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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암집(毅菴集), 소의신편(昭義新編)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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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胤征)에서 희화(羲和)가 그 직분을 버리고 그 고을을 술로 황폐시키자 윤후(胤侯)가 왕명을 받들고 가서 정벌하였다.” 고 하였는데, 채씨(蔡氏)는 전()에서 희화는 예(羿)에 무리로서 악행을 같이 하며 서로 도왔다. 그러므로 윤후가 왕명을 받들고 가서 그를 정벌하여 예의 날개를 자른 것이다. 그러므로 중강(仲康)의 세대가 끝낼 때까지 예는 일어나지 못했다.” 고 하였다. 공자가 그래서 그 글을 기록한 것이다. 이것을 안다면 국가의 도적의 당여를 어찌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버려둘 수 있겠는가!

 

춘추(春秋)』에서는 제후(齊侯)는 채()를 침략했다가, 채가 무너지자 드디어 초()를 쳤다.” 고 하였다. 좌씨(左氏)는 전()에서 채는 북행(北杏)에서 한 번 중국과 회맹한 뒤로부터 여러 희()씨를 버리고 초나라 편에 섰다. 그러므로 제가 초를 쳤는데 일에 앞서 채를 침략하였다. 채를 무너뜨린 것은 먼저 초의 당여를 벤 것이다.” 라고 하였다. 주자는 제의 환공(桓公)은 제후의 맹주로서 이적을 물리치고 주()나라 왕실을 높인 자이다.” 라고 하였다. 이는 공자가 중화를 높이고 이적을 물리치는 것을 천하의 큰 바름으로 삼아 그것을 만세에 알린 것이다. 또한 그것으로 이적을 마땅히 먼저 다스려야 함을 보였다.

논어』에서는 관중(管仲)은 환공(桓公)을 도와 제후들을 제패하고 천하를 한 번 바르게 하였다. 백성들은 지금까지도 그 혜택을 입고 있다. 관중이 아니었다면 나는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주자는 『집주』에서 주나라 왕실을 높이고 이적을 물리치는 일은 모두 천하를 바르게 하는 길이다.” 라고 하였데, 그 소()에서 주자는 이 때를 당하여 초의 세력은 더욱 두려울 만하였다. 다스림이 조금 늦었다면 중국은 모두 이적이 되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후재(厚齋) 풍씨(馮氏)유정부(劉定夫)는 우()의 공로를 칭송하여 우가 아니었다면 나는 거의 물고기가 되었을 것이다. 나와 그대가 면류관을 쓰고 법복을 입고 백성을 다스리고 제후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은 우의 힘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니, 반드시 여기에까지 미루어 본 뒤에야 우의 큰 공로를 알 수 있다.” 고 하였다. 공자는 관중의 인()을 칭송하여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민다는 일에까지 미쳤으니 관중의 공로가 크다. 근자에 사우(師友)들이 목숨을 버리며 노력을 다했으니, 화하를 높이고 이적을 물리친 공로가 어찌 관중의 공로뿐이겠는가!

 

서명(西銘)에서는 ()을 돕는 자는 재주가 없다고양씨(高陽氏)는 재주가 없는 자식 여덟 명을 두었는데, 대대로 그의 악을 도왔다. 고 하였다. 무릇 지금은 의병에게 죽임을 당한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는 경우가 있으니 모두 이와 같은 무리이다. 도적에게 편든 이를 위하여 원수를 갚고자 하는 자가 홀로 도적의 무리가 아니겠는가? 효도하지 않고 충성하지 않아 하늘이 돕지 않음이 또한 심하도다.

