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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암집(毅菴集), 소의신편(昭義新編)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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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중암 선생에게 올립니다 갑신(1884중에서

근래 서울 안에 박문국(博文局)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관사(官司)가 설립되었는데오로지 태서(泰西)의 사설(邪說)만을 간행함을 직무(職務)로 한다고 하며 개화를 자신의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이 재앙은 혹심(酷甚)하여 홍수보다 못하지 않으며 맹수가 곧 사람으로 하여금 통곡하게 합니다선생은 이러한 날에 이러한 역경을 만나셨으니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오늘날 선비는 다만 뒤집어 질 것을 생각하고 스스로 면려하여(思反而自勉)’ 다른 날에 양()이 회복하는 기초로 삼아야 함이 크게 요구될 뿐입니다근래에 가정(柯亭)을 왕복하며 몇 말씀을 얻어들었습니다. <성재 선생께서> “우리들은 마땅히 삼강(三綱)오상(五常:오륜)의 도()와 사자(四子:사서)육경(六經)의 학()으로 지키어 처음부터 끝까지 해야한다그 대목(大目)은 ()에 거하여 그 근본을 세우고 이치()를 궁구하여 그 앎에 이르고 힘써 행하여 그 실재(實在)를 밟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또 뜻을 세움(立志)잃어버린 본심을 거두어들임(收放心)덕성을 높임(尊德性)이 근본을 세우는 세 층계(層階)이다천지의 변화제왕의 정치성현의 교화는 지()에 이르는 세 영문(營門)이다자기의 사사로움을 내치고 제왕의 참마음을 받들며 선성(先聖)의 도를 지키고 음사(淫邪)를 내쫓으며 중화(中華)를 높이고 이적(夷狄)을 물리침을 힘써 행함이 세 갈래길(條路)이다이것이 바로 고금(古今)에 바뀌지 않는 바른 이치이니이것으로 서로 지킨다면 혹 이 도()를 만에 하나 끊기지 않고 이어나가서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다시 밝은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다만 도를 보위하는 기체(氣體보중(保重)하시기를 바랍니다삼가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上重庵先生 甲申

(전략近日京裏 設一官司 名曰博文局 專以刊行泰西邪說爲職 而以開化自任焉 此禍甚酷 不下於洪水猛獸 卽令人痛哭矣 先生此日遭此逆境 不是異事也 大要今日士子 只思反而自勉 以爲異日陽復之基而已 近於柯亭徃復 得聞數語曰 吾儕當以三綱五常之道 四子六經之學 守而終始焉 其大目 在居敬以立其本 窮理以致其知 力行以踐其實 又曰 立志收放心尊德性立本之三層階也 天地之化帝王之政聖賢之敎 致知之三營門也 黜己私奉帝衷閑先聖放淫邪尊中華攘夷狄 力行之三條路也 此是古今不易之正理 以此相守 或可保此道不絶 如縷之萬一也哉 先生以爲如何 更垂明誨焉 餘只祝氣體衛道保重 伏惟下鑑

 

6, ○ 박양직(朴養直)에게 주려고 함 경신(庚申:1920) 10

서로 이별한지 오래되어 이 사이에 피차가 큰 재난을 겪은 바는 말하지 않겠습니다대체로 우리가 지키는 바는 만 번 죽더라도 변할 수 없는 것으로 화() 네 선생께서 전수한 춘추대의(春秋大義존화양이(尊華攘夷토적복수(討賊復讐)’열 두자 뿐이니 다시 말할 것이 없습니다형과 나는 이미 이것으로 함께 하여 달리 하는 바가 없었으니『주역』의 이른바 먼저는 울부짖고 뒤에는 웃는다.[先號逃而後笑]’도 와 가다가 비를 만나면 길하다입니다. ‘먼저는 울부짖고 뒤에는 웃는다 뒤에는 웃는다.’는 말씀은『주역』계사상전에 보이고 가다가 비를 만나면 길하다는 말씀은『주역』 ()’괘의 상구(上九효사(爻辭)에 보입니다이 가르침을 완미(玩味)한다면 피차의 충곡(衷曲)의 실상(實狀)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백모(白某)가 이왕에 한 바의 득실은 이미 진부(陳腐)하게 되었습니다마음에 다시 말하고 싶지 않은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진실로 그 말년에 충절(忠節)로써 죽을 수 있다면 우리당[吾黨]을 빛냈고 의()로 때를 얻었다고 말하더라도 거짓되지 않을 것입니다이것을 서로 믿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나머지 지키는 바가 변함이 없고 증자(曾子)께서 바름을 얻고서 죽었던 방법대로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편지의 형식을 다 갖추지 못합니다.

