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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암집(毅菴集), 소의신편(昭義新編)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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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사(1929) 동지(冬至)에 읊조리다 己巳 冬至吟

前陽盡處後陽生 앞의 양()이 다한 곳에 다시 양()이 생겨나고,

大道乾乾常接續 대도(大道)는 쉼 없이 항상 이어져갈 뿐이라.

成者去焉盛者來 차고 나면 떠나가고 한창인 것이 들어옴은,

觀於造化方通徹 천지 조화(造化)를 꿰뚫어 보는 이치이다.

5, 유생이 대궐문에 엎드려 서양을 배척하는 소를 올리다

숭정(崇禎) 기원(紀元) 후 다섯 번째 병자(丙子) 정월 사흘 내내 소()를 받들었으나 임금에게 아뢰지 못하였다. (: 중암과 성재-역주)의 문도(門徒) 마흔 여덟 명이었다.

 

경기도충청도강원도 유학(幼學) () 홍재구(洪在龜) 등이 진실로 황공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조아리어 삼가 임금님에게 절합니다. 만물의 바탕이시며 흥성(興盛)하는 운으로 극()을 여시어 윤상(倫常)을 도타이 하시는 주상전하에게 말합니다.

삼가 신등(臣等)은 민간의 천품(賤品)으로 공자(孔子)를 본받고 고인(古人)의 몸을 지키고 세상에 처하는 법을 대략이나마 들었습니다. 대개주역』간괘(艮卦)의 대상(大象:상사(象辭))군자는 생각하여 제 위치에서 벗어나지 아니한다(君子以思不出其位)’라고 하였으며, 『논어』에 그 지위에 있지 아니하면 그 정치를 도모하지 않는다(不在其位不謀其政)’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정확한 의의(意義)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시정(時政)의 득실(得失)과 세고(世故)의 오륭(汚隆)에 대해 일찍이 함부로 한 마디의 말도 내지 않았습니다. 여기 왜인(倭人)은 양적(洋賊)의 향도(嚮導)가 되어 경내(境內)에 들이닥치어 힘으로 위협하여 약정을 맺고자 하나, 조정에서 의결한 계책은 다만 그들의 그림자만을 보고 그 모습을 살피지 않고 오직 화호(和好)함이 진실로 나라를 보존하는 계책이라 주장을 하니 진실로 방비의 엄함을 느슨하게 풀고 대문을 열어 적을 맞아들이려 함과 같습니다. 신등이 조석(朝夕) 사이에 예악(禮樂)이 더러운 땅에 빠져들고 인류(人類)가 금수(禽獸)로 변함을 보게 될 터라, 신등이 서로 놀라고 애통해 하며 한 숨을 쉬면서 횡거(橫渠) 장자(張子:장재(張載))가 『서명(西銘)』을 지어 건(:하늘)을 아버지라 부르고 곤(:)을 어머니라 부르니, 우리 임금은 부모의 종자(宗子:맏아들)이고 대신(大臣)은 종자의 가상(家相)이며 환()은 형제(兄弟)의 무고자(無告者)입니다. 이는 모두 한 집안의 천륜(天倫)이니, 그 집안에 낭패(狼狽)와 전복(顚覆)할까 근심하는 자가 있다면 또한 어찌 근심 없이 마음 씀을 잊어버리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국가의 존망(存亡)이 달려 있는 지경에는 주부자(朱夫子:주희)께서 비록 벼슬하지 않은 자라도 또한 말을 하는 의()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안연(顔淵)은 누항(陋巷)의 필부이었으나, 공자가 불행하게도 광인(匡人)에게 해를 만났다면 안자는 마땅히 위로는 천왕(天王)에게 고하여 복수하여 줄 것을 청함에 그치지 만은 않았을 것이라 주자는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왜인은 양이(洋夷)의 창귀(倀鬼)로 양적(洋賊)을 이끌어들임이 우리 경내(境內)에 속마음을 두고 있으니, 이는 맹자가 말한 짐승을 이끌고서 사람을 먹이는 것이어서 공자의 도가 소멸하여 다시 존속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공자가 칠척(七尺)의 몸으로 광인(匡人)에게 해를 만나자 그 문도(門徒)가 오히려 당연히 지위를 벗어나 임금에게 고하여 성토(聲討)하려고 생각하였는데, 하물며 공자의 만세(萬世)의 도가 양적(洋賊)에게 소멸됨을 만났으니 그 중()하기가 칠척의 몸과 같음에 그치지 않는다면, 공자의 문도(門徒)인 사람으로 어찌 차마 분통하여 원망하고 미워하며 눈을 크게 뜨고 용기를 내어 우리 임금에게 호소하지 않겠습니까! 이렇다면 이른바 몸이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함은 지위를 벗어나지 않고 죽는 법을 말함이니, 더욱 단단하게 지킬 수 없는 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좀벌레가 상을 갉아먹기 시작하여 곧고 바른 마음이 없어지는 참혹한 상황이어서 국가 존망(存亡)의 일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신등의 한결같은 견해의 단단함이 이와 같기에 자질구레한 힘을 헤아리지 않고서 서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울로 달려와 외람되이 대궐에 호소합니다. 삼가 성명(聖明:임금)에 애걸하오니 그 광망(狂妄)한 죄를 너그럽게 하시어 조금이나마 살펴 받아주시옵소서.