 

맹자』에서는,

양주(楊朱묵적(墨翟)의 말이 천하에 가득하다. 천하의 말은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 양씨는 나를 위하니 임금이 없고, 묵씨는 다 사랑하니 부모가 없다. 아버지도 없고 임금도 없으니 이는 금수이다. 양묵의 도가 그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못한다. 이는 간사한 말이 백성을 속이고 인의를 막는 것이다. 인의가 막히면 짐승을 이끌고 사람을 잡아먹게 된다. 사람이 장차 서로 잡아먹으리니, 나는 이것을 두려워하여 옛 성인의 도를 보호하고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며 거짓말을 내쳐 간사한 말이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 마음에서 일어나서 그 일을 해치고 그 일에서 일어나서 그 정치를 해친다. 성인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나의 말을 바꾸지 못 할 것이다. 옛날에 우()가 홍수를 누르자 천하가 태평해졌고, 주공(周公)이 이적을 아우르고 맹수를 물리치자 백성들이 편안해졌으며, 공자가 『춘추』를 이루자 난신적자가 두려워하였다. 나 또한 인심을 바르게 하고 간사한 말을 그치게 하며 편벽된 행동을 물리치고 거짓말을 내쳐서 세 성인을 계승하고자 하는 자이다. 능히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

라고 하였다. 주자는 『집주』에서 간사한 말이 제멋대로 흘러 사람의 심술(心術)을 무너뜨림이 홍수와 맹수의 재앙보다 심하고, 이적과 찬탈하고 시해하는 앙화보다 참혹하다하였다.

간사한 말은 정도를 해치므로 사람마다 그런 말을 하는 이를 잡아 공격할 수 있으니, 성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치 춘추의 법에 난신적자는 사람마다 잡아 죽일 수 있으니 재판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같다. 성인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법을 세운 의도가 절실하기가 이와 같다. 만약 이러한 의도로 미루어보면 공격하고 토벌하지 못하면서 또 공격하고 토벌할 필요가 없다는 설을 주장하는 이는 간사하고 편벽된 무리와 난신적자의 도당임을 알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이 글에 대한 소()에서 주자는 나가서 간사하면 들어와서는 바른 이와 나가서 바르면 들어와서는 간사한 이 두 사람 사이에는 대개 터럭도 용납되지 않는다. 비록 도를 아직 알지는 못하더라도 능히 말로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는 자는 이미 심술이 정도를 향한 사람이다. 성인의 무리라고 그를 허여하는 까닭은 『춘추』에서 도적을 토벌하는 의도와 같다.” 고 하였다.

만약 양주와 묵적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한다면 곧 이는 성인의 무리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도적을 쫓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만약에 도적을 잡아야 하고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면 곧 이는 주인 쪽의 사람이다. 만약 도적을 또한 용서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는 곧 도적을 불러들이는 무리이다.” 라고 하였다. 난신적자를 토벌하지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토벌하지 말라고 말하는 자는 흉역의 무리이다. 양주와 묵적을 물리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물리치지 말라고 말하는 자는 금수의 무리이다.” 라고 하였다. 성현이 엄격하게 말함이 이와 같으니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지금 서양과 왜의 여러 추악한 이들은 이적이 추락하여 금수가 되고, 음란과 사악이 지극하여 도깨비가 된 자들이다. 홍집(弘集)과 길준(吉濬) 등은 그들과 더불어 결합하여 세력을 끼고 무리를 모아 국모를 시해하고 임금을 협박하여 달게 금수와 도깨비 중에서도 더욱 심한 자가 되었으며, 훼복(毁服)과 삭발(削髮)을 강제로 행하여 수천 년 어렵게 겨우 보존해온 성현의 도의와 중화의 제도를 싹 쓸어버렸다. 이러한 때에 군대를 일으켜 역적을 토벌하고 원수인 오랑캐를 토벌하기를 고심혈성으로 하였다. 그 충의와 공렬의 위대함은 성인의 무리에 그치지 않으니 주인 쪽의 사람이다.