擬與朴養直 庚申十月 日

相別許久 這間彼此所經浩劫不須長提 大抵吾儕所守 而萬死不變者 只是華重省毅四先生所傳授 春秋大義尊華攘夷討賊復讎 十二字而已矣 更無他說也 兄與我旣有此同 而無所異 則易所謂先號咷 而後笑 及所謂徃遇雨則吉 自有其日矣 先咷後笑之訓 見於易繫辭上傳 遇雨吉之訓 見於易睽之上九爻辭 玩味此訓 則彼此衷曲之實 不言而可知也 白某已徃所爲得失間 旣爲陳腐矣 心欲不復稱說 已久矣 若其末終 死以忠節 雖謂之光吾黨而得時義 不爲誣矣 以此相信 未知如何 餘惟祝無變所守 而用作曾子得正而斃之法 不備書儀

 

7, ○ 유원여(柳遠汝)에게 답함 신해(辛亥:19116월 8일 중에서

(전략대체로 우리는 그 천신만고(千辛萬苦)를 돌보지 않고 요동의 나그네로 왔으니 어찌 다름이 있어서 이겠습니까다만 요순(堯舜이래의 선왕(先王)의 법복(法服)과 공주(孔朱이래의 천성(千聖)의 도학(道學)을 도탑게 지키어서 다른 날 천도(天道)가 회복(回復)하여 이수(夷獸)가 물러나서 예의(禮義)가 다시 진작되는 기회를 기다리고자 할 뿐입니다이것으로 지탱하여 간다면 살아서는 참으로 좋을 것이고 죽어서도 또한 꺼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우리 화··(華重省세 분 선사가 덕()을 쌓고 인()을 포개며 도()를 밝히고 의()를 바르게 한 나머지 그 경광(耿光)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반드시 천지신명(天地神明)의 돌보심과 도우심이 있었으며 만고(萬古성신(聖神)과 하늘에 있는 밝은 영령이 때때로 몰래 내려와 도와주심에 힘입었기 때문입니다이것이 어찌 우리가 믿는 바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관전현(寬甸縣내에도 또한 이러한 일이 있었습니까새는 배에 함께 타고 있는 형세이니 피차(彼此다를 것이 없습니다이에 우러러 반드시 죽음으로 지키면서도 도()를 잘해야 한다[守死善道]’는 네 글자가 오늘을 헤쳐나가는 한 마디의 비결(秘訣)임을 말씀드립니다.

答柳遠汝 辛亥閏六月八日

(전략大抵 吾儕不顧其千辛萬苦 而來客遼東 豈有他哉 只願敦守唐虞以來 先王之法服 孔朱以來 千聖之道學 以待異日天道好回夷獸退 而禮義復振之機會而已矣 以此撑柱 將去得生固好 死亦無妨矣 然我華重省三先師 積德累仁明道正義之餘 得資其耿光者 必有頼於天地神明之眷佑 萬古聖神 在天之明靈 時降陰隲矣 此豈非吾儕之有所恃 而不懼處耶 寬甸縣內 亦有此事否 同處漏船之勢 恐無彼此之異 故玆仰布望須以守死善道四字 做當日捱過之單訣也

 

