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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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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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산 경운산이라고도 한다. 군(郡) 북쪽에 있다. 고려 때 이자현(李資玄)이 이 산에 들어와 문수원(文殊院)을 짓고 살았다. 무척이나 선설(禪說)을 좋아하여 골짜기 안의 그윽하고 외진 곳에 식암을 지었다. 둥글기가 마치 고니 알 같았고 겨우 두 무릎을 움츠릴 정도였는데, 그 가운데 앉아 수개월 동안이나 나오지 않았다. 과거를 함께 급제한 곽여(郭璵)가 부절(符節)을 지니고 관동(關東)으로 와 방문하고 시(詩)를 주기를,

청평(淸平)의 산수는 상수(湘水)의 물가와 같은데 / 淸平山水似湘濱

우연히 옛 사람을 만나 보는구나. / 邂逅相逢見故人

삼십 년 전 우리는 함께 급제하였는데 / 三十年前同擢第

이제 천리 밖에서 따로 깃들고 있노라. / 一千里外各棲身

뜬 구름처럼 골짜기에 들어오더니 세상 일이 없고 / 浮雲入洞曾無事

밝은 달이 냇물을 상대하니 티끌에 물들지 않노라. / 明月當溪不染塵

말없이 오래 거처하는 곳을 바라보니 / 目擊無言良久處

담담하게 옛 정신이 서로 비추어 오노라. / 淡然相照舊精神

 

자현(資玄)이 이에 화답하여

따뜻함이 시내와 산을 두루 돌면서 봄이 돌아왔는데 / 暖遍溪山暗換春

문득 신선 지팡이 짚고 은둔자를 방문하였네. / 忽紆仙仗訪幽人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세상 피한 것은 천성 보존함이요 / 夷齊遁世唯全性

직(稷)과 설(契)이 나라 일에 부지런함은 자신 위해서 아니었네 / 稷契勤邦不爲身

조서(詔書)를 받들고 온 이 때 옥패물(玉佩物)이 쨍그랑 거리나. / 奉詔此時鏘玉佩

어느 날 관을 걸어 두고 옷의 티끌을 떨쳐 버릴는지 / 掛冠何日拂衣塵

어느 때나 이곳에서 함께 은둔하면서 / 何當此地同棲隱

종래의 사그러지지 않는 정신을 길러나 볼까 / 養得從來不死神

라고 했다.

 

○ 이우(李堣) 시

길이 청평원(淸平院) 접어드니 / 路過淸平院

산은 높고 물은 푸르고 얕으며 / 山高水淸淺

가을색은 양 기슭에 모여 있고 / 秋氣集兩岸

바람소리 높은 산 울리네 / 颼飅響翠巘

천년토록 홀로 그윽함 지켜 / 千年尙幽獨

덕 높은 선비의 자취 생각게 하니 / 可想高士踐

희이자(希夷子)는 재상가의 손인데 / 希夷相門冑

표연히 비녀 관 벗어 던졌네. / 飄然謝簪冕

샘물 흐르는 돌엔 푸른 이끼만 남고, / 泉石傳靑氈

내딛는 발길엔 서리와 이슬만 더욱 반짝인다. / 況履霜露泫

이자현 거처하던 곳 백암사. / 玄杜白岩社

지금은 문수로 이름 바꿔 새로 지었네. / 文殊換新扁

한번 가 서른 봄을 보내며 / 一去三十年

천길 바위와 고상하게 지냈네. / 千仞同偃蹇

왕의 칙서 대궐서 날아드는데, / 尺一飛天門

바위 문 겹겹이 굳게 닫혔다. / 岩扃固重健

한 몸 물고기와 새에 비유하니, / 一身比魚鳥

맑은 말에 군주도 감동했다. / 淸詞動宸輦

높은 기상 탐욕에 젖은 사람 분기시키니, / 高風激貪懶

어찌 독선(獨善)이라고만 하리. / 豈但能獨善

 

우리나라 산수는 기산 영수보다 아름다운데, / 靑丘山水勝箕潁

오직 귀 씻는 사람 드물어 안타깝다. / 只恨洗人耳自鮮

청사(靑史)엔 은일전 뵈지 않고, / 靑編不見隱逸傳

돌 여울 잔잔히 흐르는 물속엔 이끼만 남아있다. / 石瀨潺潺空蘸蘇

 

오직 공의 이름만이 천고에 남아, / 惟公千古名

홀로 강과 더불어 흐른다. / 獨與江流轉

내 갈길 잃은 나그네 되어, / 我作托迷客

다시 푸른 산 마주하니 / 再對靑山靦

흰 구름 저녁 봉우리에 피어 올라, / 白雲生晩峀

동서로 흩어졌다 모인다. / 東西任舒卷

공 한가하니 구름 또한 한가터니, / 公閑雲亦閑

나 부끄럽게 하는구나. 구름 벗 아니라고. / 愧我非雲伴

 

