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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석(柳麟錫, 1842~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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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회 의암제례(2017)
상세정보

류인석(柳麟錫, 1842~1915)8)

의병장 류인석은 1915129일에 74세로 중국 요녕성 관전현 방취구에서 순국하여 관전현 난천자 평정산에 안장하였다가 1935412일에 문인과 제자들에 의해 현재의 자리인 남면 가정리로 이장하였다. 1977111차 묘역 정비사업을 한 이후 꾸준히 주변 경관을 정비하면서 2004년 의암 류인석 유적지로 준공되어 현재와 같이 정비되었다. 묘역의 입구에는 의병기념관에 사용하던 사무소를 충의문 밖으로 2017년 신축하였다. 충의문을 지나 묘역으로 들어가면 남쪽으로 의병기념관이 있고 북쪽으로는 의암 선생이 강조한 관일약의 애국·애도·애신·애인 비문이 탐방로 양쪽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다음으로 선생의 생애를 적은 년보벽이 있다. 서쪽으로 들어가면 선생의 흉상이 조성되었으며 뒤로 관일정과 연못인 충효지가 있다. 북쪽으로 선생의 시를 적은 시문벽이 있고 서쪽으로 계단을 오르면 의열문이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의열사가 있는데 내부에 선생의 전신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남쪽 문을 나서면 선생의 묘소를 오르는 계단이 있고 이를 오르면 묘역이다.

묘역은 주변을 곡장으로 감싸 안고 봉분은 병풍석으로 돌렸다. 그 앞에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고 남쪽으로 묘표만이 있다. 묘비는 지붕돌이 없는 묘갈인데 비에는 유명조선의암유선생지묘/배유인여흥민씨부좌/배유인경주정씨부좌(有明朝鮮毅菴柳先生之墓/配孺人驪興閔氏祔左/配孺人慶州鄭氏祔左)라 새겨 놓았다.

 

관일약 비

관일약은 류인석이 표방한 4가지의 덕목을 비문에 새긴 것으로 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애국(愛國)

애국심은 관일약의 첫 번째 실천강목이다.

의암선생은 1909년 음력 7월 망명지 러시아 연해주에서 국권을 회복하고 전통문화를 보존하여 민족을 지키고 인류를 구제하기 위하여 국민이 한마음으로 결속하는 관일약(貫一約)을 제시하셨다.

애도(愛道)

애도심은 관일약의 두 번째 실천강목이다.

전국민의 의식을 국권회복의 이념으로 관일약하고 나아가 도맥(道脈·도의)을 보존하기 위하여 애국심·애도심·애신심·애인심을 실천강목으로 세워 다 함께 협심언약하는 관일약을 제정하였다.

애신(愛身)

애신심은 관일약의 세 번째 실천강목이다.

나라가 망하고 도의가 멸하여 신체가 훼손되고 인종이 진멸(盡滅)하는 긴박한 처지에서 우선 보신(保身보도(保道)하고 국권회복을 기하며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모두가 일심단합하는 관일약을 시행하였다.

애인(愛人)

애인심은 관일약의 네 번째 실천강목이다.

상실한 국권을 되칮고 인류를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온 겨레가 사애(四愛)를 실천하는 동시에 대동단결하는 관일약을 장기적인 의병항쟁과 연계하여 발전시켰다.

 

의암류인석 선생 어록비

 

십삼도의군도총재·성명회 회장

의암 류인석 선생 어록비

우리 대한의 인민(人民)된 자는 인민의 책임을 다하고 인민의 역량을 다 바쳐야 마땅합니다. 전국 인민은 인민의 단체聲明會를 조직하여 민의(民意)를 결정하고 이로부터 어떤 방법과 수단을 쓰더라도 대한인민의 지위를 결코 잃지 않고 일본과 싸워서 기필코 대한의 국권을 회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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