7, ○ 유원여(柳遠汝)에게 줌 정사(丁巳:1917) 3월 5일 중에서

(전략나라가 일본놈에게 병탄(倂呑)되어 직신(直愼)과 입헌은 의리상 원수 오랑캐의 호적에 편입하여 오랑캐에게 부림 받을 수 없기에자손을 이끌고 동지와 함께 요동의 나그네가 되어서 공(孔朱)의 정학(正學)과 당우(唐虞)의 법복(法服)을 보존(保存)하는 일을 하여서 맹세코 중화(中華)를 무너뜨리는[夏靡죄인(罪人)이 됨을 면하고자 하였습니다이에 사위(四位)의 영정(影幀)을 예전처럼 편안히 제사[餟享]함이 마땅하겠으나 시일(時日)을 기약할 수도 없고 분향(焚香)하며 잔을 올리는 일을 오래도록 빠뜨려 매우 편안하지 않습니다또한 직신은 살아갈 날이 많지 않기에 주부자(朱夫子)가 날마다 가묘(家廟)에 절하고 물러나 반드시 성현(聖賢)에 절하는 유규(遺規)를 본받고자일전(日前)에 가아(家兒배인(培仁)을 보내어 사위(四位)의 영정(影幀)을 직신(直愼)의 소거(所居)에 옮겨 봉안(奉安)하여 놓고 날마다 전배(展拜)하고 삭망(朔望)에 분향을 하고 봄가을에 잔을 올려서 자양영당(紫陽影堂)에서 하던 때처럼 하고 싶다고 청하였습니다곧 바로 입헌이 즐거이 따라서 허락하여 주셨으니 어떤 것이 이처럼 위로될 수 있겠습니까이에 벗 치서(致瑞송헌창(宋憲昌)을 내세워서 보내니 영정을 봉안할 수 있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與柳遠汝 丁巳三月五日

(전략及見國爲日醜所呑 則直愼與立軒 義不可作讎夷編戶僕役 故挈子孫同友 生作遼東客 有事于守孔朱正學 保唐虞法服 以之誓將免爲夏靡之罪人焉 於是 則四位影幀 依舊還安餟享在所當然 而有非時日可期 則久闕焚香酌獻 旣甚未安 且直愼 餘年不多 而竊欲法朱夫子日拜家廟退 必拜聖之遺規 故日前送家兒培人 仰請四位影幀 移奉于直愼所居 而逐日展拜 朔望焚香 春秋酌獻 得如奉紫陽影堂時事也 則立軒樂從而垂盛 許 何慰如之 玆起送宋友憲昌致瑞 俾得奉安影幀 是望耳

 

10, ○ 계용(季用우종하(禹鍾夏)에게 답함 기해(己亥:1899) 5월 17

세상의 변란이 망극하여 도()를 위하여 죽으려고 마음먹는 것은 우리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준적(準的)입니다이런 까닭으로 뜻이 맞는 자와 시세(時勢)의 험이(險夷)나 산천(山川)의 조격(阻隔)이나 기력(氣力)의 강약(强弱)을 계산하지 않고 함께 시종 목적을 같이 하고 싶습니다이것이 어찌 천도(天道)를 체득한 양()이 없을 수 없어서천지(天地)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 생민(生民)을 위하여 도를 세우며위로는 선왕(先王)과 선정(先正)께서 배양(培養)해주신 두터운 은택을 등지지 않으며 아래로는 자기(自己)가 평일(平日)에 성인(聖人)에 뜻을 두고 현인(賢人)에 뜻을 두었던 바른 견해를 잃지 않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략)

答禹季用 鍾夏 己亥五月十七日

世變罔極 殉道爲心 吾儕之所共準的也 是以臭味深契不計時勢之險夷 山川之阻隔 氣力之强弱 而思與之終始同歸 此豈非體天道之陽 不可無 而爲天地立心爲生民立道 上不負先王先正培養之厚澤 下不失自己平日志聖志賢之正見耶 (하략)