○ 이황(李滉) 시

산협 사이 감도는 물 잔도는 구불구불 / 峽束江盤棧道傾

홀연히 구름 밖에 맑은 시내 흐르네 / 忽逢雲外出溪淸

지금까지 사람들이 여산사를 말하는데 / 至今人說廬山社

이곳에서 그대는 곡구 밭을 갈았다네 / 是處君爲谷口耕

허공 가득 하얀 달에 그대 기상 남았는데 / 白月滿空餘素抱

맑은 이내처럼 자취 없이 헛된 영화 버렸구나 / 晴嵐無跡遣浮榮

우리나라 은일전(隱逸傳)을 누가 지어 전하려나 / 東韓隱逸誰修傳

조그만 흠 꼬집어서 흰 구슬을 타박 말라 / 莫指微疵屛白珩

 

○ 이주(李冑) 시

진락이 일찍 놀던 땅 / 眞樂曾遊地

문수도 하늘에서 살진 않았네 / 文殊不住天

객이 와서 세속의 생각을 잊으니 / 客來休俗念

비로소 잠깐에 선을 깨닫네 / 始覺片時禪 

 

문수사(文殊寺) 청평산(淸平山) 아래에 있다. 바로 이자현(李資玄)이 거처하던 곳이다.

○ 김부철(金富轍)의 기(記)에 “춘천의 청평산은 옛날의 경운산(慶雲山)이요, 문수원(文殊院)은 옛날의 보현원(普賢院)이다. 처음에 선사(禪師) 승현(承玄)이 당(唐)나라로부터 신라에 와서 고려 광종(光宗) 24년에 처음으로 경운산에 절을 창건하고 백암선원(白巖禪院)이라고 하였으니, 그 때는 송 태종(太宗) 개보(開寶) 6년(973)이었다. 문종(文宗) 23년 무신년에 좌산기상시 지추밀원사(左散騎常侍知樞密院事) 이두(李頭) 공이 춘주도(春州道)의 감창사(監倉使)가 되었을 때, 경운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사랑하여 백암의 옛 터에 절을 짓고 보현원이라고 하였다. 때는 송나라의 희령(熙寧) 원년(1068)이었다. 그 뒤에 희이자(希夷子: 이자현)가 벼슬을 버리고 와서 여기에 은거하니 도적이 그치고 호랑이와 이리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 산의 이름을 고치어 청평이라고 하고, 원명(院名)을 문수(文殊)라고 하였고, 이어서 건물을 짓고 개축하였다. 희이자는 이공(李公)의 장남이며 이름은 자현이고 자는 진정(眞精)이다. 산에 머무른 것이 모두 37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하였다.

