 비로소 절의 옛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원(忠原) 음이 같아서 매우 싫어했는데 얼마 안 있어 죽으니 문득 그 사이에 징험이 있어서인가? 괴이한 일이다.

 

1, 식암(息庵)은 경운산(慶雲山)에 있다. 이자현(李資玄)이 살던 곳으로 바위 위에 청평식암(淸平息庵) 네 자가 있는데, 이자현이 손수 판 것이라 한다.

 

1, 고총(古塚)은 청평사(淸平寺) 금표(禁標) 밖 서쪽 산록에 있다. 전설에 정승묘라 하는데 지금 석인(石人)은 부러져서 길 왼쪽에 넘어져 있으니 누구의 묘인지 자세하지 않다.

 

1, 견성암(見性庵)은 부용봉(芙蓉峯) 아래에 있는데 그림자가 영지(影池)에 비친다.

 

1, 선동(仙洞)은 식암(息庵) 서쪽 아래 기슭에 있다. 청평선동(淸平仙洞)이란 네 글자를 크게 써서 바위 절벽 위에 새겼다. 매우 뛰어나고 기이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1, 양신암(養神庵)은 부용산(芙蓉山) 동쪽 기슭에 있다.

 

 

1, 은선암(隱仙庵)은 삼회동(三檜洞) 서쪽 석봉(石峯) 아래에 있다.

 

1, 심곡사(深谷寺)는 독산(禿山) 서쪽 갈래인 퇴곡(退谷) 북쪽 봉우리 아래에 있다. 문을 열고 앉아서 보면 고산(孤山), 봉산(鳳山), 우평(牛坪), 소양(昭陽), 노주(鷺洲) 등이 모두 눈앞에 있다.

 

1, 사자사(獅子寺)는 화악(華岳)의 동쪽 갈래에 있는데 높은 사다리가 있는 매우 험한 곳이라 소와 말은 통할 수 없다. 그래서 병자난리 때 사람들이 많이 병란을 피하여 온전할 수 있었다. 도승(道僧) 성정(性靜)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1, 폭포(瀑㳍)는 청평사 아래 이정보(二町步)에 있다. 가파른 절벽에 걸려있는 것이 긴 시내와 같다. 날아서 바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이 몇 십 척인지 알 수 없다. 소리는 성그나 옥 부서지는 것 같고, 물방울 떨어져 구슬을 이루니 안개와 노을이 가리거나 그늘지게 하여 신선의 세계 같다. 이것이 옛사람이 경운산의 뛰어난 경치를 사랑하여 즐기면서 돌아가는 것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닌가.

 

1, 팔송대(八松臺)는 지금 자세하지 않다.

 

1, 반석(盤石)은 청평사 서쪽 시내 가에 있다. 둥근 것이 너럭 같고 평평하게 퍼져 있어 맑게 흐른다. 그러므로 반석이라 부른다.

 

1, 고산대(孤山臺)는 춘천부 서쪽 3리 들판 가운데 있다. 돌 봉우리가 우뚝한데 십여 명이 앉을 수 있다. 장양강(長楊江)이 그 아래에 있다. 민간에선 부래산(浮來山)이라고 한다.

옹정(雍正) 6년⑶ 무신년(戊申)년 음력 3

불상(佛像)삼존(三尊)을 조성하다.

증명(證明) 호백(皥白), 지전(持殿)⑷ 성규(性規), 화공(畵工) 태원(太元) 도안(道眼)2), 화주(化主)⑸ 각선(覺禪), 화주니(化主尼) 채헌(彩憲) 도감(都監) 석찰(釋察), 별좌(別座)⑹ 도영(道英)

개금(改金) 가사불사(袈裟佛事) 대시주방함(大施主芳)

 

경성부(京城府) 죽첨정(竹添町) 2정목(二丁目) 31번지(番地)

건명(乾命) 갑인생(甲寅生) 김경배(金慶培)