 

11, ○ 목여(穆汝유흥문(柳興文)에게 답함 을사(乙巳:1905) 7월 23

세상이 변해 가는 것이 갈수록 더욱 끝이 없어 통곡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우리 조선(朝鮮)은 황명(皇明)이 옥사(屋社)한 이래로 이 백여 년을 홀로『주례(周禮)』를 관장하며 은()나라 태사(太史)의 홍범(洪範)을 보존하여 지켜서 온전히 체득하고 크게 사용한 나라입니다하나의 하늘 아래와 구우(九宇)의 안에 우뚝 존재하였으니 마치 양의(兩儀)가 섞여 있을 때 하나의 별이 홀로 빛나는 것과 같았고큰물이 콸콸 흘러 갈 때 고산(孤山)이 잠기지 않는 것과 같았습니다희황(羲皇) 이래로 중화(中華성현이 전해 내려온 도맥(道脈)이 여기에 있어서 이 나라가 존재하면 더불어 존재하고 이 나라가 없어지면 더불어 없어집니다지금 이적(夷狄)금수(禽獸)들이 삼키고 씹어서 다시 남을 땅이 없으니 아아누가 화()를 일으키는 빌미를 생겨나게 해서 이와 같은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였단 말입니까척화(斥和)를 주장하는 여러 어진 이에게 맡길 줄 모르고 강화(講和)를 주장하는 여러 아첨꾼에게 좋아라 맡긴 결과로 여기에 이르렀으니또한 세상 사람들의 경계가 될 만한데도 오히려 깨우칠 줄 모르고날마다 하루씩 심해져도 그칠 줄 모릅니다아득하고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이 무슨 까닭이란 말입니까?(하략)

 

答柳穆汝 興文 乙巳七月二十三日

世變去益罔涯無任 慟哭慟哭 我朝鮮 是皇明屋社以後 二百餘年 獨掌周禮 而保守殷太師洪範全體大用之國也 一天之下 九宇之內 巋然而存焉 有如兩儀混濛 一星孤明 洪流澒洞 孤山不沒 羲王以來 中華聖賢道脉相傳者 在此 而國存與存 國亡與亡矣 今爲夷狄禽獸之所呑嚙 無復餘地 嗚呼 誰生厲階至於此極耶 不知任斥和諸賢 而樂任講和羣壬之效 乃至於此 亦足以爲世人戒也 而猶不知悟 日甚一日而不知止焉 悠悠蒼天 玆曷故耶 (하략)

 

11, ○ 유목여(柳穆汝)에게 답함 을사(乙巳:1905) 10월 13

요즈음의 상황은 하늘이 하는 것이니 어찌하겠습니까다만 우리의 도리를 지키고자 할 따름입니다이미 공자와 주자의 무리가 되었으니다만 공자와 주자의 도리를 지키고자 할 뿐입니다이미 요순(堯舜)의 남은 백성이 되었으니다만 요순의 관상(冠裳)을 지키고자 할 뿐입니다이와 같이 지탱해 가면서 순순히 하늘의 처치가 어떻든 받아들이고자 합니다살지 죽을 지는 반드시 미리 정해져 있어 바꿀 수가 없습니다이것이 어찌 사람이 교묘하게 옮길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이말로써 하늘을 믿고 스스로를 위로하는[信天自寬]을 화두(話頭)로 삼아양류(陽類)들의 마음과 정신을 위로하여 안정시키는 것이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

答柳穆汝 乙巳十月十三日

時象天實爲之謂之何哉 只得守在我道理而已 旣爲孔朱之徒矣 只得守孔朱之道理矣 旣爲堯舜之遺民矣 只得守堯舜之冠裳矣 如是撑柱 以去順受天翁之處置如何 殺之活之 必有前定之不可易者也 是豈容人巧之所能遷就也哉 以此 作信天自寬之話頭 而慰安陽類輩之心神 未知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