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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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재(朴鳳載) 묘비명(墓碑銘)

상세정보

번역문

통정대부 밀양박공 휘 박봉재의 무덤(배인 숙부인 인동장씨 왼쪽에 합장)

농암 박공의 묘갈명 서문과 함께

 

공의 성은 박씨, 휘는 봉재(鳳載), 호는 농암(農菴)이다. 신라의 박씨는 연원이 오래되어 대대로 유명한 인물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족으로, 고려조에 중대광 밀성군(密城君) 휘 두()가 중시조이다. 대대로 전해져 휘 갱()은 우리 조선조에 들어와 지돈녕부사에 이르렀고 정종의 부마가 되었다. 4대가 전해져 휘 혜()는 사직이었고, 3대가 전해져 휘 정중(廷重)은 이조판서로 호는 임정(林亭)이다. 이상이 공의 6대조 이상 선조이다. 증조는 휘 원득(源得)인데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고, 조부는 휘 계채(啓采)인데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고, 부친은 휘 규환(圭煥)인데 참봉이며 호은(湖隱)이라 자호하였다. 모친은 김해김씨 재선(載銑)의 따님이다.

공은 철종226) 신축년(1841) 329일에 태어났다.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선량하였고, 장성하여서는 공손함과 검소함, 효성과 우애로 명성이 날마다 커졌다. 집안을 다스림에 법도가 있었고 남들과 교유함에 정성과 신의가 있었다. 자식과 조카를 돈독한 윤리로 가르쳐 항상 명예와 의리를 먼저 세움을 숭상함으로 근본을 삼았다. 정성을 다해 가르치는 것은 한결같이 올바름에서 나와 온화한 기운이 무성하였다. 후손들이 창성함과 부유함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친족을 잘 보존하고 집안이 화목하여, 고을에서 가풍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이 공의 집안에 귀의하는데, 근본으로 따지고 올라가면 모두 공이 평소에 죽을 때까지 후손들을 교육시켜 교화가 계속하여 쌓인 것이니, 이른바 우는 학이 그늘에 있거늘, 그 새끼가 화답하도다.227)라고 일컫는 바가 아니겠는가. 공의 지위는 그가 지닌 덕과 맞지 않아 고종(高宗)228)경자년(1900)에 이르러 처음으로 참봉에 제수되었고, 임진년(1912)에 통정으로 승진하여 3품의 품계에 이르렀고, 계축년(1913) 47일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였다. 춘천 동면 만천리 중부 가릉후갑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배위는 김해김씨 원홍(源弘)의 따님으로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일찍 세상을 떠나 학곡리에 장사지냈다. 둘째 부인은 인동장씨 시능(時能)의 따님인데, 성품이 유순하고 아름다우며 곧아 부녀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지녔다. 집안에서 여러 사람들을 거닐면서도 이간질 하는 자가 없었다. 을축년(1925) 422일에 세상을 떠나니, 그가 태어난 갑진년(1844) 32일과 거리를 헤아리면 향년 82세였다. 공의 무덤 앞 묘후 언덕에 장사지냈다. 또한 아들 두 명을 낳았는데, 장남은 승호(承祜)이고, 차남은 주사인 승익(承瀷)이다. 승호는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근병(根秉)이고, 승익은 아들 네 명을 두었는데, 주사인 교병(敎秉), 기병(基秉), 대병(大秉), 춘병(春秉)이다. 용문(容文), 용규(容圭), 용삼(容三)은 근병의 아들이고, 용준(容俊), 용상(容相)은 교병의 아들이다. 나머지는 번잡하여 기록하지 않는다.

승익군이 일찍이 효로써 가문을 드러내었는데, 먼 훗날까지 그의 부친을 현양하고 싶어서 부친이 생전에 했던 아름다운 말과 독실한 행실을 가리고 모아서 한두 가지 큰 것을 기본으로 하여 행장을 짓고 나에게 묘지명을 부탁하였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니 공이 수신제가(修身齊家)한 올바름과 선한 마음씨는 고기 한 조각으로 국 전체의 맛을 알 수 있는 것과 같으니 어찌 반드시 말을 많이 하겠는가. 위와 같이 간략하게 서술하고 이어서 명문(銘文)을 짓는다.

 

부친이 시작하고 자식이 이으니

날마다 그 가문은 높아지리라.