양주

(兩主)

청신녀(淸信女)⑺ 정묘생(丁卯生) 한정만월(韓淨滿月)

곤명(坤命) 임자생(壬子生) 박씨(朴氏)

() 갑신생(甲申生) 최원만일(崔圓滿日)

건명(乾命) 병오생(丙午生) 이희복(李熙福)

 

곤명(坤命)정미생(丁未生) 김씨(金氏) 대불심(大佛心)

곤명(坤命) 경진생(庚辰生) 마석현(馬奭賢)

 

경관수동(京觀水洞) 21번지(番地)

신녀(信女) 을축생(乙丑生) 안보명불(安普明佛)

 

건명(乾命)⑼ 기유생(己酉生) 배석환(裵碩煥)

화주(化主) 권범운(權梵雲)

 

    

중종(中鍾) 대시주방(大施主芳)

신녀(信女)⑽ 갑인생(甲寅生) 박기우(朴基佑), 신녀(信女) 을묘생(乙卯生) 박기석(朴基石), 신녀(信女) 한지호(韓晉鎬) 화주(化主) 겸 주지(住持) 김청암(金靑庵) 감사(監事) 김상흔(金尙昕) 법무(法務) 박연식(朴淵植) 원주(院主) 송칠성(宋七星)

불기(佛紀) 2959년⑾ 임신년(壬申年) 425

 

1) 1581(선조 1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정숙(丁叔), 호는 호정(壺亭). 정자 명호(明湖)의 아들이다. 1612(광해군 4) 생원시에 합격, 1616년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1631(인조 9)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서 화포(火砲천리경(千里鏡자명종(自鳴鐘) 등 현대적 기계와 함께 서적을 신부 육약한(陸若漢)으로부터 얻어가지고 돌아왔는데, 화약의 제조법도 이때에 전하여졌다고 한다.

2) 원문에 로 되어 있으나 의 오기로 보임.

3) 옹정(雍正) 6: 1728.

4) 지전(持殿): 법당과 부처님을 시봉하는 스님

5) 화주(化主): 인가(人家)에 나다니면서 염불이나 설법을 하고 시주하는 물건을 얻어 절의 양식을 대는 승려.

6) 별좌(別座): 부처님께나 스님네께 공양할 반찬과 음식을 만드는 소임

7) 청신녀(淸信女):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8) 곤명(坤命): 축원문에서 여자를 이르는 말

9) 건명(乾命): 축원문에서 남자를 이르는 말.

10) 신녀(信女): 불도를 믿고 3() 5()를 받은 세속의 여성.

11) 불기(佛紀) 2959: 1932년.


第九章 雜錄

, 唐朝平陽公主, 身有相思蛇, 來此有袈裟功德, 蛇寃解脫, 於是公主, 重刱此寺, 名普賢院云{傳說}

, 唐平陽公主, 相思蛇斥滅後, 大法殿重建, 萬佛圖奉安하고 於殿前朝夕參拜時 起居離宮建設하며 法宇重新碑할 제 臣褚遂良으로 奉敎書하고 當寺最近 洞上 看尺里 民戶 全部寺奴하야 離宮重新碑守護케 하엿든 바 公主 歸國後 上看尺里 黃氏 一同寺奴 二字痛入骨髓이더니 適黃氏中으로 尙宮 一人被選入闕케 됨에 淸平寺 僧侶氾濫한 뜻을 두고 宮闕까지 豫備하엿다 하야 君上의게 誣告함애 自上으로 禁府邏卒命送하야 寺僧押上하라는 同時 離宮燒火하고 重新碑擊碎云而萬佛圖法堂火燒燬燼云

