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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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절신선생(壯節申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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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

공의 이름은 숭겸(崇謙)이며 자는 사일(史佚)이고 처음 이름은 능산(能山)이다. 신라의 정치가 쇠해지자 견훤(甄萱)이 전주(全州)를 근거지로 삼아 후백제(後百濟)라 칭했다. 궁예(弓裔)는 철원(鐵原)을 근거지로 삼아 태봉(泰封)이라 칭했다. 

잔학함이 나날이 심해져 처와 자식을 죽이고 벌하는 것이 신료(臣僚)에 까지 미쳤다. 당나라 건부(乾符) 424)에 고려 태조가 송악(松嶽)에서 태어났는데 세상을 구제할 뜻이 있었다. 건녕(乾寧) 325)에 궁예(弓裔)는 바다와 육지로 정벌하는데 모두 태조에게 맡겼고 공은 그를 따랐다. 당나라 천성(天成) 226)에 견훤이 신라에 쳐들어가 경애왕(景哀王)을 죽이고 사촌 동생인 김부(金傅)를 세웠다. 고려 태조가 정예병사 5000명을 이끌고 대구의 공산(公山) 동수(桐藪)에서 견훤을 맞아 싸웠으나 불리하였다. 공의 모습이 태조와 비슷해서 공은 태조에게 애수(礙藪)에 숨길 청한 후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가 원보(元甫) 김락(金樂)과 힘써 싸우다가 죽었다. 견훤의 군사는 공이 태조라 여겨 머리를 잘라 창에 꿰어 돌아갔다. 태조는 겨우 몸을 피하고 목공(木工)에게 머리와 얼굴을 새겨 만들게 하고 광해주(光海州) 비방동(悲芳洞)에 장사지낼 땅을 내렸다. 태조는 잔치를 열 때 풀을 묶어 두 사람 모양을 만들어 반상(班上)에 앉히고 술과 음식을 내리게 했다. 술이 다하자 가상(假像)이 일어나 춤추는데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이로부터 음악을 연주하는 자리에 배치하는 것을 상례로 삼았다. 예종(睿宗)이 경자년(庚子年)27) 가을에 서도(西都)를 순시하다가 팔관회(八關會)를 열었는데, 가상(假像)이 비녀를 꽂고 붉은 옷을 입고 홀을 잡고 금을 두르고 말을 타고서 뛰어다니며 두루 뜰을 돌았다. 왕이 기이하게 여기고 물으니 좌우에서 말하길, 이는 신성대왕(神聖大王)이 삼한(三韓)을 통일할 때 대신 죽은 공신인 신숭겸(申崇謙)과 김락(金樂)입니다.라고 했다. 왕이 감동을 받아 공의 현손(玄孫)을 불러 술과 음식을 권선(勸宣)하고, 비단과 임금의 글로 장려했다. 또한 김락(金樂)의 후손에게 벼슬과 상을 내렸다.

김이(金彛)가 기록하다. 

 

 

24) 건부(乾符) 4: 877.

25) 건녕(乾寧) 3: 896.

26) 천성(天成) 2: 927.

27) 경자년(庚子年): 1120.

  

◆ 원문

壯節申先生

公諱崇謙 字史佚 初名能山 新羅政衰 甄萱據全州 稱後百濟 弓裔據鐵原 稱泰封 虐日滋 殺妻戮子 誅及臣僚 唐乾符四年 麗祖生于松嶽 有濟世之志 乾寧三年 弓裔以水陸征討悉付之 公從焉 唐天成二年 甄萱入新羅弑景哀王 立其表弟金傅 麗祖率精兵五千 邀萱於大丘公山桐藪 戰不利 公貌似太祖 公乃請太祖隱於礙藪 遂乘御車出 與金樂元甫 力戰死之 萱兵以公謂太祖 斷頭貫戟而歸 太祖僅以身免 木工刻造頭面 賜葬地於光海州悲芳洞 太祖設宴結草爲二人像 坐班上賜酒食 酒焦乾假像起舞如生人焉 自此排置樂庭以爲常 睿宗庚子秋 省西都設八關會 有假像戴簪服紫執紆金騎馬踊躍酒巡于庭 王奇而問之 左右曰 此神聖大王合三韓代死功臣申崇謙金樂也 王感慨徵公玄孫勸宣以酒食 綾羅宸章以獎之 亦賜金樂之孫職賞 金彛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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