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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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세(鄭經世), 「문암서원 상량문」, 『우복집』

상세정보
정경세(鄭經世)49) , 「문암서원 상량문」50) , 『우복집』

번역문

하늘이 우리 사문(斯文)을 없어지지 않게 하여 정학(正學)이 밝은 시대에 끊어졌다가 이어졌으며, 백성들이 이 떳떳한 덕(德)을 좋아하매 대현(大賢)을 명당(明堂)에다 경건히 모셨도다. 이에 한때의 사람들이 보고 들음이 새롭게 되었고, 만대토록 영원할 추향(趨向)이 정해지게 되었도다.

아, 아름답도다. 우리 동방의 부자(夫子)로는 오직 퇴계(退溪) 선생 한 분만이 계시는도다. 포은(圃隱)에서부터 회재(晦齋)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자들의 정연한 이치를 집대성하였으며, 민락(閩洛)에서부터 수사(洙泗)에 이르기까지 천성(千聖)의 연원(淵源)을 거슬러 올라가셨도다. 하신 공부는 널리 학문을 닦고 예로써 요약하는 박문약례(博文約禮)51)의 공부였고, 하신 일은 전 시대의 성인을 잇고 후대의 선비들을 틔워 주는 계왕개래(繼往開來)52)의 사업이었도다. 동서남북 할 것 없이 모두들 복종하지 않기를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기린이나 봉황처럼 모두들 손으로 가리키면서 상서로 삼았다. 무릇 지나가기만 해도 교화가 된 지방은 모두가 종사(宗祀)하는 전례를 올리는 것이 걸맞도다.

하물며 이 수춘(壽春)53) 큰 부(府)는 평소에 문헌(文獻)의 명향(名鄕)으로 칭해지고 있도다. 산과 냇물이 신령스러움을 기르매 건안(建安)이 축모(祝母)의 관향(貫鄕)이 되었고, 바위와 골짜기가 향기를 띠매 형악(衡嶽)에 회옹(晦翁)이 제(題)한 것이 남아 있도다. 이미 덕이 있는 분을 흠모하는 유림(儒林)이 있으니, 도를 높이는 성대한 거조가 없어서야 되겠는가. 시기는 반드시 적당한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법이고, 예라는 것은 본디 저절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도다.

삼가 생각건대, 부백(府伯)으로 있는 명공(明公)께서는 시례(詩禮)의 학문으로 자신의 몸을 닦았고, 박아(博雅)한 성품으로 옛것을 좋아하였도다. 옥순(玉筍)의 반열54)에 있을 적엔 양대 조정에서 착한 말을 진달한 충성스러운 신하였으며, 송계(松桂)의 숲 속에 있을 적엔 외직으로 나가 독서를 한 신선 같은 수령이었도다. 정사를 베풂에 있어서는 이미 백성들의 폐단을 없애 주는 데 부지런하였으며, 염려를 함에 있어서는 우선 먼저 교화의 근원을 도타이 할 것을 생각하였도다. 이에 드디어 학문을 흥기시킬 계책을 세웠으며, 아울러 선현들의 영혼을 편히 모실 전례(典禮)를 의논하였도다.

풍성(風聲)이 동하는 바에는 경전을 손에서 놓고 부지런히 일하는 선비들이 앞다투어 달려왔고, 귀신(鬼神)이 능력을 보여 주어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춰 두었던 신령스러운 지역을 드러냈도다. 삼대(三代) 시대에 법궁(法宮)55)을 짓던 제도를 상고하여, 양하(兩下)의 하옥(廈屋)56)의 제도를 써서 지었도다. 기둥, 지붕, 문, 시렁, 서까래, 처마, 추녀 등은 바깥에서 보면 의표(儀表)가 반듯하고, 실(室), 당(堂), 방(房), 서(序), 호(戶), 유(牖), 계(階), 숙(塾) 등은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규모가 삼엄하도다. 오르내리고 제사를 지냄에 있어서 아주 마땅한바 그 반듯함에 마음이 상쾌하고, 학문을 닦고 쉼에 있어서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매 물가의 언덕이 산뜻하도다. 그 누가 잡목이 우거져 있던 이곳이 울연히 학문을 닦는 곳으로 변할 줄 알았으리오.

일천 겹 둘러쳐진 푸른 산은 귀신이 깎아 놓은 무이(武夷)57)의 산언덕이고, 세 면을 둘러싼 맑은 물은 하늘이 지어 놓은 반궁(泮宮)58)의 형세로다. 닦아서 밝힌 것은 중고(中古) 시대의 문물이고, 꾸며서 수식한 것은 제일가는 강산이로다. 수많은 사람들 공경스레 바라보기에 마땅하니, 한 시대의 기이한 일이라고 자랑할 만하도다. 이에 애오라지 육위(六偉)의 노래를 불러 대들보를 올리는 것을 돕는도다.