세상에는 일종의 흉역한 무리가 있으니, 거리낌 없이 의병이 정당하지 못 하다고 말하며 비난과 훼방을 일삼는다. 비난과 훼방을 일삼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도적의 무리를 돕는다. 충의한 사람들을 해치려 꾀하는 자들은 그들로 하여금 제멋대로 행동하게 하고 있으니, 나는 국가의 걸음과 세상의 도리가 장차 어느 때에나 태평시대를 회복할 기미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논어』에서는 곧음으로 원한을 갚고 덕으로 덕에 보답하라고 하였다. 주자는 『집전』에서 그 원망하는 바의 사람에 대하여 애증과 취사를 한결같이 지극히 공변되게 하여 사사로움이 없어야 이른바 곧음[]’이다. 그 덕택을 입은 바의 사람에 대하여는 반드시 덕으로 그에게 보답해야 하며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 글의 소()에서 덕으로 원한을 갚아도 또한 충실하고도 두텁다고 할 수 있는데 공자가 이것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묻자, 주자는

이는 또한 사사로운 의도가 한 바이니, 천리의 바름이 아니다. 대저 원한이나 덕택은 사람의 심정에 잊지 못할 바이지마는 그것을 보답하는 데에는 각각 마땅한 바가 있는 것 또한 천리의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덕에는 크고 작음이 있어도 모두 마땅히 갚아야 하는 바이지마는 원한의 경우에는 공사(公私)와 곡직(曲直)의 같지 않음이 있다. 그러므로 성인이 사람을 가르칠 때에는 곧음으로 원한을 갚고 덕으로 덕을 갚게 하였다. 곧음으로써 한다는 것은 사사로움으로써 공평을 해치지 않고 굽음으로써 곧음을 이기지 않는 것이다. 보답해야 하면 보답하고 보답할 필요가 없으면 그만두어, 한결같이 천리의 당연함을 보고 자기의 사사로운 뜻을 더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비록 원한을 갚는다고 말할지라도 어찌 공평과 충후가 됨에 해롭겠는가! 그러나 성인이 끝내 사람으로 하여금 원한을 잊고 그 보복(報復)이란 이름을 없어지게 하지 않은 것은 또한 저 임금의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없음을 보여 저 충신과 효자의 마음을 펴준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의 말과 같이 한다면 원한을 갚는 것이 박하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거짓으로 하여 보복이라는 이름을 피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원망하는 바에 대하여 도리어 덕으로 갚는 것은 충후한 것 같으나 덕택을 입은 바에 대하여는 또한 장차 무엇으로 보답하겠는가? 덕의 위에는 다시 더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만약 다만 이른바 원한을 갚는다는 것과 같이 할 뿐이다. 그렇다면 이는 덕에 보답하는 방법이 겨우 평범한 정도이지만 원한을 갚는 방법은 도리어 덕을 두텁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비록 임금의 원수라 하더라도 또한 장차 잊는 때가 있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도리어 매우 인정을 거스르고 천리를 심하게 벗어남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였다.

임금의 원수에는 또한 원수를 갚아야 하는 경우와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경우의 구별이 있는가?”라고 하자, “『주례(周禮)』에 있는데, ‘사람을 죽였으나 의로운 자에 대하여는 원수를 갚지 못하게 하였으니 원수를 갚으면 그를 죽인다[殺人而義者 令無仇 仇之則死]’라고 하였다. 이는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경우이다. 『춘추전(春秋傳)』에서 아버지의 죄가 죽임을 당하기에 마땅하지 않았다면 아들은 원수를 갚아도 된다[父不受誅 子復仇 可也]’고 하였다. 이는 원수를 갚아야 하는 경우이다. 원수를 갚아야 하면 갚고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면 그친다. 이는 곧 이른바 곧음이다. 주공(周公)의 법과 공자의 말은 부절을 합한 것 같으니, 여기에서 성인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고 말하였다.