덕을 쌓음이 오래 되었으니

이것이 근원이 되리라.

훌륭한 남편에 훌륭한 아내가 있음은

좋은 옥에 또 좋은 옥이 있음과 같다네.

오랜 세월 후손을 위한 덕행을 쌓으면

후세에 보답을 한다는 말 거짓이 아니로다.

이처럼 높다랗게 쌓은 봉분이 있으니

새긴 명문은 영원히 보존되리.

공부자 탄생 2487년 되는 병자년(1936) 1월 그믐날에

가의대부 이조참판 겸동지경연의금부춘추관성균관사 규장각직제학 세자시강원 검교보덕 여흥민씨 민병승(閔丙承)이 짓고,

숭록대부 전판돈녕원사 해평윤씨 윤용구(尹用求)가 쓰다. 

 

226) 철종(哲宗) : 원문은 예릉(睿陵)인데 이는 조선 제25대왕 철종과 비 철인왕후(哲仁王后)의 능호이다.

227) 원문은 鳴鶴在陰, 其子和之인데, 이 구절은 주역』 중부괘(中孚卦) 구이(九二)를 설명하는 글로, 뛰어난 덕을 지닌 이에 감응하여 마을 전체가 훌륭한 풍속을 이루게 되었다는 말이다.

228) 고종(高宗) : 원문은 홍릉(洪陵)인데 이는 조선 제26대왕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의 능호이다.

 

원문

通政大夫 密城朴公 諱朴鳳載之墓 (配淑夫人仁同張氏祔左)

農菴朴公 墓碣銘 並序

公姓朴氏 諱鳳載, 號農菴, 新羅之朴, 得源遠 而代有聞人, 爲東方大族, 以麗朝重大匡密城君 諱陟, 爲中祖. 屢傳 諱賡, 入本朝, 官知敦寧府事, 爲定宗駙馬. 又四傳 諱惠司直, 三傳 諱廷重 吏曹判書 號林亭, 卽公六代以上也. 曾祖諱源得, 司憲府監察. 祖諱啓采 同知中樞府事. 考諱圭煥參奉, 自號湖隱. 妣金海金氏, 載銑女. 公生于睿陵 辛丑 閏三月二十九日. 賦性溫良. 及長 恭儉孝友, 聲譽日章. 御家有法, 接物誠信, 訓子姓以敦倫, 常尙名義之先立爲本, 諄諄敎誨, 一出於正, 和氣靄然. 後承昌阜, 至今保族, 宜家鄕之推家風者歸焉. 本之 則皆公之平日以身卒敎, 積累之化, 而所謂鳴鶴在陰, 其子和之者耶. 位不配德, 始於洪陵 庚子 除參奉. 壬辰 陞通政 三品階. 癸丑 四月 七日卒, 享年 七十三. 葬于春川東面萬泉里中部 佳陵垕甲之原. 配金海金氏 源弘女. 有一男 而蚤歿. 葬于鶴谷里. 後配仁同張氏時能女. 性柔嘉貞一, 有閨範 處家御衆, 人無間言. 乙丑 四月二十二日歿. 距其生 甲辰 三月二日, 享年八十二. 葬于公墓前卯垕原, 亦生一<?>. 長承祜, 次承瀷 主事. 承祜有一男, 根秉. 承翼有四男, 敎秉 主事, 基秉. 大秉 春秉也. 容文 容圭 容三, 根秉出. 容俊 容相 敎秉出. 繁不記. 承翼君曾以孝著門, 思欲顯其親於久遠, 掇拾平日嘉言篤行, 一二大本爲狀, 謁余揭阡之文. 竊念公修齊之正, 心術之善, 一臠可知, 全鼎何必多乎哉. 略敍如右, 系以銘曰: 父作子述 日高其門, 鍾德攸邁 是爲之源. 是夫是婦 如璵如璠, 長世裕昆 報施不諼. 有封睪如 銘詩永存.

孔夫子 聖誕 二四八七年 丙子 元月 晦日 嘉義大夫 吏曹參判 兼同知經筵 義禁府 春秋館 成均館事 奎章閣直提學 世子侍講院 檢校輔德 驪興 閔丙承 撰

崇祿大夫 前判敦寧院事 海平 尹用求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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