어기영차 들보 머리 동쪽 향해 떡 던져라 / 抛梁東

산과 물이 굽어 도니 가없는 뜻 무궁하네 / 水繞山回意未窮

이곳에서 인과 지의 학문 능히 이룬다면 / 從此倘成仁智趣

그대 친히 퇴도옹을 뵈었다고 허여하리 / 許君親見退陶翁

어기영차 들보 머리 서쪽 향해 떡 던져라 / 抛梁西

연못 물은 깨끗하고 제방은 빙 둘러 있네 / 潭影澄明抱曲堤

서리 오고 안개 낌은 본디 싫지 아니하나 / 霜落霧凝元不惡

거센 비에 흙탕물 흘러듦이 제일 싫다네 / 最嫌狂雨送黃泥

어기영차 들보 머리 남쪽 향해 떡 던져라 / 抛梁南

그림 같은 산봉우리 셋이 우뚝 서 있구나 / 畫裏峯巒玉立三

옛사람 맘 못 얻을까 싶은 것만 겁나나니 / 只怕古人心未獲

풍광이야 정말로 탁영담59)과 흡사하네 / 風光眞似濯纓潭

어기영차 들보 머리 북쪽 향해 떡 던져라 / 抛梁北

산의 형세 등등하게 끊임없이 뻗어왔네 / 山勢騰騰來不極

그대 보게나 변화무쌍한 구름 안개 속에서도 / 請看雲煙變滅中

우뚝하니 만고토록 푸르른 빛 띠고 있네 / 蔚然萬古靑蒼色

어기영차 들보 머리 위를 향해 떡 던져라 / 抛梁上

산 달에다 강 바람은 무진장의 보고로다 / 山月江風無盡藏

가슴속을 그와 같이 맑게 하고 싶거들랑 / 欲敎胸次一般淸

모름지기 마음속의 구름 장벽 없애게나 / 須向靈臺消翳障

어기영차 들보 머리 아래 향해 떡 던져라 / 抛梁下

우뚝하니 눈앞에 커다란 집 보이누나 / 突兀眼前看大廈

이로부터 시작해서 어진 인재 기를 거니 / 權輿從此養賢材

많은 선비 예 올리며 소아 녹명장60) 노래하리 / 濟濟鹿鳴歌小雅

 

삼가 대들보를 올린 뒤에는 신령(神靈)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금하고, 땅은 빼어남을 잉태하리라. 고요한 곳에서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을 익히매 오늘날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면서 옛것을 상고할 것이고, 밝은 뜨락에서 문장(文章)을 꾸미고 생황(笙簧)을 울리매 통달하였을 때 시행하는 것은 궁할 때에 수양한 바일 것이다. 선비들은 현인이 되기를 희망하고 성인을 사모하는 뜻을 분발하고, 집집마다 금(琴)을 뜯고 글을 읽는 소리가 들려오리라. 사람들이 이단(異端)을 스승으로 삼지 않아서 사설(邪說)을 떠들어 대는 자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나라에는 훌륭한 선비들이 태어나서 다스림의 교화가 이로 말미암아 융성해지리라. 그리하여 문(文)을 숭상하는 여풍(餘風)이 우리 동방에 영원토록 전해지리라.

 

49)정경세(鄭經世, 1563~1633): 본관은 진주. 자는 경임, 호는 우복. 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으로 공을 세웠고, 정언·교리·정랑·사간 등을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 뒤 부제학·전라도관찰사·대사헌·이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630년 겸지춘추관사로 〈광해군일기〉 편찬을 담당했다. 그는 예학에 밝았으며, 시문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저서로는 『우복집』·『상례참고 喪禮參考』·『주문작해 朱文酌解』가 있다.

50)「문암서원 상량문」: 을묘년(1615, 광해군7) 춘천(春川)의 부백(府伯)으로 있는 신숙정(申叔正)을 위하여 지은 것이다. 신숙정(申叔正)은 신식(申湜, 1551~1623)을 가리키는데, 본관은 고령(高靈)이고 자는 숙정이며 호는 용졸재(用拙齋)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76년(선조9)에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9년에 사은사(謝恩使)로 명(明)나라에 다녀와서 호조 참판, 대사헌이 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고는 충청도 관찰사,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하다가 또다시 사은사로 명에 가서 왜의 실정을 알렸다. 청주의 쌍천서원(雙泉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의례고증(疑禮攷證)》, 《가례언해(家禮諺解)》 등이 있다.

