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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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황 흥학비(嚴惶 興學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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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황 흥학비
상세정보

향교의 홍살문 밖 동쪽 은행나무 아래에 지계사호성비와 장헌근 모성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엄황(1580;선조 13∼1653;효종 4)은 조선후기 무신으로 본관은 영월, 자는 명보(明甫)이다. 증조부는 좌부장(左部將) 용화(用和)이고 조부는 선공감부정(繕工監副正) 서(曙)이며 부는 직장(直長) 인달(仁達)이다.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남해현령·도총부도사·비변사 낭관(備邊司郎官)·안동판관·함안군수·곤양군수·영남좌수사·훈련원도정을 지냈다. 이후 동지중추(同知中樞)가 되고 부총관을 겸하였다. 1646년(인조 24) 춘천부사에 부임해서는 문소각과 문루인 조양루를 건립하였다. 이듬해인 1647년에는 소양정을 중수하고 선몽당(仙夢堂)을 지었으며, 『춘주지(春州誌)』를 편찬하였다.25)
이 비는 1986년에 건립하였다.
  

흥학비 명문
앞면- 「行府使嚴公惶興學之碑」
뒷면- 「在昔仁祖朝에 有侯嚴愰하니 宰是郡時에 以興學善政으로 爲己任하고 校宮補修와 道誌發刊에 盡力奉仕하고 及政에 不義之事는 毫釐不犯하야 不遺民弊하고 庶政이 淸廉하야 治敎가 休明하니 吏畏民懷라 其學問也와 德義也와 淸白也와 功績也를 州民이 嘉之하야 立石以表하고 誦而傳之하야 永世不忘이러니 不幸而屢遭兵燹之禍하야 破壞散散하야 其形이 悽慘이라 古語云前王不忘이라하니 世代가 雖遠이나 賢其賢而頌其德은 士林之本情이니 十目所視와 十手所指에 不可放置者가 是也라 與士林公議로 復設于校庭一隅하고 簡而略叙하야 使知後之君子하노라.
     檀紀四三十九年丙寅夏四月朔朝   典校 潘昌均 謹識


   비좌 : 높이-18㎝     폭-80×50㎝
   비신 : 높이-140㎝    폭-45×22㎝


25) 강원도사편찬위원회,  『강원도사』10 인물편 上, 강원도, 2014, 2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