, 此山有八庵, 曰見性庵{在寺北二里許} 曰養神庵{在寺左一里許} 曰七星庵{太古國師住居} 曰仙洞庵{在寺西五里 壁上刻 淸平仙洞 四字}一名鵠卵, 曰騰雲庵{在仙洞上 義相祖師 說法之所} 曰福禧庵{在寺南一里許 卽懶翁和尙 祝釐之地} 曰地藏庵{在寺之東南} 曰息庵{在仙洞上 庵後石壁 刻淸平息庵四字 其岩上 乃坐禪處}

, 喚惺大師住此寺, 興學徒數百人, 講大乘經, 一日諸生浮泳影池, 得一圓碣石, 面有刻字曰, 儒衷冠婦千里來, 喚惺大師熟視解義曰, 儒卽士字, 衷卽心字, 合而言之則志字也, 冠婦則安字, 千里則重字, 都爲志安重來也, 志安卽吾名, 然則吾之前身, 在此寺爲僧耶云云, 盖昔日懶翁禪師, 住此寺時, 以石刻讖, 投諸池中云, 喚惺卽懶翁之後身云{傳說}

, 監司鄭某, 妬忌法堂丹靑恍惚, 以松烟燻成黑漆, 感得現報, 於岐落川邊, 墜馬而死{傳說}

, 李朝 哲宗壬戌, 於大雄殿基址, 重建寮舍, 盖因前年回祿故也, 高宗庚辰再次回祿, 當年三刱寮舍, 光武四年翼廊十間建築云{傳說}

, 元泰定皇后文殊院碑陰記, 本碑想有相思蛇故實而沒碑所在, 可恨可歎{或云, 唐朝平陽公主, 重新寺宇碑, 褚遂良奉敎書 中有相思蛇說云 此說近是}

, 淸平寺在淸平山下, 文定大妃時, 僧普雨重修文殊院, 增其舊制, 敞而大之, 極其宏麗, 更號慶雲山萬壽聖淸平禪寺, 法殿名曰能仁殿, 殿之東, 有九光殿, 四聖殿, 九光殿則畵日月星辰而張之, 四聖殿則取儒佛仙道四書而藏之{邑誌}

, 法殿近北, 有極樂殿, 亦普雨之所建也, 其宏麗華彩, 無與爲比, 用黃金造佛座, 四面柱棟, 皆先以細苧, 裏之, 再以金漆之, 終以朱紅潤色之, 所觸物象, 照曜如明鏡焉, 當初物力之費, 何可量也{邑誌}

, 法堂之南, 建一樓, 名曰降仙閣, 造先王三位板, 奉安於此, 北向佛殿, 此亦普雨之所設計也云云{邑誌}

, 此寺普雨重刱, 仍居, 名花異草, 皆自宮苑移種, 盛夏則以竹造臥床, 四面金環, 繁以紅繩, 臥其中, 大鍮盆盛冰照之, 四人一時並擧, 掛於四隅, 使蚊蚤不侵, 凡所自奉, 稱是云云{邑誌}

, 懶翁鐵杖, 在淸平樓上庫瑞香院舊基, 在影池西洞裡, 金時習隱居處

, 石窟在法殿東南, 山麓, 廣四五間, 其中石佛二十三座, 本佛一座, 皆本寺刱建時之佛像也

, 影池在寺下一里, 池水大水大旱, 不增不減, 見性庵在遠峯而影落昭昭, 僧行如在池中{邑誌}

, 古骨在仙洞, 而盛於陶器中, 四隅刻乾坤坎离, 塡以朱紅, 藏於石間, 傳云眞樂遺骸, 鄭斗源方伯時刻銘瓦甎, 使僧文玉, 改葬之

, 五重石塔, 高十尺以上, 在九松瀑㳍左麓岩上 

, 牛頭寺, 在牛頭山, 諺傳有道僧, 忘其名, 登牛頭山, 望見江中岩上, 老僧獨坐, 卽下至江邊尋之, 無有, 道僧叉手跪坐, 三日三夜, 請禱願見, 終不見焉, 道僧作梵音呼曰, 牛頭文殊, 有一石佛, 挺身水上, 出坐岩上, 道僧乃拜祝發願, 化米鳩財, 作蘭若而安其佛云, 今文殊石佛, 露坐牛頭山頂, 牛頭寺刱設時, 枝內村三聖堂, 夜夜聞張樂宴樂之聲, 此寺火燼之初, 夜夜聞哭泣悲歎之聲云云{邑誌}