51)박문약례(博文約禮): 널리 학문을 닦고 이를 예로써 요약한다는 뜻으로, 《논어》 〈옹야(雍也)〉에 이르기를, 군자가 문에 대하여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한다면 또한 도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하였다.

52)계왕개래(繼往開來): 성현들의 사업을 뒤에서 잇고, 후생들이 나아갈 길을 앞에서 틔워 주는 것을 말한다.

53)수춘(壽春): 춘천의 옛 이름이다.

54)옥순(玉筍)의 반열: 뛰어난 영재들이 많이 있는 조정의 반열이란 뜻이다.

55)법궁(法宮): 궁실의 정전(正殿)으로, 임금이 거처하면서 정무를 처리하는 곳이다.

56)양하(兩下)의 하옥(廈屋): 맞배지붕 양식으로 된 커다란 집으로, 용마루를 중심으로 하여 양쪽으로 처마가 늘어지게 지은 집이다.

57)무이(武夷): 복건성(福建省) 숭안현(崇安縣)에 있는 산 이름인데, 산 안에는 아름다운 아홉 골짜기가 있어 이를 무이구곡(武夷九曲)이라고 한다. 주자(朱子)가 일찍이 이곳에서 살았다.

58)반궁(泮宮): 학궁(學宮)으로, 주위의 삼 면이 물로 둘러져 있다. 《시경》 〈반수(泮水)〉에 이르기를, 즐거운 반수에서 잠깐 미나리를 뜯는도다. 노후가 이르시니 그 깃발을 보리라.〔思樂泮水 薄采其芹 魯侯戾止 言觀其旂〕 하였다.

59)탁영담: 탁영담(濯纓潭)은 도산서원 앞에 있는 연못 이름이다.

60)녹명장: 녹명장(鹿鳴章)은 《시경》의 편명으로, 옛날 과거에 급제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이 시를 노래하였다. 여기서는 이 서원에서 배출된 많은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할 것을 말한다.

「文嚴書院上梁文」

天未喪斯文 正學繼絶於昭代 民之好是德 大賢揭虔於明宮 新一時之瞻聆 定萬世之趨向 猗歟東土夫子 寔惟退溪先生 自圃隱至晦齋 集成諸子之條理 由閩洛達洙泗 遡洄千聖之淵源 博文約禮之功程 繼往開來之事業 自東西南北而無思不服 如麒麟鳳凰之皆指爲祥 凡在過化之邦 擧稱宗祀之典 矧伊壽春大府 素稱文獻名鄕 山川毓靈 建安爲祝母之貫 巖洞帶馥 衡岳留晦翁之題 旣有慕德之儒林 可無尊道之盛擧 時必有待 禮不自行 伏惟府伯明公詩禮治躬 博雅好古 玉筍班裏兩朝陳善藎臣 松桂林中一麾讀書仙宰 政已勤於民隱 念先敦於化源 遂建興學之謨 竝議妥靈之禮 風聲所動 奔釋經敦事之靑衿 神鬼與能 發天慳地祕之靈境 徵三代法宮之制 用兩下廈屋之規 棟宇楣庋楹翼廉阿觀於外而儀表整飭 室堂房序戶牖階塾入其中而摸範森嚴 登降祼薦之攸宜 噲噲其正 藏修息游之有所 秩秩斯干 誰知榛莽之場 蔚爲絃誦之地 千回翠壁 神刓武夷之岡巒 三面晴虹 天作泮宮之形勢 修明中古文物 賁飾第一江山 宜萬目之聳觀 詑一代之奇事 聊陳偉唱 助擧修梁 抛梁東 水繞山回意未窮 從此倘成仁智趣 許君親見退陶翁 抛梁西 潭影澄明抱曲堤 霜落霧凝元不惡 最嫌狂雨送黃泥 抛梁南 劃裏峯巒玉立三 只怕古人心未獲 風光眞似濯纓潭 抛梁北 山勢騰騰來不極 請看雲煙變滅中 蔚然萬古靑蒼色 抛梁上 山月江風無盡藏 欲敎胸次一般淸 須向靈臺消翳障 抛梁下 突兀眼前看大廈 權輿從此養賢材 濟濟鹿鳴歌小雅 伏願上梁之後 神呵不祥 地孕其秀 靜地詩書禮樂 今人與居古人與稽 明廷黼黻笙鏞 達時所施窮時所養 士奮希賢慕聖之志 家有彈琴讀書之聲 人無異師 邪說者不得作 國生多士 治化之所由隆 右文餘風 左海終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