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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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평(潘碩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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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평(潘碩枰) 시
상세정보

반석평(1472;성종 3~1540;중종 35)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공문(公文), 호는 송애(松厓) 또는 경재(謙齋)이다. 아버지는 서린(瑞麟)으로 서얼 출신이다. 조광조·김식 등과 교유하였고 1507년(중종 2)에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검열이 되고 경차관으로 함경도에 파견되어 여진의 동정을 보고하였으나 천얼 출신이라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다. 1516년 종5품으로 경흥부사를 지내고 1522년 만포진첨절제사를 거쳐 함경남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1524년 군기를 살피지 않고 도로 사정으 보고를 잘못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가 자사 병조참의에 임명되었다. 1527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 1530년 경연특진관과 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1531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 온 후 예조참판·전라도관찰사·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1533년 함경북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이미 역임하였고 문신이라는 반대로 부임하지 못했다. 이후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공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시종(侍從)을 역임하지 않았다 하여 공조참판으로 고쳐 임명되었다. 동지중추부사·형조참판·한성부판윤·형조판서 등을 지냈고 이듬해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청렴하고 겸공한 관리로 이름났으며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암각시는 한림대학교 뒤편인 봉의산 등산로 가에 있다. 글자에 붉은 칠을 하였으며 시는 1531년(중종 26)에 지었고 그의 9세손인 우한(遇漢)이 1725년(영조 1)에 새겼다.26)


암각시 명문
 : 碧岧帶聖化/美號至今傳/鳳去韶聲斷/登臨獨悵然/嘉靖十年日/監司 潘碩枰/ 題/九世孫 遇漢/雍正三年 刻
번역문
 : 푸르게 높은 산 성인의 교화입어    (碧岧帶聖化)
   아름다운 이름 오늘까지 전해지는   (美號至今傳)
   봉황은 가고 풍류소리 끊어졌으니   (鳳去韶聲斷)
   봉의산에 올라 슬퍼하노라          (登臨獨悵然)27)
   가정10년 감사 반석평이 짓고 9세손인 우한이 옹정3년에 새긴다.


26) 김용선·김태욱, 「춘천의 비문과 암각문」,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한림대학교 박물관, 1997, 236쪽.
27) 신종원, 「춘천 봉의산 암벽의 반석평 시」, 『춘주문화』창간호, 춘천문화원, 1986, 41~44쪽.
    오춘택, 「반석평 론」, 『아시아문화』5,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1989, 45~70쪽.
    권혁진, 「봉의산 반석평 암각시」, 『돌 위에 핀 춘천 문화』, 강원사진연구소, 2015, 36~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