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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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기계심 순절비(春妓桂心 殉節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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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기계심 순절비
상세정보

소양로의 소양정을 오르는 언덕의 강가 방향에 있다. 원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소양로의 묘지 앞에 있었던 것을 도시계획으로 인하여 삼천리의 선산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1990년대에는 소양1교에서 후평동 방향으로 200m 정도 진행하여 봉의산 자락으로 직선거리 50m 지점에 있었다. 비의 내용을 요약하면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 것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순절비 번역문
 앞면- 춘기계심의 묘
 뒷면- 절개 있는 기생으로 전(全)은 성이요 계심(桂心)은 이름인데, 어려서 어머니가 천한 신분이어서 교방(敎坊)에 적을 두었네. 단출하고 바른 자태와 그윽하고 고요한 성품을 지녔으며, 몸가짐은 안방에서 거처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네. 열일곱에 고을 관청의 관리〔향리〕 집안으로 시집가서, 아들에게 허락하고 마음을 바꾸지 않았네. 분단장한 여인들 속에서 겸손하게 스스로 지키며, 다른 사람에게 교태와 웃음 바치는 것 배우지 않았지. 누구의 부탁으로 상방(尙方;궁궐에서 왕실의 의복과 장신구를 제작하던 관아)으로 옮기게 되니, 혼례복 챙겨서 한양으로 갔네. 서울에는 비뚤어진 마음 가진 악한들 많아, 이슬 젖은 길에 포악한 사람 만날 걸 생각했네. 치마엔 호신용 칼 차고 주머니엔 약 넣어, 기러기 털처럼 가볍게 죽으리라 다짐했네. 이별할 때 은근히 하늘에 맡겼으나, 못난 자식 오히려 마음은 쇠처럼 굳고 단단하네. 배 안의 태아 누(累)가 되어도, 차마 내 손으로 베어 떼어 낼 수 있으랴. 옷 더럽히고 몸 망가뜨려 스스로 더러워지니, 한 번 죽기를 각오하자 마음은 더욱 굳어지네. 달 밝고 인적 고요한 중원(中元;백중(伯仲). 음력 7월 15일) 날 밤에, 조용히 사탕 먹듯 독약 마시니, 옆 사람 놀라 구했지만 이미 늦어, 숨 넘어 가려 하자 겨우 목소리를 들으니, 가체머리 팔아 관 준비하고 뒷일 부탁하며, 살갗 드러나지 않게 염습하고 안치를 잘해 달라 하네. 세 차례 온 집안의 편지 허리춤에 매어 달라 하면서, 이것저것 부탁하는 사별의 말 그 울음 슬프구나. 남편이 끌어안고 호리(蒿里;무덤)으로 돌아오니, 죽은 영혼 사라지기 어려워 꿈속에서도 감동하게 하네. 옥이 깨지고 구슬 물에 빠져 푸르러졌어도, 절의(節義)로써 떳떳이 지켜내니 가을 서리보다 매섭구나. 순상(巡相;순찰사) 이공(李公)께서 그 일을 듣고, 금수(錦水)의 경랑(瓊娘) 위해 두 깃발 날리며 와, 급이 돌 다듬고 작설(綽楔;홍살문)로 바꾸라 하시고, 공사 비용 관아에서 지출하게 하셨으며.새로 부임한 부사 또 녹봉 내시어, 묘 앞에 석 자 남짓 묘비 세웠네. 춘주(春州)에 매여 전기 쓰는 나그네, 속뜻을 주워 모아 이 비명 짓누나. 가경(嘉慶) 원년(元年) 병진년(丙辰年:1796) 5월 일. 금성(錦城) 박종정(朴宗正) 짓고, 문화(文化) 류상륜(柳尙綸) 쓰고, 김처인(金處仁)이 공사를 살폈다.


   비좌 : 높이-24㎝     폭-57×32㎝
   비신 : 높이-97㎝     폭-37×13㎝

 

   순절비 명문
   앞면- 「春妓桂心殉節之墳」
   뒷면- 「(節妓全姓)桂心名 少仍母賤籍敎坊 簡潔之姿幽靜性 持身無異處閨房 十七(于歸府)吏家 與子成諾許不更 退然自守粉黛中 不學他人嬌笑呈 尙方移屬(被誰囑) 收拾嫁衣入漢京 長安挾斜惡少多 料得行露遭暴强 裙帶秋蓮囊儲(藥 鴻毛)一擲矢自戕 臨別慇懃托所天 弱息猶關鐵肝腸 腹中自物添自累 忍(能割)愛手墮傷 垢衣毁容便自汚 會須一死心冞剛 月白人靜中元夜 從容飮(毒如)飴糖 傍人驚救已無及 奄奄厪辨喉間聲 賣髢備柩屬後事 肥膚勿露殯(斂精) 三度家書繫腰間 面面訣語哀其鳴 夫壻抱襯還蒿里 一靈難泯夢感塲 (玉)碎珠沈等碧綠 節義方之逾秋霜 巡相李公聞其事 錦水瓊娘雙表旌 亟(令)伐石替綽楔 工費辨給出上營 新莅明府且捐俸 墳前標立三尺盈 春州纍(客)立傳者 掇取餘意述此銘
        (嘉慶)元年丙辰年五月日 錦城朴宗正撰 文化柳尙綸書 看役夫金處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