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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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박성규(朴成逵)· 효부 연안김씨(延安金氏) 정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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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 및 열녀문 원위치
상세정보

남산면 수동2리에 있는 정문(旌門)으로 효자 박성규와 그의 처 연안김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88(고종 25)년에 세운 것이다. 원 위치는 박선명 묘소의 능선 50아래쪽에 있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정려문과 정려의 안내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박성규 정려문 : 孝子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使朴成逵之門 上之二十五年戊子月日命旌

 

연안김씨 정려문 : 孝婦贈貞夫人延安金氏贈戶曹參判朴成逵妻之門 上之二十五年戊子月日命旌

 

효자 박성규는 모친이 병석에 누워 위독할 때 그의 어머니를 구하려는 효성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드려 어머니를 소생하게 한 일이 있다. 또한 그는 부모가 원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구하여 지성으로 섬겼다.

부친이 노루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였을 때는 산에다 덫을 놓고 기다렸다. 그러나 노루가 잡히지 않아 산신(山神)에게 기도하니 호랑이가 노루를 물고 와 놓고 간 일이 있다고 한다. 그의 처() 연안김씨(延安金氏) 또한 천성이 효성스러워 시부모를 봉양함에 정성을 다하였다.

집에 큰 불이 났을 때 팔순의 시아버지를 구출하고자 스스로 불길 속에 뛰어들어 시아버지를 업고 나오는데 그 효성에 신이 감동하였는지 갑자기 맞바람이 불어 불이 꺼져 불길 속에서 무사히 구출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효자 부부의 일이 널리 알려지자 나라에서는 효자 박성규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曹參判)겸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의 벼슬을 내리고 효부 연안김씨에게는 정부인(貞夫人)을 내려 효자부부의 효행을 기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