이것은 임금의 원수에는 마땅히 원수를 갚아야 하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곧음으로 삼는 경우가 있고,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므로 원수를 갚지 않는 것으로 곧음을 삼는 경우가 있음을 보여준다. 오호라. 무릇 지금의 사람은 마땅히 원수를 갚아야 하는 국가의 도적과 원수인 오랑캐를 쉽게 잊고서 충의(忠義)를 배양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도적의 무리를 죽였으므로 원수로 여기지 않아야 하는 사람에 대하여 도리어 복수해야 할 원수로 여기고 충의한 사람들을 모해하는 일을 능사로 간주하고 있다. 이것은 난적과 이적과 간사한 무리들에게 망극한 재앙을 받았으면서도 그들에게 곧음으로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며, 몸소 섬긴 임금과 화하의 대도와 선왕(先王)과 선성(先聖)에게 망극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그분들에게 덕으로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니, 어찌 매우 인정을 거스르고 천리를 어기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또한 서로 빠져 망할 뿐이다. 세상의 군자는 어찌하여 이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서 반성할 것을 생각하지 않는가?

 

맹자』에서는 왕자의 자취가 사라지고 난 뒤에 시가 없어졌고, 시가 없어지고 난 뒤에 『춘추(春秋)』가 지어졌다. ()의 『()』과 초()의 『도올(檮杌)』과 노()의 『춘추』는 같은 것이다. 그 일은 제환공과 진문공의 일이고, 그 문장은 사관의 글이다. 공자는 그 의리는 내가 몰래 취하였다.’”고 하였다. 주자는 『집주』에서 왕자의 자취가 사라졌다는 말은 주나라의 평왕이 도읍을 동쪽으로 옮긴 뒤부터는 정교와 호령이 천하에 미치지 못했음을 말한다. 시가 사라졌다는 말은 서리(黍離)가 내려가 국풍(國風)이 되었고 아()가 사라졌음을 말한다.” 고 하였다. 윤씨(尹氏)공자가 춘추를 지었다고 말한 것은 또한 사관의 글로 당시의 일을 실은 것이고, 그 의리는 천하의 사정(邪正)을 정하여 백왕(百王)의 대법(大法)을 삼은 것이다.’고 하였다.” 고 하였다.

공자가 한 일은 『춘추』를 산삭한 일보다 큰 것이 없으며, 『춘추』로 사정(邪正)을 정하여 백왕에 본보기를 보인 것은 갖추지 못한 바가 없으며, 그 중에서 중요한 것을 든다면 임금을 호위하고 도적을 토벌하며 중화를 높이고 이적을 물리친 것보다 큰 것이 있지 않다.

오호라. 지금 서양과 왜의 이적은 간사함이 가장 추한 자들이며 도적인 홍집과 길준 등은 그들과 결합하여 세력을 끼고 무리를 모아 국모를 시해하고 임금을 협박하여 억지로 법복을 훼손하고 상투를 자르는 일을 저질러서 성도(聖道)와 화하의 제도로 하여금 의지할 곳이 없게 하였다. 그들은 춘추의 법과 의리에 있어서 사람마다 잡아 죽일 수 있어서 재판관이 필요 없는데에 해당함을 다시 어찌 의심하겠는가? 영력 다섯 번째 신축(辛丑:1901)827일 경신(庚申)에 완산 이직신 씀.

 

討賊復讐尊華攘夷閑聖放邪明證大槪

論語曰 孔子沐浴而朝告於哀公曰 陳恒弑其君 齊簡公名壬 請討之 朱子集註曰 臣弑其君 人倫之大變 天理所不容 人人得而誅之 况鄰國乎 在人人皆可得而誅之 在鄰國 尤當討之 况在本國臣民乎

朱子序戊午讜議曰 君臣父子之大倫 天之經地之義 而所謂民彝也 故臣之於君 子之於父 生則敬養之 沒則哀送之 所以致其忠孝之誠者 無所不用其極 而非虛加之也 以爲不如是 則無以盡乎吾心云爾 然則其有君父 不幸而有於橫逆之故 則夫爲臣子者 所以痛憤怨疾 而求爲之 必報其讐者 其志豈有窮哉 故記禮者曰 君父之讐 不與共戴天 寢苫枕干 不與共天下也 而爲之說者曰 復讐者 可盡五世 則又以明夫雖不當其臣子之身 而苟未及五世之外 則猶在乎 必報之域也 雖然此特庶民之事耳 若夫有天下者 承萬世無疆之統 則亦有萬世必報之讐 非若庶民五世 則自高祖以至玄孫 親盡服窮 而遂已也 國歌靖康之禍 二帝北狩而不還 臣子之所痛憤怨質 雖萬世 而必報其讎者 蓋有在矣 苟知此義 則近日所遭國賊讐夷 豈可一日 忘于懷而不腐心切齒乎