○ 원(元)나라의 태정황제(泰定皇帝)의 황후가 중 성징(性澄)과 윤견(允堅) 등이 바친 불경을 이 절에 수장하게 하였다. 이제현(李齊賢)이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지었으니, 비문에 말하기를 “태정(泰定) 4년 3월 경자일(庚子日)에 첨의정승(僉議政丞) 신(臣) 흡(恰) 등이 중알자(中謁者)로 하여금 임금에게 보고하기를, ‘천자(天子)의 근신 사도(司徒) 강탑리(剛塔里)와 중정원사(中政院使) 홀독첩목아(忽讀帖木兒)가 천자의 황후에게서 명령을 받고 사자로 와서 중 성징과 시인(寺人) 윤견 등이 바친 불서(佛書) 한 질을 가져다가 청평산 문수사에 귀속시키고, 돈 만 꾸러미[萬緡]를 시주하면서 그것으로 이식(利殖)을 취하여 황태자를 위하여 복을 빌고, 각각 그들의 탄신을 기하여 중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경(經)을 열람하게 하는 것을 연중행사로 하라고 하시고, 또 비를 세워 영구히 뒷세상에 보이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생각컨대 불법(佛法)이 중국에 들어와서 세대(世代)를 따라 흥왕하기도 하고 쇠미하기도 한 것이 거의 천 여 년이나 되었습니다. 원나라 조정에서는 그 도가 무위(無爲)로써 근본을 삼는 것이 성인(聖人)의 다스림에 부합되며 널리 제도(濟度)함을 마음으로 삼는 것이 어진 정치에 도움됨이 있다고 하여, 더욱 돈독히 존숭하여 믿었습니다. 이미 역참의 전거(傳車)로써 그 불서(佛書)를 수천 리 밖에 있는 깊은 산중까지 수송하고, 또 절을 유지할 재물을 세워서 그 무리들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였으니, 이 일은 곧 불도들의 행복입니다. 이름난 산과 복된 땅이 온 천하에 적지 않게 있건만 본 읍(邑)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고 여기에 황실의 복을 비는 곳을 설치하였으니 이것은 오직 불도들만의 다행이 아니고, 또한 본 읍의 다행입니다. 장차 크게 쓰고 특별하게 기록하여 영원무궁하게 자랑하여 빛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중궁(中宮)의 전지(傳旨)가 있으니 감히 공손히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청컨대 집필자에게 부탁하여 기(記)를 쓰게 하소서.’ 하였다. 이에 신(臣) 아무개에게 명(銘)을 지으라고 명령하시니 신 아무개는 명을 짓기를, ‘크도다. 이미 원나라의 어진 정치 대대로 내려왔네. 따뜻한 봄날같고, 때에 알맞은 단비같아서, 천하의 만물은 생성한다. 이에 금선(金仙)이 무위(無爲)를 교화로 한 것을 흠모하여 그 흙 부스러기와 지푸라기를 써서 중생을 이롭게 하고 사나움을 금지할 제 이것을 존숭하고 공경하네. 그 무리들을 후하게 복호(復戶)하여 부역도 시키지 않고 세금도 부과하지 않으면서 그 불서(佛書)만을 오로지 공부하게 한다. 그 불서가 천 상자도 넘어서 호대(浩大)하기가 안개 낀 바다같도다. 정미(精微)하기는 호리(毫釐)도 쪼갤 수 있고, 광대(廣大)하기는 천지를 포함한다. 율(律)은 계(戒)를 좇아 서고, 논(論)은 정(定)으로부터 일어난다. 불경을 연수(演修)함은 지혜의 밝아짐이로다. 크도다, 저 규헌(犪軒)이여. 높도다, 양거(羊車)‧녹거(鹿車)에 훈훈한 그 향기, 담복화(薝蔔花 : 치자꽃) 가득한 숲같구나. 처음 천축땅에서 모은 이는 섭(葉)과 난(難)이었고,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전파한 이는 등(騰)과 난(蘭)이었다. 양(梁)나라에서는 그 쭉정이를 취하였고, 우리는 곡식을 맛보았네. 당(唐)나라에서는 그것을 돌이라고 짐작하였으나, 우리는 그것을 옥(玉)으로 쪼개었네. 저 중 성징과 시인(寺人) 윤견은 입은 옷은 다르지만 마음은 서로 같아서 이미 불경의 서사(書寫)를 성취하고, 그 성공을 아뢰니, 천자의 황후가 가상히 여겨 그것을 간직할 땅을 계책하여 말하기를, 삼한(三韓)은 선(善)한 것을 즐기고 의(義)를 돈독하게 지킨다. 고려의 지금 임금은 우리가 낳은 우리의 생질이다. 복을 빌어 황실에 보답함이 분명하다. 그 나라의 동쪽 산의 절에서 정성들임에 길이 먼 것을 꺼리지 말고 역말을 설치하여 가서 베풀라 하시고, 내탕고(內帑庫)의 돈꿰미를 내어 그 무리들을 먹고 살게 하고, 이어서 지키도록 왕과 신하들에게 부탁하라 하였네. 임금이 절하고 머리 조아리며 천자의 만세수(萬歲壽)를 송축(頌祝)했네. 천자와 황후가 함께 하고, 근본과 자손이 백대(百代)를 누리면서 제잠(鯷岑 )에 기초가 뭉그러지고 접해(鰈海)에 물이 말라 티끌이 날지언정 이 공덕의 쌓임은 이지러지지 않고 허물어지지 않으리라.’ 하였다.

청평사(淸平寺) 청평산 아래에 있다. 문정대비(文定大妣) 때에 중 보우(普雨)가 문수원(文殊院)을 중수하여 그 옛 명성을 널리 알려 크게 하고자 그 크고 화려함을 다하여, ‘경운산 만수성청평선사(慶雲山萬壽聖淸平禪寺)’라 다시 이름하였다. 그 법전(法殿)의 이름은 ‘능인(能仁)’이라 하였고, 동쪽에 있는 ‘구광전(九光殿)’에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그려서 그 건물을 크게 드러냈다. 또 ‘사성전(四聖殿)’이 있는데 유(儒)‧불(佛)‧선(仙)‧도(道)의 사성(四聖)을 취하여 그림으로 그려 보관하고 있다.

