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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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번(鄭自藩)·정자방(鄭自芳) 정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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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정자번과 정자방 형제의 우애를 기리기 위하여 내린 정려이다. 정려각에 정려는 없고 이를 최근에 기록한 비문이 정효각(旌孝閣) 내에 있다. 비의 앞면에는 이에 대하여 한문으로 작성하고 2~4면은 이를 번역하여 놓았다. 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서기 1599(己亥) 514(신유) 강원감사 기자헌(奇自獻)이 아뢰었다.

춘천에 사는 전 내금위 정자번(鄭自蕃)과 전 사과(司果) 정자방(鄭自芳) 형제는 문충공(文忠公) 정몽주의 6대손입니다. 본디 근후한 인물로서 일찍부터 자수(自修)하는 도리를 딲고 양친을 시봉하면서 힘써 어버이의 마음과 뜻을 봉양하였으며 부드러운 낯빛으로 어기는 일이 없이 승(承順)하였습니다. 오십세가 먼저 넘어 먼저 부친의 상을 당하자 염습과 빈소 등 장례절차를 한결같이 예절에 따라 했는데 슬픔을 가누지 못하여 지절하였다가 깨어나곤 했습니다. 장례를 치를 때쯤 큰비가 연일 퍼부어 언덕과 계곡을 분간 못할 정도가 되었는데 두형제가 하늘을 부르짖으며 못 견디게 슬퍼하자 구름이 걷히고 비가 멈추더니 하늘이 갑자기 개어 이에 발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반혼(返魂)하고 나자 비가 다시 내려 며칠간 개지 않았으므로 향리 사람들이 경탄하며 효성의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죽을 마시고 시묘하면서 한 번도 집에 가지 않았는가 하면 대낮에도 묘소에 가 곡하며 애통해 하였고 상복을 벗지도 않은 채로 상기를 마쳤습니다. 탈상한지 일년 후 또 모친상을 당하자 모든 례제(禮制)를 한결같이 처음 상사와 같이 하였습니다. 일찍이 석물을 갖추고자 했지만 가세가 빈곤하여 마련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묘 앞에 산기슭이 저절로 갈라지더니 수정 두세 말이 그 속에서 나오는 바람에 그것을 캐어다가 옥장수에게 팔아 그 돈으로 목면 삼십여 필을 얻어 즉시 석물을 장만하여 마침내 소원을 이루니 사람들이 더욱 감탄하여 기이하게 여습니다. 탈상 후에 크고 작은 상제(喪制)를 정성을 다해 행하였는데 난리 후에도 초하루 보름과 명절에도 예전과 같이 제물을 차리며 원근에 출입할 때는 반드시 사당에 고하였습니다. 이들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만 진력했을 뿐아니라 형제간에 우애도 도타워 베 한조각 좁쌀 한말이라도 서로 돕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와같이 사람은 우선적으로 정표(旌表)하여 인심을 격려시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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