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문화
사이트 내 전체검색

봉의산성(鳳儀山城)

$ar_it[$k]$ar_it[$k]$ar_it[$k]$ar_it[$k]$ar_it[$k]$ar_it[$k]$ar_it[$k]$ar_it[$k]$ar_it[$k]
봉의산 순의비
상세정보

봉의산성(鳳儀山城)2)

봉의산성은 춘천시 중심부에 위치한 봉의산의 8부 능선에 쌓은 산성이다. 봉의산은 해발 약 300m 정도이다. 북쪽으로는 급경사를 이루면서 소양강과 접하고 서쪽은 산록이 끝나면서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수하는 북한강의 동쪽면과 연결되고 있다. 남쪽으로는 비교적 완경사이기는 하지만 공격을 시도하기에는 어려운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동쪽도 북쪽과 같이 가파른 경사지로 형성되어 있어서 쉽게 공격로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경사가 급하다.

산성이 남아 있는 지역을 보면 봉의산 전체를 쌓지 않고 적의 주요 공격로이거나 완경사지역을 쌓되 급경사 지역도 쌓은 지점이 있다. 현재 서쪽인 충원사에서 남쪽으로 돌아오면 산성이 굽는 지점에 3개의 건물지가 발굴되었는데 각기 12, 16, 6칸으로 확인되었다. 유물로 보면 대체로 13세기 초 거란의 침입과 13세기 중반 몽골의 침입으로 건물지가 불에 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1253년에 몽골의 침입으로 조효립과 박천기를 포함하여 춘천 주민이 대부분이 전투를 벌이다 전사하므로 이 시기에 봉의산성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2,463척이고 높이가 10척이라 하였고, 『대동지지에 의하면 북쪽 1리에 있으며 돌로 쌓았고 둘레가 2,463척이고 높이는 10척이며 폐성이라고 하여 조선후기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춘천에는 읍성(邑城)이 기록이나 유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읍성은 만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 봉의산성이 읍성의 기능을 대신했을 것으로 보인다

 

도청 뒤쪽으로 개설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봉의산 순의비가 건립되어 있는데 이는 고려시대 몽골의 5차 침입으로 춘천 주민이 큰 피해를 본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건립된 비이다. 소양제를 시작하기 전날 이 곳에서 당시에 전사한 원혼들을 위로하는 제례를 지내오고 있다. 이에 새겨진 안내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춘천의 진산인 봉의산은 이 고장과 영고(榮枯)를 함께 한 우리들의 표상으로 그 갈피마다에는 역사의 자취가 서려 있다. 고려 고종(高宗) 40(1253)에 몽고군이 춘천에 침입하였을 때에는 이 고장의 관민이 봉의산성에서 몽고군과 대치(對峙)하여 줄기찬 항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가 적에게 미치지 못한데다가 식수(食水)마저 끊겨 우마(牛馬)의 피로 해갈(解渴)을 하면서 나라를 지키려는 굳은 의기로 굽힐 줄 모르는 항거(抗拒)를 하였으나 힘이 다하여 산성이 적에게 함락되자 참전하였던 관민이 이 산성에 피를 뿌리고 전사하였다. 끝까지 생존하였던 관민은 적에게 굴하여 욕되게 사느니 보다 깨끗이 대의(大義)에 순()하겠다고 가족과 함께 자결하였던 곳이 바로 이곳 봉의산성이다. 나라를 지키려다 뿌린 선열의 숭고한 피가 스며있는 산성은 허물어진 채 오늘까지 그 잔영(殘影)이 전하고 있으나 대의에 순()한 이름 모를 수많은 선열의 절의(節義)는 세월 속에 잊혀져 가고 있기에 여기 이 분들의 고혼(孤魂)을 달래고 길이 후세에 기리려고 이 비를 세운다.

198362

춘천시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