胤征曰 羲和廢厥職 酒荒于厥邑 胤侯承王命徂征 蔡氏傳曰 羲和黨於羿 同惡相濟 故胤侯承王命 徃征之以翦羿羽翼 故終仲康之世 羿不得以浧 夫子所以錄其書 知此則國賊之黨與 豈可任其恣橫乎

春秋曰 諸侯侵蔡 蔡潰遂伐楚 左氏傳曰 蔡自北杏 一與中國之會 而棄諸姬 黨楚國 故齊伐楚 而先事侵蔡 潰蔡者 先披楚之黨也 朱子曰 齊桓公諸侯盟主 攘夷狄以尊周室者也 此孔子以尊華攘夷者 作天下之大正 而以之詔于萬世 亦以示黨夷狄之當先治也

論語曰 管仲相桓公 覇諸侯 一匡天下 民到于今 受其賜 微管仲 吾其被髮左袵矣 朱子集註曰 尊周室攘夷狄 皆所以正天下也 䟽朱子曰 當是之時 楚之勢駸可畏 治之少緩 則中國皆爲夷狄 厚濟馮氏曰 劉定夫稱禹之功曰 微禹 吾其魚乎 吾與子弁冕端委 以治民臨諸侯 禹之力也 必推至此 然後見禹之有大功 夫子稱仲之仁 至於被髮左袵 則仲之功大矣 近日師友 捨性命致力 尊攘之功 奚啻仲之功也哉

西銘曰 濟惡者不才 高陽氏有不才子八人 世濟其惡 凡今之有爲爲義旅所誅者 欲報仇 皆此類也 欲爲黨賊報仇者 獨非賊黨乎 其爲不孝不忠 不天抑又甚矣

孟子曰 楊朱墨翟之言 盈天下 天下之言 不歸楊則歸墨 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 楊墨之道不息 孔子之道不著 是邪說 誣民克塞仁義也 仁義克塞 則率獸食人 人將相食 吾爲此懼 閑先聖之道 距楊墨放淫辭 邪說者不得作 作於其心 害於其事 作於其事 害於其政 聖人復起 不易吾言矣 昔者 禹抑洪水而天下平 周公兼夷狄驅猛獸 而百姓 寧 孔子成春秋 而亂臣賊子懼 我亦欲正人心息邪說 距詖行放淫辭 以承三聖者 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 朱子集註曰 邪說橫流壞人心 術甚於洪水猛獸止災 慘於夷狄纂弑之禍 又曰 邪說害正 人人得而攻之 不必聖賢 如春秋之法 亂臣賊子 人人得而誅之 不必士師也 聖人救世 立法之意 其切如此 若以此意推之 則不能攻討 而又唱爲不必攻討之說者 其爲邪詖之徒 亂賊之黨 可知矣 䟽朱子曰 出邪則入正 出正則入邪 二者之間 蓋不容髮 雖未知道 而能言距楊墨者 已是心術向正之人 所以以聖人之徒許之 與春秋討賊之意同 又曰 纔說道要距楊墨 便是聖人之徒 如人逐賊 有人見之 若說道賊當捉當誅 這便是主人邊人 若說道賊也可恕 這便喚賊之黨 又曰 不討亂賊 而謂人勿討者 凶逆之黨也 不距楊墨 而謂人勿距者 禽獸之徒也 聖賢立言之嚴 至於如此 可不畏哉

