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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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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 비
상세정보

김환(金鍰, 1650~1744)은 호가 낙애(樂厓), 지충주부사(知忠州府使)를 지냈으며 89세에 자헌대부가 되었다. 92세인 1742년에 동이돈녕부사(동지돈녕부사) 때 영조로부터 호랑이 가죽을 하사받았으며 영조는 그를 특히 총애하여 어제시를 내리자 후손이 이를 비에 새겨 후대에 남김
어필은 한국전쟁기에 없어지고 어필각도 이후 훼손되어 현재는 어필비를 새로 새겨 남산면 수동리 김환의 후손 가정집 마당에 뉘여져 있다.
비좌은 없으며 비신만이 남아 있다.


김환 비
앞면 : 「御筆/我朝三百年來也/今卿父子半乎哉/特命陞超有意在/耆府宣謝朱門開」
 번역: ‘어필 : 우리 조선조가 3백년이 되었는데 / 이제 경의 부자 나이가 반이나 되었구려 //특별히 명을 내리니 뜻이 있다면 관직에 오르시오/ 기부에서 마땅히 주문을 열어 사례하리라.’ 24)
옆면 : 「一九七九年五月六日/樂崖公  鍰 後孫一同」


김환 비
뒷면 : 「이조 22대왕 영조 14년 무오(서기1738년) 8월 1일 영조께서/안동김씨 충렬공 방경 13대손 낙애공(樂崖公) 환을 대기로서 인견하사 특명으로 지중추/부사를 내리시고 어필로 글을 하사하시니 이를 어필각에 봉안하여 왔었다. 이/어필은 6.25동란으로 멸실되고 건물만 보존되어 오던 중 이제 종문의 단성으/로 중건하기에 이르러 멸실된 어필문을 비에 새겨 길이 보전하고자 한다./공의 휘는 환(鍰)이요 자는 자중(子仲)이며 호는 낙애(樂崖) 또는 양산(梁山)이시니 익원공(翼元公) 사위의 9대/손이요 문정공 질(礩)의 6대손이며 경현공 효건의 제4자이시다. 효종1년 경인생/(서기1650년)으로 숙종 15년 기사(서기 1689년)에 진사하고/동 17년 신미문과에 오르니 벼슬이 통정가선대부지돈녕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에 이르셨다. 영조 19년 계해(서기 1943년) 3월 3일 향년 94세/로 졸하시니 수로서 연초사자(連超四資)하셨으며 기사(耆社)에 들어있다./어시(御詩)에 가로되 아조 3백년간에 이제 경의 부자 나이 반(半)이나 되지 않느냐. 특히 명(命)/하여 승초(陞超)한 것은 뜻이 있느니라. 기부는 마땅히 주문을 열었으니 경사스럽도다.


   비신 : 높이- 120㎝  폭-42×13㎝

 

24) 이학주, 「수동리(壽洞里) 낙애지(樂厓地)」,  『춘천사람들』2016년 5월 9일자(주간 제26호), 춘천시민언론협동조합,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