○ 법전의 북쪽 가까운 곳에 극락전(極樂殿)이 있는데 또한 보우가 건축한 것이다. 그 광대(廣大)하고 채색의 화려함이 더불어 비교할 것이 없다. 금(金)으로 불좌(佛座)를 만들고 4면의 기둥과 대들보는 모두 먼저 가는 모시로 싸고 다시 옻으로 옻칠을 하고 마지막으로 주홍색으로 윤을 내어 접촉하는 물상(物像)마다 환하게 반사되는 것이 마치 거울과 같으니, 당초에 물력(物力)이 얼마나 들었을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 법당의 남쪽에 한 누각을 세웠는데 이름은 ‘강선각(降仙閣)’이다. 선왕(先王)의 세 위판을 봉안하고 있다. 보우가 거주하던 곳의 이름난 꽃과 기이한 풀들은 모두 궁원(宮苑)에서 옮겨 심은 것이다. 한 여름에는 대나무로 침상을 만들었는데 침상의 4면에는 금을 두르고 붉은 끈을 매달아 그 가운데에 누워 놋쇠로 만든 큰 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비추게 했다. 네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 네 귀퉁이에 걸게 하여 모기나 벼룩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니 스스로를 봉양함이 이와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죄를 입어 제주(濟州)의 유배소에서 장(杖)을 맞고 죽었다.

 

○ 나옹(懶翁)의 철장(鐵杖)이 누각 위의 창고에 있다.

○ 서향원(瑞香院)의 옛 터는 영지(影池) 서쪽 골짜기 안에 있는데 김시습(金時習)이 은거하던 곳이다.

 

○ 이주(李冑)의 시

내 매월당을 아노니 / 吾知梅月老

일찍이 이 산중에서 놀았네 / 曾遊此山中

혼이 있어 없어지지 않았다면 / 有魂如不滅

응당 노릉(魯陵)(1)과 통하리라 / 應與魯陵通

 

 

○ 영지(影池)는 절 아래에 있는데 연못의 물은 큰 홍수나 가뭄에도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멀리 있는 봉우리를 걸어가는 중의 그림자가 맑게 연못에 비쳐 마치 연못 속에 있는 듯 하다.

○ 고골(古骨)은 선동(仙洞)에 있다. 네 귀퉁이에 건곤감리(乾坤坎离)를 새겨 주홍색을 박은 도기에 담아서 돌 틈에 안장했다. 진락(眞樂)의 유해라고 전해진다. 정두원(鄭斗源)이 관찰사일 때 와전(瓦甎)에 이름을 새겨 승려 문옥(文玉)으로 하여금 개장(改葬)하도록 하였다.

 

 

○ 유영길(柳永吉)의 시

서쪽 개울에 봄 지나며 그윽한 정 기약하니 / 西溪春盡愜幽期

소나무와 바위의 맑고 기이함 시 속으로 들어오네 / 松石淸奇並入詩

배꽃 같은 산에 뜨는 달 기다리면서 / 直待梨花山月白

창 아래 자지 않고 쌍지(雙池)를 굽어보네 / 高窓不寐俯雙池

 

 

○ 이정형(李廷馨)의 시

늙은 몸으로 네 아들을 데리고 / 老人携四子

흥을 따라 우연히 와서 노네 / 乘興偶來遊

가을이 늦어가니 단풍잎은 떨어지고 / 秋晩楓林脫

구름은 희미한데 돌길은 길구나 / 雲迷石路修

쌍폭 아래서 갓끈을 빨고 / 濯纓雙瀑下

영지 머리에서 산책을 하노라 / 散策影池頭

문득 청한자 생각나는데 / 却憶淸寒子

높은 발자취 멀어 짝할 수 없네 / 高蹤邈寡儔

 

어제 청평사에 와서 / 昨到淸平寺

오늘 선동암(仙洞庵)에서 노노라 / 今遊仙洞庵

진정(眞精)(2)은 간지 이미 오래고 / 眞精去已久

텅 빈 감실엔 이슬만 가득하네 / 宿霧鎻空龕

 

 

○ 유몽인(柳夢寅)의 시

아름다운 배필 구하려면 / 欲求宓妃聘

어찌 중매 버리리오 / 那舍謇修媒

일찍이 서향원(瑞香院) 보았으니 / 曾見瑞香院

진헐대(眞歇臺)에 부끄러움 없네 / 不慙眞歇臺

가을바람에 푸른 잎 시드니 / 金風凋翠葉

붉은 잎 흐르는 물에 옥 술잔 띄운다 / 紅澗泛瓊盃

말 몰아 바위 길 가기 피곤하다고 / 鹿馭疲岩逕

신선 놀이 재촉하지 마시게 / 仙遊且莫催 

 

