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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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원록서(道浦院錄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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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

사원(祠院)은 각기 고찰할 문헌이 있으나 유독 이 사원만 문헌이 없다. 왜인가? ! 이곳은 세 선생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두 신선생(申先生)은 형양(滎陽) 땅의 외로운 신하를 따라 영안(永安)에서 임금의 유언을 받은 것을 죽어도 후회하는 것이 없었으나 화는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이미 앞에서 좋은 법도를 후손에게 드리우고 뒤에서 선조의 행적을 이었으니, 우뚝한 높은 절개는 해와 달보다 밝게 빛나니, 얼마나 성한 것인가!

우정(憂亭) ()은 장절공(壯節公)과 세대가 800년 뒤이나 태어나 살고 죽어 장사지낸 것은 같다. 도를 이락(伊洛)1)에서 이었고 어두운 거리에서 의를 잡았으니 우뚝하구나! 아직도 사람의 이목을 비추니 마을 사람들은 잊지 못한다. 이미 초나라 사직의 시동(尸童)과 축관(祝官)에 나타났다. 후생(後生)이 존경하여 받드는 것이 또한 어떠한가.

! 경신년(庚申年) 봄에 춘천의 선비들이 임금의 거둥길에 은액(恩額)2)을 청하자 정종대왕(正宗大王)이 특별히 가상하게 여겨 강원도 관찰사에게 본원에 증거가 될 수 있는 문적(文蹟)의 유무를 물었다. 이치를 따져 임금께 아뢴 도신(道臣)3) 상서(尙書) 남공철(南公轍)4)은 도포원에 고증할 만한 문적이 없으면 은액(恩額)은 가볍게 논의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일일이 중지되고 시행되지 않음을 신속히 알렸다. 매번 이 일을 생각하여 한 밤에 벽을 돌며 한 정이 십 년이 되었다. ! 이것은 선배와 장로(長老)가 경황이 없는 일인가? 스스로 를 돌아보니 혹 외람되이 주제넘게 주저하는 것이 몇 년되었다. 이와 같이 얻지 못하는 것보다 차라리 도포원이 예전의 한 것을 따르는 것이 낫다. 드디어 사원록(祠院錄)에 지은 것을 취하고 또 세 선생의 실기를 가려서 합하여 한 편을 만들고 원록(院錄)이라 이름 하였다. 뒤에 고찰하고 조사하는 바탕이 되게 하고 함부로 분에 넘치는 행위를 용서하기를 바란다. 또한 뒷사람이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기를 바랄 뿐이다.

숭정(崇禎) 기원후(紀元後) 4기사(四己巳) 5월일(五月日) 우정선생(憂亭先生) 6세손 진사(進士) 김의협(金義協) 손을 씻고 삼가 쓴다.

 

 

1)이락(伊洛): 이락관민(伊洛關閩)으로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관중(關中)과 민중(閩中)이다. 이수에는 명도(明道)정호(程顥), 낙수에는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강학하였고 관중에는 횡거(橫渠) 장재(張載), 민중에는 회암(晦庵) 주희(朱熹)가 강학하였다. 여기서는 정주학(程朱學)을 가리킨다.

2)은액(恩額): 임금이 사당(祠堂)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특별한 은전을 나타내는 것.

3)도신(道臣): 조선 시대 각 도의 으뜸 벼슬이었던 관찰사(觀察使)를 달리 이르는 말.

4)남공철(南公轍, 17601840): 본관은 의령. 자는 원평, 호는 사영·금릉이다. 대사성과 부제학을 지냈으며, 1808(순조 8) 이조판서, 1814년 선혜청제조가 되었다. 1817년 우의정, 1821년 좌의정, 1823년 영의정에 올라 14년간 재상을 역임하고 1833년 봉조하가 되었다. 당시 제일의 문장가로서 시와 글씨에도 뛰어나 많은 금석문과 비갈을 썼다. 순조 때 청조체의 근대적 활자로 자수가 약 8만 자인 전사자라는 동활자를 만들었다.

5)숭정(崇禎): 중국 명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의종(毅宗)의 연호.

6)기원후(紀元後) 4기사(四己巳): 1809.

◆ 원문

祠院各有文獻之考徵者 而獨於是院 而無之 抑何也 嗚呼 此是三先生所享之申公二先生追滎陽之孤忠 而死無所悔 受永安之遺詔 而禍不旋踵 旣垂裕於前 又繩武於後 卓卓高節 炳烺乎日月 何其盛哉 憂亭公與壯節公 世之相後八百年 生居死葬 又相同也 接道伊洛 秉義昏衢 卓斝乎 尙照人耳目 鄕人之不諼 已著於楚社之尸祝 後生之尊奉 亦何如哉 粤在庚申春 本州人士龥請恩額于輦路 正宗大王特嘉異之 詢于東伯 本院有可徵文蹟否 卽爲論理啓聞 道臣南尙書公轍 以爲本院無文跡之可攷證者 恩額款 恐難輕議 馳聞 事寢不行 每念玆事 中夜繞壁情 十餘年 噫此是先輩長老未遑之事也否 自顧 或猥越 而咨且者數矣 與其如是而不得 無寧斯院之依舊倥 遂取祠院錄所著者 又採三先生紀實文字 合爲一編 名曰院錄 俾作來後攷稽之資 以冀其恕其僭妄 而亦願後人之補其所佚者云爾

崇禎紀元後四己巳五月日 憂亭先生 六世孫 進士 義協 盥水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