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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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조(李玄祚) 「문암에서 서원을 읊은 시의 운에 차운하다[追次文巖用書院韻]」, 『경연당선생시집(景淵堂先生詩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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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조(李玄祚)64) 「문암에서 서원을 읊은 시의 운에 차운하다[追次文巖用書院韻]」, 『경연당선생시집(景淵堂先生詩集)』

송나라 학문 거듭 듣고 교화되니 / 治化重聞宋

모두 변해서 유학의 풍습으로 같아졌네 / 儒風一變齊

비로소 올바른 덕 먼저함을 알아 / 始知先正德

뒷사람 미혹됨을 계발할 수 있구나 / 能啓後人迷

시간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여러 학생들 사모하고 / 世遠諸生慕

산은 무너지고 지난 자취 쓸쓸하지만 / 山頹往跡凄

서원엔 남겨진 가르침 있는데 / 庠宮遺敎在

들어가려니 어찌하여 사다리 없나 / 入室詎無梯

늦게 배워 어짊 펼칠 곳 그리나 / 末學懷贒地

업에 뜻 둔 것 어긋남에 탄식하누나 / 偏嗟志業違

이 사람 응당 죽을 것이나 / 斯民應不祿

나의 도 어찌 그르다 말하겠가? / 吾道豈云非

골짜기 마을에 덕의 향기 남아있고 / 峽邑留馨德

서원은 깊은 산속을 차지하고 있는데 / 儒宮占翠微

배타고 가다가 해를 바라보고 / 舟行瞻仰日

문득 속세의 기미 잊네 / 斗覺息塵機

 

64)이현조(李玄祚):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계상(啓商), 호는 경연당(景淵堂). 태종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좌랑 석규(碩揆)이며, 어머니는 여흥민씨로 좌랑 성복(聖復)의 딸이다. 큰아버지 동규(同揆)에게 수학하였다. 1681년(숙종 7)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 증광시에 을과로 급제, 다음해 검열(檢閱)을 거쳐 대교(待敎)에 올랐다. 1684년 구언(求言)에 의하여 허목(許穆)의 관작 복구를 상소하였다가 도리어 파직당하였다. 1685년 대교로 복직, 1689년 사가독서하여 호당(湖堂)에 들어갔다가 성균관전적으로 부임한 다음 경상도도사·경기도도사를 거쳐 사간원정언·홍문관수찬·이조좌랑을 지냈다. 1689년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출을 적극 반대하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 사인(舍人)·사간·대사간·형조참의를 거쳐 강원감사를 지냈다. 저서로 『경연당집』이 있다.

 

李玄祚, 「追次文巖用書院韻」, 『景淵堂先生詩集』

 治化重聞宋

儒風一變齊

 始知先正德

能啓後人迷

世遠諸生慕

山頹往跡凄

庠宮遺敎在

入室詎無梯

末學懷贒地

偏嗟志業違

斯民應不祿

吾道豈云非

峽邑留馨德

儒宮占翠微

舟行瞻仰日

斗覺息塵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