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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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의 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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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현재는 전하지 않지만 요선당, 온수정, 우두정, 영귀정, 칠송정, 단양대, 연정, 선몽당 등이 문헌에 보인다.

 

(1) 부벽정(浮碧亭)은 부사 엄황(1645.7~1648.9 재임)이 지은 『춘천읍지』 의하면 부의 서쪽에 있는데 경강상고의 배가 도착하여 정박하는 곳이라 하였다. 당시에 이미 없다고 하였다. 순조대 『춘천읍지』 서쪽 7리에 있다고 하였다.

(2) 요선당(邀仙堂)은 『춘천읍지』창건과 중건의 과정이 자세히 나오는데 1573(선조 6)에 부사 성의국이 창건하고 1582년 부사 심충경이 왕성하여요선이라 현판을 게시하였다. 유경종이 춘천부사(柳慶宗, 1611.2;광해군 31612.6;광해군 4)로 재임할 때인 1611년에 공무에서 물러나 소요하는 곳으로 삼았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정자의 기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1625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민형남이 중건하였다.

(3) 영귀정(詠歸亭)은 엄황의 『춘천읍지』에 보면 문암서원의 서쪽 100보쯤에 있는데 일명 사군정(使君亭) 또는 서대(西臺)라고 하였다. 이주(李胄, 1468;세조 14~1504;연산군 10)영귀정시서(詠歸亭詩序)1610년 유사군(柳使君)과 함께 노닐었는데 정자의 이름은 그의 이름을 차용했다고 했다. 서대는 문암서원의 서쪽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4) 재송정(栽松亭)은 엄황의 『춘천읍지』에 북쪽 15리 칠산촌(漆山村) 옆에 있는데 1516(중종 11)에는 소나무 수만그루가 사방 10리에 울창하고 여염집이 성했으나 지금은 옛날 같지 않다고 하였다.

(5) 비선정(飛仙亭)1780(정조 4)에 이동형이 소양정을 옛 터의 서쪽 수백보 지점에 옮겨짓고 소양정의 동쪽 층암(層巖) 위에는 비선정을 창건하였으며 그 뒤의 큰 바위에 선암(仙巖)’이란 글자를 새겼다고 하였다.

(6) 육명루(六鳴樓)1788(정조 12)에 부사 이윤춘이 창건하고 육일정(六一亭)은 그 옆에 있었으나 순조 대에 편찬되는 『춘천읍지』에는 모두 없어졌다고 했다.

(7) 연정(蓮亭)은 엄황의 『춘천읍지』에 의하면 향사당(鄕射堂) 앞에 있었다. 연꽃이 가득해 이름하였는데 이 시기에 황폐해졌다고 하였다. 춘천부사 심액(沈詻, 1633.4;인조 11~1634.10 재임)1634년에 여러 채로 수축하였는데 부사 이직(李溭, 1642.12;인조 20~1645.7 재임)1645년에 관아의 옆으로 옮기고 연당(蓮堂)이라 개칭하였다.

(8) 우두정(牛頭亭)은 북쪽 13리에 있는데 1637(인조 15)에 심광수(沈光洙)가 머물면서 정사(精舍)를 짓고 졸락(拙樂)’이라 현판하였다고 한다.

(9) 초연대(招延臺)는 『여지도서』에 의하면 가평군 경계에 있다고 하였고 『대동여지도』에도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