, 三檜寺在慶雲山西, 世傳此寺, 與昭陽亭, 皆三韓時並建而千年古屋, 少無欹隙處, 階砌則以雜石亂築而少無細罅納水之處, 觀者異之, 乙亥之歲, 爲火墾者, 所燬燼云

, 法華寺, 在龍華山西北, 今無

, 楊花寺, 在西上面楊花岸, 今則有古塔, 無屋

, 伴睡庵, 在楊花寺境內

, 造麵寺, 在西上面水精洞, 只有柱礎砌石

, 孤淨庵, 在三岳山東巖下(近世稱高精庵)

, 三岳寺, 在三岳山

, 鞍化寺, 在鞍化山

, 箭防寺, 在箭防山

, 冲圓寺, 在鳳儀山西, 無形基可尋, 癸亥反正初, 忠原縣監柳鼎立, 被汰來寓, 修基之際, 掘地得佛器, 銘曰新羅冲圓寺, 始知寺舊基也, 忠原以音同, 甚惡之, 未幾坐死, 抑或有符驗於其間耶, 可怪也已

, 息庵, 在慶雲山, 李資玄所居, 石上所存淸平息庵四字, 乃資玄之手刻云

, 古塚, 在淸平寺禁標外西麓, 諺傳政丞墓, 今石人斷折, 顚臥路左, 未詳其某墳也

, 見性庵, 在芙蓉峯下, 影落影池

, 仙洞, 在息庵西下麓, 大書淸平仙洞四字, 刻之石壁上, 絶勝奇觀處也

, 養神庵, 在芙蓉山東麓

, 隱仙庵, 在三檜洞西石峯下

, 深谷寺, 在禿山西枝退谷北峯下, 開門坐觀則孤山, 鳳山, 牛坪, 昭陽, 鷺洲等, 皆在眼前

, 獅子寺, 在華岳東枝, 鳥棧絶險, 牛馬不通故, 丙子亂, 人多避兵得全, 道僧性靜重修云

, 瀑㳍⑵, 在淸平寺下二町步, 絶壁懸崖, 掛如川長, 飛流直下, 不知幾十尺, 聲踈碎玉, 滴下成珠, 疑是烟霞, 掩翳仙界, 此非古人, 愛慶雲勝景, 樂而忘返之云歟

, 八松臺, 今未詳

, 盤石, 在本寺西溪上, 其圓如盤, 平布淸流故, 此之謂也

, 孤山臺, 在府西三里野中, 石峯突兀, 可坐十餘人, 長楊江在其下, 俗稱浮來山云

雍正六黃猿之年季春之月

佛像三尊造成

證明皥白 持殿性規 畵工太元 道眼(外二人) 化主覺禪 化主尼彩憲 都監釋察 別座道英

改金袈裟佛事大施主芳啣

京城府竹添町二丁目三十一番地

乾命 甲寅生 金慶培

兩主

淸信女 丁卯生 韓淨滿月

坤命 壬子生 朴氏

同 甲申生 崔圓滿日

乾命 丙午生 李熙福

 

坤命 丁未生 金 氏 大佛心

坤命 庚辰生 馬奭賢

 

京觀水洞二一番地

信女 乙丑生 安普明佛

 

乾命 己酉生 裵碩煥

化主 權梵雲

 

 

中鍾大施主芳啣

信女甲寅生朴基佑 信女乙卯生朴基石 信女韓晉鎬 化主兼住持金靑庵 監事金尙昕 法務朴淵植 院主宋七星

佛紀二九五九年壬申四月二十五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