當今洋倭羣醜 夷狄之降而爲禽獸 淫邪之極而爲鬼魅者也 弘集吉濬等 與之糾結 挾勢聚黨 弑國母脅君父 甘心要做禽獸鬼魅之尤者 而勒行毁服削髮 使屢千年艱難僅保之聖賢道義中華制度 掃地以盡 於此起軍旅 而以討逆賊伐讎夷 爲苦心血誠 其忠義功烈之大 不止於聖人之徒 主人邊人而已矣 世有一種凶逆之黨 不憚謂義旅謂不正當 而詆毁是事 不惟詆毁是事 而反助賊黨 謀害忠義者 使之恣橫 吾不知國步世道 將於何時 得見回泰之機耶

論語曰 以直報怨以德報德 朱子集註曰 於其所怨者 愛憎取舍 一於至公 而無私所謂直也 於其所德者 則必以德報之 不可忘也 䟽問以德報怨 亦可謂忠且厚矣 而夫子不之許 何哉 朱子曰 是亦私意所爲 非天理之正也 夫有怨有德 人情所不能忘 而所以報之 各有所當 亦天理之不能已也 顧德有大小 皆所當報 而怨則有公私曲直之不同 故聖人敎人 以直報怨 以德報德 以直云者 不以私害公 不以曲勝直 當報則報 不必報則止 一觀天理之當然 而不以己之私意加焉 是則雖曰報怨 而豈害其爲公平忠厚哉 然而聖人終不使人忘怨 而沒其報復之名者 亦以見夫君父之仇 有不得不報者 而伸夫忠臣孝子之心耳 若或人之言 則以報怨爲薄 而必矯焉 以避其名 故於其所怨 而反報之以德 若忠厚者 而於所德 又將何以報之 以德之上 無復可加 若但如所謂報怨者而已 則是所以報德者 僅適其平 而所以報怨者 反厚於德 且雖君父之仇 亦將有時而忘之也 是豈不反爲逆人情 悖天理之甚哉 曰君父之仇 亦有當報 不當報之別乎 曰周禮有之殺人而義者 令無仇 仇之則死 此不當報者也 春秋傳曰 父不受誅 子復仇 可也 此當報者也 當報而報 不當報而止 是卽所謂直也 周公之法 孔子之言 若合符節 於此 可以見聖人之心矣 此見君父之讎 有當報 而以不可忘 爲直者 有不當報 而以不報 爲直者也 嗚呼 凡今之人 其於國賊讐夷所當報者 容易忘之 而不以培養忠義爲心 其於賊黨 見誅所不當報者 反以爲可復之仇 而以謀害忠義 看作能事 此則於亂賊夷狄淫邪 見罔極之禍 而不思所以報之以直 於身事國君華夏大道先王先聖 受罔極之恩 而不思所以報之以德 豈不爲逆人情 悖天理之甚乎 其亦淪胥而亡而已矣 世之君子 何以不思 爲此知懼 而有以反之哉

孟子曰 王者之迹熄 而詩亡 詩亡然後 春秋作 晉之乘楚之檮杌魯之春秋 一也 其事 則齊桓晉文 其文則史 孔子曰 其義則丘竊取之矣 朱子集註曰 王者之迹熄 謂平生東遷 而政敎號令 不及於天下也 詩亡 謂黍離降爲國風 而雅亡也 又曰 尹氏曰 言孔子作春秋 亦以史之文 載當時之事也 而其義 則定天下之邪正 爲百王之大法 孔子之事 莫大於春秋 而春秋之定邪正 法百王者 無所不具 而擧其所重 則莫有大於衛君討賊尊華攘夷 嗚呼 今之洋倭夷狄 淫邪之最醜者 而賊臣弘集吉濬等 與之糾結 挾勢聚黨 弑國母脅君父 勒行毁服削髮 使聖道華制 無地得寄 其在春秋法義 爲所人人得以誅之不必士師也 復何疑也 永曆五辛丑八月二十七日庚申 完山李直愼 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