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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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진(李垕鎭) 효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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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각 안내문(뒷면)
상세정보

신동면 혈동1리에 있다. 정면과 측면이 모두 1칸이고 맞배지붕이며 기와지붕이다. 1754(영조 30)에 정문을 내려졌다.

 

   현판 : 旌閭閣/乙酉立夏/睦榮珍 謹書

정려문 : 孝子成/均生員/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偉/都摠府/副摠管/李垕鎭/之門/英廟甲戌正月日/命旌/上之十四年庚戌/贈職

   비문 : 驪州李公垕鎭孝子旌閭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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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안내표석이 있는데 앞면은 「이후진효자정문」이라 새기고 뒷면은 「乙酉仲春/書 崔承斗/建立 李弼英」이라 하여 을유년 봄에 최승두가 쓰고 이필영이 세웠음을 밝히고 있다. 정려문의 동쪽에는 이후진의 안내문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효자 이후진 정려문

이 정문은 효자 이후진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조선 영조 갑자년에 명정(命旌)하여 건립하였다. 선생의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화경(和卿)이다. 현종 11(1670)에 호조참의 효자 이지삼(李志參) 선생의 독자로 수원에서 출생하여 이 곳 춘천 혈동리로 이주하여 생활하면서 청렴하고 효성이 남달리 뛰어나 200여리가 되는 수원을 걸어서 왕래하며 노환으로 누워계신 부모님께 진지와 약을 봉양하고 효도하였으며 그 후 부친상을 당하자 슬퍼하며 3년간 용인 죽리 산속에 움막을 짓고 시묘하였다. 그 효행이 예조와 조정에 전해져 영조께서 정문을 명정하고 증직(贈職)하였다. 선생은 4(, , )을 두었는데 그들도 효행이 있어 장자는 호조좌랑, 차자는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3자는 통덕랑을 증직받았다. 이로써 연 3대가 효행으로 벼슬에 올랐다.

선생은 성균관을 거쳐 숙종 34(1708)에 사마(司馬)가 되었고 가선대부,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사총관을 증직받았다.

선생은 영조 9(1733)에 세상을 떠났으며 묘는 이곳에서 130떨어진 뒷산 능선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