○ 신흠(申欽)의 시

게으른 손 절을 찾아 오르니 / 倦客尋初地

드높은 비탈 위에 절간이 있네 / 懸(3)崖闢梵盧

구름 속에 진락공(眞樂公)의 집이 트이고 / 雲開眞樂觀

신령한 용 열경(悅卿)의 글씨 보호해 / 龍護悅卿書

폭포수는 짚신을 뿌려 적시고 / 飛瀑沾芒屐

돌다리 대가마로 건너간다네 / 危矼住(4)筍輿

동산 위에 개인 달 둥실 떠올라 / 東林看(5)月上

하늘 그림자 텅 빈 못에 떨어져 / 天影落潭虛

 

 

○ 유숙(柳潚)의 팔영시 중

절은 천상계에 있는 듯하고 / 古寺諸天界

낡은 비석엔 오묘한 글씨들 / 荒碑幼婦辭

향로봉에 구름 걷히자 / 香爐雲捲後

기수(琪樹)(6)에 달은 밝아 오고 / 琪樹月明詩

바람을 탄 종소리는 멀어 가자 / 風挾鍾聲遠

맑은 시내 물소리 나직이 들려오네 / 溪淸碓響遲

향을 태우며 방장(方丈)(7)에 앉아 / 燒香坐方丈

고요하게 쌍지(雙池)를 대하노라 / 寂寂對雙池

 

 

○ 조우인(曺友仁)의 시

움직이다 그치는 것을 고요하다 하는데 / 止勳之謂靜

공(空)과 색(色)은 본래 자취가 없네 / 空色本無跡

이 형상을 끝까지 관찰하니 / 觀破此形象

스스로 사람과 하늘의 안목이 있구나 / 自有人天目 (8) (식암관정(息庵觀靜))

 

 

한 송이 푸른 연꽃 / 一朶靑蓮花

물에서 낳어도 물에 집착 칠 않네 / 生水不着水

묻노니 선정 중의 사람은 / 借問定中人

참으로 이것을 볼 수 있는지 / 眞能見得此(9)(견성입정(見性入定))

 

얼도 보았으면.’라고 하였다. 내가 크게 외웠다. 지금 다행히 성은(聖恩)을 입어 본도(本道)의 관찰사로 와서 옛 터를 찾아보니 어제같이 완연하다.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하니 감회가 진실로 깊다. 아버님께 문후 여쭙는 일 오래전부터 하지 못하게 되어 이 때문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삼가 전운(前韻)을 따라 그 뜻을 기탁하여 벽 위에 부친다. ‘그윽한 산골 물 차디차고, 절벽에 드문드문 소나무 걸려 있네. 성상(星霜)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가, 옛 자태 그대로 바뀌지 않았네.’”

 

 

○ 정호선(丁好善)의 시

한가히 푸른 지팡이를 짚고 가을 하늘 아래 서니 / 閒携綠杖倚秋空

몸은 부용봉(芙蓉峰) 제일 높은 봉우리에 있네 / 身在芙蓉第一峰

절 그림자 땅에 떨어져 별천지 감추고 / 梵影落地藏別界

아름다운 무지개 골짜기에 떠 신의 솜씨 드러냈다 / 玉虹開峽見神工

생각해보니 진락공 있던 곳은 지금 어디인가 / 緬懷眞隱今何處

원(仙源) 거슬러 올라가고픈 생각 끝도 없다 / 欲沂仙源意未窮

사계절마다 시객과 짝하는 것에 힘입어 / 賴有四時詩客伴

동문(洞門)에 머물며 멀리 떠돌던 자취 얻어본다 / 洞門留得遠遊蹤

 

 

○ 안숭검(安崇儉)의 시

이내 신세가 갈매기 같아 세속을 멀리하고 / 身世沙鷗與俗踈

수레타고 이날 마음먹은 곳 찾아왔네 / 驂鸞此日訪如如

부용봉 아래 벽운은 저무는데 / 芙蓉峰下碧雲暮

피리소리 울리는데 산비는 여전하구나 / 長笛一聲山雨餘 

 

우두사(牛頭寺) 우두산에 있다. 민간에 전하기를, 어떤 도승(道僧)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잊어버렸다. 우두산에 올라서 강 가운데의 바위 위에 늙은 중이 홀로 앉아 있는 것을 바라보고 곧 강변으로 내려가 찾았으나 없었다. 도승이 손을 깍지 끼고 무릎을 꿇고 앉아 사흘 밤낮을 기도하며 뵙기를 원하였으나 끝내 볼 수가 없었다. 도승이 범어(梵語)로 “우두(牛頭)문수”라고 부르짖자 한 석불(石佛)이 물 위로 몸을 내밀고 나와 바위 위에 앉았다. 도승이 이에 절하며 발원(發願)하고 쌀을 구걸하고 재목을 모아 절을 지어서 그 불상을 안치하였다 한다. 지금은 문수석불이 우두산 꼭대기에 비도 가리지 못한 채 앉아 있다. ○ 절을 창건할 때 지내촌(枝內村)의 삼성당(三聖堂)에서 밤마다 잔치를 열어 즐기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 절이 불에 타 없어진 첫날 밤, 곡을 하며 울고 슬픔에 젖어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삼회사(三檜寺) 경운산 서쪽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절과 소양정(昭陽亭)은 모두 삼한(三韓) 시대에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천 년된 고옥임에도 조금도 기울거나 틈이 벌어진 곳이 없으며, 섬돌은 잡석(雜石)으로 어지럽게 쌓았으나 물이 스며들만한 작은 틈조차 없으니 보는 사람이 기이하게 여겼다. 을해년(乙亥年)에 화전민에 의해 불에 타 버렸다.

