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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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사(牛頭寺)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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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사 문수석불(제공:심재연. 목록 소장:국립중앙박물관)
상세정보

우두사(牛頭寺)

우두동의 우두산에 있는 절터로 춘천을 방문한 많은 문인들의 시()가 전한다. 『성종실록』에 "강원도의 우두사를 중창하는데, 그 절의 중이 강으로 내려 보내는 모든 목재를 죄다 빼앗는다고 한다. 하였습니다."하였고, 김시습은 "우두사에서 자며 : 깃들었던 까마귀 저물녘 종소리에 놀라 흩어지는데/절은 연하 몇 겹 속에 서 있던 말인가?/ ."라는 시를 남겼다. 이로 보면 성종 때에 우두사가 크게 중창되는 것으로 보인다. 보우가 지은 『허응당집』에도 우두사를 읊은 시 2수가 전하고 1수에는 약사전이라는 시제(詩題)가 있어서 약사전이라는 전각이 있었음도 알 수 있다. 그런데 1648년에 엄황과 1696년의 김창협의 문집에서 우두사는 터만 남았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폐사되고 중창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읍지류에 석불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사진으로 공개된 것은 2015년이 처음이다. 1917년 일제강점기의 자료에 의하면 높이 26(78), 대좌 높이 24(7.2)라고 한다. 목록에서는 좌상이라고 하였는데 불상의 전면에 호분이 발라져 있어서 명확하지 않으나 왼쪽 다리의 자세가 어색하고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리고 있으며 왼손의 위치는 확인이 어렵다. 두발(頭髮)도 일반적인 나발(螺髮)이나 소발(素髮)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온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보살상으로 생각되는데 읍지류 등에 우두사에 문수석불이 비도 가리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 석불상은 문수보살상으로 추정된다. 사진만 전하고 불상의 소재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절터에는 원형 주좌를 새긴 초석과 주좌가 새겨지지 않은 여러 가지 초석이 있고 연화문이 새겨진 암기와편, 어골문과 격자문 등 다양한 기와편이 흩어져 있다. 이로 볼 때 여러 시기에 건물이 중수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