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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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憂亭) 김선생(金先生)께 알리는 글

상세정보

◆번역문

농암(籠巖)1)의 절개는 능히 인도(人道)를 세워 독실하게 후손 낳았네. 공은 출중하여 이를 갈 때부터 군자라 칭해졌네. 한 결 같이 소학(小學)을 따라 몸을 경계하고, 삼가서 허물을 제어하며 모든 행동은 효를 근원으로 삼고, 모든 선이 다 갖춰졌네. 생사장제(生死葬祭)에 예의가 모두 정성스럽고 지극해서, 피눈물 흘리며 3년을 지내면서 이를 드러내고 웃지 않았네. 이미 경서의 가르침을 따르고 문학과 역사를 익혀, 일찍이 상상(上庠)2)에 올라 늘 정의(正義)를 지녔네. 외과(巍科)3)에 급제하여 보부를 시험하려는 데, 좋게 여기지 않는 자가 원망하는 뜻을 품고 해쳤네. 혼돈의 때를 만나 윤리가 어두워지자, 문을 막고 뜻을 구하였네. 나쁜 마음 가진 간사한 자가 이로움을 차지하려 하자, 공은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두려워한 것은 두 마음 먹는 것이었네. 평상시 거처함에 몹시 분하게 여겨 눈물이 말할 때마다 떨어졌고, 악한 자를 미워했으니, 어찌 엿듣는 자를 두려워하리오. 덕이 밝아짐에 미쳐 봉양을 위해 몸을 굽혀, 잠시 내외를 다녀 수레를 타고 다스렸네. 어려움을 듣고 무리를 모아 대의(大義)를 외쳤네. 공이 계신 곳은 대개 또한 유래가 있으니, 행동을 독실이 하고 절개를 힘쓰는데 16자가 있어, 벽에 걸고 눈으로 보며 받아들이고 버리지 않았네. 품부 받은 것은 많으나 쓰임은 적었고, ()는 높으나 지위는 낮았네. 춘천을 바라보니 공은 형비(衡泌)4)하였고, 저 오봉(五峯)을 바라보니 당부(堂斧)5)에 있네. 오직 장절공(壯節公)은 이곳에 사당이 있는데, 공은 외손이라 배향되는 것이 마땅하네. 또한 현헌(玄軒)6)이 있어 도의(道義)로 함께 무리 지었으니, 성대한 예의를 거행하여 함께 술과 고기를 올리니, 많은 선비들이 달려와 깜짝 놀라 기뻐하네. 소양강은 맑게 흐르고 봉의산은 높게 솟았네. 공을 생각하고 되돌아보니 산과 물 같은 영혼 성대히 오르내리며, 오직 이곳에 계시니 제사지내는 것을 흠향하소서. 천 년 백 년 제사하리니, 바라건대 남몰래 도와주시어, 후학에게 은혜를 주소서.

자헌대부(資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 겸 홍문관대제학(弘文館大提學)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 지경연사춘추관사(知經筵事春秋館事) 성균관사(成均館事) 김진규(金鎭圭) 찬하다.

 

 

1)농암(籠巖): 김주(金澍)의 호. 본관은 일선(一善)이다. 1392(공양왕 4)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내며 하절사(賀節使)로 명나라에 갔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압록강에 이르러 망국의 소식을 듣고 명나라로 다시 돌아가 명나라 황제에게 조선을 정벌하고 고려를 다시 건국해줄 것을 주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망국의 신하된 도리로 고국에 돌아갈 수 없어 명나라에 있을 것을 청하니 그 충절을 가상히 여겨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제수되었다. 그러나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하여 고려를 사모하며 충절을 지켜 상서록(尙書祿)이 내려졌다.​​

2)상상(上庠): 소과(小科)를 말함.

​3)외과(巍科): 문과를 말함.

4)형비(衡泌):

◆원문

告憂亭金先生文

籠巖之節 克樹人紀 篤生後昆 公乃拔萃 自在髫齕 人稱君子 一部小學 飭躬制辜 百行源孝 衆善咸備 生辜葬祭 禮盡誠至 泣血三年 人不見齒 旣服經訓 亦攻文史 早登上庠 常持正義 及決巍科 抱負可試 彼不悅者 挾憾以忮 値時之昏 倫常晦否 爰杜我門 爰求我志 秉匈之奸 欲啗以利 公絶不顧 惟恐或貳 平居憤惋 淚隨言墜 所惡者惡 寧怵垣耳 逮際休明 爲養屈意 暫歷內外 載著治理 聞難糾衆 又昌大義 凡公所存 蓋亦有自 篤行勵操 有十六字 壁揭目寓 受用不匱 豐賦嗇施 道尊位卑 睠玆壽春 卽公衡泌 瞻彼五峯 堂斧亦寄 惟壯節公 有祠此地 公其彌甥 宜配腏祀 亦有玄軒 道義與類 乃擧盛儀 竝薦醴胾 多士駿奔 一方聳喜 昭陽淸漣 鳳儀高峙 想公眷顧 某丘某水 洋洋陟降 其專在是 歆我芬苾 期千百禩 庶幾陰佑 後學是庇

資憲大夫禮曹判書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 知經筵事春秋館事成均館事金鎭圭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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