충원사(冲圓寺) 봉산(鳳山)의 서쪽에 있다. 인조 계해년(癸亥年) 초에 충원현감(忠原縣監) 유정립(柳鼎立)이 벼슬에서 쫓겨나 이 곳에 와서 우거(寓居)하기 위해 터를 닦을 때, 땅을 파다 불기(佛器)를 얻었는데 명(銘)에 이르기를, ‘신라 충원사(冲圓寺)’라고 되어 있어 비로소 그 옛 터임을 알게 되었다. 충원(冲圓)은 ‘충원(忠原)’과 음이 같아서 그가 몹시 싫어하였는데 얼마 후 죄에 연좌되어 죽었다. 혹시 둘 사이에 어떤 징험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괴상하게 여길 만하다. ○ 지금은 폐사되었다.

식암(息菴) 경운산에 있다. 이자현이 거주하던 곳이다. 바위 위의 ‘식암(息菴)’이라는 두 글자는 이자현이 손수 새겼다고 한다.

 

심곡사(深谷寺) 독산(禿山)의 서쪽 가지인 퇴곡(退谷) 북봉(北峯) 아래에 있다. 문을 열고 앉아서 바라보면 고산(孤山)‧봉산(鳳山)‧우평(牛坪)‧소양(昭陽)‧노주(鷺洲) 등이 모두 눈앞에 있다.

사자사(獅子寺) 화악(華岳)의 동쪽 가지에 있다. 길이 없어 잔도(棧道)를 설치한 절험지로 우마(牛馬)가 다닐 수 없다. 그래서 병자년에 많은 사람들이 병란을 피하여 온존할 수 있었다. 도승 성징(性澄)이 중수하였다.

상원사(上院寺) 삼악산(三岳山)에 있다. 보광사(普光寺) 신남면 정족리 안화산(鞍化山)에 있다. 헌종조(憲宗朝)에 풍계(豊溪)가 창건하였다. 

 

 

1) 노릉(魯陵): 노산군(魯山君) 즉 단종(端宗)의 능(陵)을 말한다.

2) 진정(眞精): 이자현을 가리킨다.

3) 문집에는 ‘層’으로 되어 있다.

4) 문집에는 ‘度’로 되어 있다.

5) 문집에는 ‘晴’로 되어 있다.

6) 기수(琪樹): 옥을 드리우고 있다는 선계의 나무.

7) 방장(方丈): 사원(寺院)의 장로(長老)나 주지승(住持僧)이 거처하는 곳을 말한다. 후에 사원에서 주지를 맡은 사람이나 사원에서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를 가리킨다.

8)『이재집(頤齋集)』에 실린 시를 따른다. 청평지에 실린 것은 다음과 같다. 止動之謂靜。空色泯無迹。覷破此形相。自有天人目。

9) 이재집(頤齋集)』에 실린 시를 따른다. 청평지에 실린 것은 다음과 같다.一朶靑蓮華。生水不着水。借問定中人。眞能見得此。 

淸平山。一名慶雲山。在郡北四十里。○高麗時李資玄。入于此山。葺文殊院以居。尤耆禪說。擇洞中幽絶處。作息菴。團圓如鵠卵。只得盤兩膝。黙坐其中。數月猶不出。其同年郭璵。持節關東。訪之贈詩曰。淸平山水似湘濱。邂逅相逢見故人。三十年前同擢第。一千里外各棲身。浮雲入洞曾無事。明月當溪不染塵。目擊無言良久處。淡然相照舊精神。資玄和曰。暖遍溪山暗換春。忽紆仙仗訪幽人。夷齊遯世惟全性。稷契勤邦不爲身。奉詔此時鏘玉佩。掛冠他日拂衣塵。何當此地同棲隱。養得從來不死神。○李堣詩 路過淸平院。山高水淸淺。秋氣集兩岸。颼飀響翠巘。千年尙幽獨。可想高士踐。希夷相門胄。飄然謝簪冕。泉石傳靑氈。況履霜露泫。玄師白嚴社。文殊換新扁。一去三十年。千仞同偃蹇。尺一飛天門。巖扃固重鍵。一身比魚鳥。淸詞動宸輦。高風激貪懶。豈但能獨善。靑丘山水勝箕穎。只恨洗耳人自鮮。靑編不見隱逸傳。石瀨潺潺空蘸蘚。惟公千古名。獨與江流轉。我作忙途客。再對靑山靦。白雲生晩岫。東西任舒卷。公閑雲亦閑。愧我非雲伴。

