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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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국(朴柱國) 효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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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현재의 강원경찰청 부지에 있었으나 경찰청이 건축되면서 현재의 위치인 거두1리로 이전하였다. 박주국의 본관은 영암(靈巖)이고 판서 보용(寶龍)의 후손이다3). 인근에 후손이 살고 있다. 정려는 1854(철종 5)에 내려졌다.

 

   효자비문

      : 앞면- 靈巖朴公柱國孝行旌閭碑

      : 뒷면公之府君患痢數朔醫云惟鱉爲良藥所居江遠時又霖無路可得一日得/一鱉于田渠中大如釜蓋卽取用之痢患卽差府君又思雉灸公往前林中有/一雉爲鷙鳥所擊公取以供之又以府君命往覆溺器于麥田其夜天大雷電/以雨及歸衣不沾濕傍人問之答曰所去之路電火前導雨脚中開不知夜之/昏黑是夜有客來宿者聞之驚歎以爲孝憾所致云公之孝行哲宗朝五年甲/寅十一月十六日命旌閭/後孫鍾赫/鍾根/西紀二000四年四月日立

 

   효자정려문 

       : 孝子學生朴柱國之門/上之五年/甲寅十一月十六日/命旌

 

춘주지에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  영암박씨 판서 보룡(寶龍)에 17세에 어린 나이로 헐어진 울을 고치고 나무를 해다가 불을 뜻뜻이 때 드렸으며 맛있는 음식은 먼저 부모에게 드리고 자기 몸은 돌보지 않았으며 부친 병환에 자라가 약이라 하니 구해다 드렸으며 또 꿩고기가 먹고 싶다 하여 꿩을 구하니 밤중에 꿩이 부엌으로 들어와 부모에 봉양하였다 한다. 부친이 보리밭에다 쟁기를 떨구고 왔으니 가져오라 하여 쟁기를 가져오는데 이 때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는데도 옷이 젖지 않아 사람들이 물으니 번개불이 비치어 비 오는 줄 몰랐다 하더라. 이로 정려를 세우라 명함’4)

 

효자문의 옆에 있는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 효자문은 박주국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54년(철종 5)에 건립된 것이다. 효자 박주국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착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특히 박효자는 그의 아버지가 병환으로 생명이 위독하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치료 하던 중 의원으로부터 자라를 잡아 약을 하면 좋다는 말을 듣고 자라를 구하려고 매일 강가에 나가 자라를 잡으려 하였으나 때는 마침 장마철이라 자라를 구할 길이 없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밤마다 자라 구하기를 기도하였다. 그러니 하늘도 무심치 않은 듯 어디선가 강으로 나가 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즉시 강가로 나가보니 과연 큰 자라 한 마리가 강가에 나와 있어 이를 잡아다 부친께 약으로 다려드려 병환을 낫게하여 드렸다.

  지극한 효자인 박주국의 효성을 기려 나라에서는 정문을 내려 이곳에 효자문을 세우게 하였다.

 

 

3)춘천백년사편찬위원회,춘천백년사』, 춘천시, 1996, 2125.

오춘택·오영섭, 춘천의 유교유적,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한림대학교 박물관, 1997, 346.

4)춘천시·춘성군, 『춘주지』, 춘천문화원, 1984,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