○李滉詩 峽束江盤棧道傾忽逢雲外出溪淸至今人說廬山社是處君爲谷口耕白月當空餘素抱晴嵐無跡遣浮榮東韓隱逸誰修傳莫指微疪屛白珩

○李冑詩 眞樂曾遊地文殊不住天客來休俗念始覺片時禪 

 

文殊寺 在淸平山下卽高麗李資玄所居 ○高麗金富轍記 春川淸平山者 古之慶雲山而文殊院者 古之普賢院也 初禪師承玄 自唐來新羅 至廣廟二十四年 始來于慶雲山 創蘭若曰白禪院 時大宋開寶六年也 至文廟二十三年 歲在戊申 故左散騎常侍知樞密院事李公爲春州道監倉使 愛慶雲勝景 乃卽白之舊址 置寺曰普賢院 時熙寧元年也 其後希夷子 棄官隱居于玆 而盜賊寢息虎狼絶迹 乃易山名曰淸平 院名曰文殊 而仍加營葺 希夷子卽李公之長男 名資玄字眞精 住山凡三十七年云 ○ 元泰定帝皇后, 以僧性澄, 寺人允堅等, 進佛經藏于此寺, 李齊賢奉王旨撰碑曰

泰定四年三月庚子, 僉議政丞臣恰等, 令中謁者, 復于王曰, 天子之近臣, 司徒剛塔里, 中政院使忽篤帖木兒, 受命天子之后, 伻來以僧性澄, 寺人允堅等, 所進佛書一藏, 歸諸淸平山文殊寺, 施緡錢萬, 令取其息, 爲皇太子皇子祈福, 各取其誕辰, 飯僧閱經, 歲以爲凡, 且曰, 樹碑, 以示永久, 臣等窃惟佛法入中國, 隨世興替, 且千餘歲, 皇朝謂其道無爲爲宗, 有契乎聖理, 廣度爲心, 有補于仁政, 尊信之尤篤, 今旣以傳車, 輸其書數千里窮山之中, 又立食本, 以贍其徒, 斯乃佛者之幸也, 名山福地, 在天下不爲少, 不鄙弊邑, 爰置祝釐之所, 斯則非惟佛者之幸, 亦弊邑之幸也, 將大書特書, 誇耀無極, 況中宮有旨, 敢不祗承, 請付執筆者, 以記, 於是, 命臣某銘, 其銘曰, 於皇有元, 旣世以仁, 陽春時雨, 亭毒九垠, 乃眷金仙, 無爲爲敎。用其土苴, 利生禁暴。是崇是敬, 厚復其徒。不徭不賦, 顓習其書。其書千函, 浩若烟海, 妙析毫釐, 廣包覆載, 律繇戒立, 論自定興, 維經之演, 維慧之明, 路彼犪軒, 卓乎羊鹿, 載薰其香, 一林薝蔔。俶裒于竺, 曰葉與難。俶播于震, 曰騰與蘭, 梁取其秕, 我嚌維穀, 訾石者唐, 我割維玉。伊澄伊堅, 服異心同。旣成法寶, 以奏爾功。天后爾嘉, 載謀之地。(東文選作之), 曰惟三韓, 樂善敦義。維時維王, 我出我甥。祝釐報上, 允也其誠。于國之東, 文殊之寺。(東文撰作山), 毋憚阻脩, 置郵往施。發緡內帑, 俾轉食輸, 可繼以守, 諉王曁臣。王拜稽首, 天子萬歲, 天后是偕, 本支百世。鯷岑石爛, 鰈海塵飛。維功德聚, 不騫不墮。

淸平寺 在淸平山下 文定大妣時普雨重修文殊院增其舊號敞而大之極其宏麗更號慶雲山萬壽聖淸平禪寺 名其法殿曰能仁東有九光殿 盡日月星辰而張之 又有四聖殿取儒佛仙道四書而藏之 ○法殿近北有極樂殿亦普雨之所建也 其宏麗華彩無與爲比用金造佛座屋四面柱棟皆先以細苧裹之再以全漆漆之終以朱紅潤色之所觸物象照耀如明鏡焉當初物力之費何可量也 ○法堂之南建一樓名曰降仙閣造先王三位板奉安普雨所居名花異草皆自宮苑移種盛夏則以竹造臥床四面金環繫以紅繩臥其中大鍮盆盛氷照之四人一時幷擧掛於四隅使蚊蚤不侵凡所自奉如是 未幾被罪杖死濟州配所 ○懶翁鐵杖在樓上庫 ○瑞香院舊基 在影池西洞裏金時習隱居處 ○李冑詩吾知梅月老曾遊此山中有魂如不滅應與魯陵通 ○影池在寺下池水大水大旱不增不減 見僧行在遠峯而影落昭昭如在池中 見性菴在遠峰而影落照僧行如在池中 ○古骨在仙洞而盛於陶器中四隅刻乾坤坎离卦塡以朱紅藏於石間 傳云眞樂遺骸鄭斗源方伯時刻銘瓦甎使僧文玉改葬之

○ 柳永吉詩 西溪春盡愜幽期松石淸奇幷入詩直待梨花山月白高牕 不寐俯雙池 ○ 李廷馨詩老人携四子乘興偶來遊秋晩楓林脫雲迷石路脩濯纓雙瀑下散策影池頭却憶淸寒子高蹤邈寡儔 昨到淸平寺今遊仙洞菴眞精去已久宿露鎻空龕 ○ 柳夢寅詩。欲求宓妃聘。那舍謇脩媒。曾見瑞香院。不慙眞歇臺。金風凋翠葉。紅澗泛瓊盃。鹿馭疲岩徑。仙遊且莫催。○ 申欽詩 倦客尋初地。懸厓闢梵廬。雲開眞樂觀。龍護悅卿書。飛瀑霑芒屨。危矼住筍輿。東林看月上。天影落潭虛。○ 柳潚八詩 古寺諸天界荒碑幼婦辭香爐雲捲後琪樹月明時風挾鍾聲遠溪淸灘響遲 燒香坐方丈 寂寂對雙池 ○ 曺友仁詩 止動之謂靜。空色泯無跡。觀破此形象。自有天人目。○一朶靑蓮花。生水不着水。借問定中人。眞能見得此。○ 鄭廣成詩序云 家君出按關東 駐笻淸平 余年十六 自京來覲 一日陪遊川上 看察訪長身善舞者 家君戱吟一絶 風姿偸野鶴 頎舞學長松 政對廬山瀑 添觀李白容 余莊誦 今幸蒙荷聖恩 忝察本道 來尋舊址 宛然如昨日 追思往日 感懷良深 定省久曠 寔用瞻歎 謹吹前顔 留寄壁上云 幽澗冷冷水 懸崖落落松 星霜知幾換 不改舊時容 ○ 丁好善詩 閑携綠杖倚秋空 身在芙蓉第一峰 梵影落池藏別界 玉虹開峽見神工 緬懷眞隱今何處 欲沂仙源意未窮 賴有四明詩客伴 洞門留得遠遊蹤 ○ 安崇儉詩。身世沙鷗與俗踈。驂鸞此日訪如如。芙蓉峰下碧雲暮。長笛一聲山雨餘。 

 

牛頭寺在牛頭山 諺傳有道僧望其名 登牛頭山 望見江中巖上 老僧獨坐 卽下至江邊尋之 無有道僧叉手跪坐三日三夜 請禱願見 終不見焉 道僧作梵音呼曰 牛頭文殊有一石佛挺身水上出坐岩上道僧乃拜祝發願化米鳩材作蘭若而安其佛云 今文殊石佛露坐牛頭山頂 ○刱設時枝內村三聖堂夜夜聞張樂宴樂之聲 此寺火燼之初夜夜聞哭泣悲歎之聲 三檜寺在慶雲山西 世傳此寺與昭陽亭皆三韓時幷建而千年古屋 小無欹隙處堦砌 則以雜石亂築而少無細罅納水之處 觀者異之 乙亥之歲爲火墾者所煨燼 冲圓寺在鳳山西仁祖癸亥反正初忠原縣監柳鼎立被汰來寓修基之際 掘地得佛器銘曰新羅冲圓寺始知舊基也 忠原以音同甚惡之 未幾坐死抑或有符驗於其間耶可怪也 ○今廢 息庵 在慶雲山李資玄所居石上息庵二字乃資玄手刻云 深谷寺在禿山西枝退谷北峯下開門坐觀則孤山鳳山牛坪昭陽鷺州等 皆在眼前 獅子寺在華岳東枝鳥棧絶險牛馬不通故丙子人多避兵得全道僧性靜重修上院寺在三岳山普光寺在新南面鼎足里鞍化山憲宗朝豊溪所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