신등이 가만히 왜인의 정적(情迹:정황(情況))을 헤아려보니 앞과 뒤가 차이가 나서, 전일(前日)의 이웃 나라였던 왜와 구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웃 나라와는 화친(和親)할만 합니다. 오늘의 왜는 구적(仇賊)입니다. 구적(仇賊)과는 화친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그들이 구적이 됨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양적(洋賊)의 앞잡이 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들이 양적의 앞잡이가 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왜인과 양인(洋人)은 같은 마음으로 한 몸이 되어 중국에서 마음대로 행 한지 몇 년이 되어, 연전에 북자(北咨)가 이르러 독일과 미국 두 나라가 왜와 함께 진출하였다는 설 이것이 첫 번째 증거입니다.

지난해 왜인이 동래(東萊)에 영사(領事)를 세우고 복장이 다른 사람을 금하지 말 것을 청하였다는 그 설이 훈도배(訓導輩)에서 나와 중외(中外)에 자자(藉藉)하게 전하여져서 마음 속에 양적(洋賊)의 지경이 되지 않을 수 없겠다 생각됨이 두 번째 증거입니다.

왜인이 타고 온 것이 서양의 배이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서양 화포입니다. 그 기물(器物)의 통용(通用)됨을 관찰하면 그 도모하여 꾀하는 실체를 볼 수 있음이 세 번째 증거입니다.

왜인이 올 때 만약 침공(侵攻)할 계획이었다면 많은 병력을 이끌고 바다와 육지로 전진함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기에 이내 병사 수천에 그치고 도전(挑戰)하지 않음은 무엇이겠습니까? 만약 수호(修好)의 계획이었다면 한 명의 사신이 오면서 병사 수천을 이끌고 옴은 고금에 그렇게 행한 사람이 없었던 바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증거입니다.

그래서 신등은 단연코 저들은 양적(洋賊)의 앞잡이지 결코 전일의 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함은 신등의 말이 아니고 온 나라의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조정에서는 지난 날 이웃 나라의 왜로 믿고 그들이 양적의 앞잡이인 왜가 됨을 깨닫지 못하니, 신등은 그것에 의혹이 듭니다.

신등은 중화(中華)를 안으로 하고 이적(夷狄)을 밖으로 함이 천지(天地)의 상경(常經)이고 문교(文敎)를 도모하고 무위(武威)를 분발함이 제왕(帝王)의 대법(大法)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릇 예의(禮義)로 나라가 서게 하고 관면(冠冕)으로 풍속을 이룬 자는 이적(夷狄)과 통호(通好)함이 마땅하지 않기에, 그들에게 한 번의 통호(通好)를 허여함도 대란(大亂)의 도()가 됩니다. 전적(典籍)에 그 찬연(燦然)한 공적(功績)과 반드시 그러한 본보기를 하나하나 고증할 수 있어 속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양적은 또한 이적(夷狄)으로는 가장 추()하며 악한 자들입니다. 그 정상(情狀)을 살펴보면 사람의 모습을 비록 갖추고 있으나 다만 금수(禽獸)일 뿐입니다. 또한 그들의 기묘한 재주와 함부로 부리는 기교, 요사스런 술책과 사악한 가르침은 사람을 빠르게 현혹시키며 사람을 깊이 빠뜨리기 때문에, 마치 독화살 하나가 사람의 살에 박히어 몸 전체를 썩어 문드러지게 하고 짐주(鴆酒:독주) 한 잔이 사람의 입에 가까이 가더라도 몸의 맥()을 모두 흔들어 놓음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순조대왕(純祖大王)께서 우려하고 염려하심이 깊고도 원대하여 이에 일찍이 그것을 매우 미워하시고 몹시 싫어하시어, 저들의 무리가 우리 땅에 곳곳에 들어와 우리 인민에 침투하여 감염시키자 저들의 교자(敎者)를 한결같이 엄형으로 처단하여서 국가 만세의 방비를 엄하게 하시었습니다. 또한 이에 헌종대왕(憲宗大王)께서는 잘 계승하여 잘 이어가시었으니, 저들이 비밀리에 엿보고 들어옴을 조금도 용납하시지 않았고, 이로써 공자(孔子)의 도가 흥행(興行)하고 이륜(彛倫)이 크게 펼쳐질 수 있었으며 자식은 어버이를 버리지 않고 신하는 임금을 뒤로하지 않았으니, 나라의 기세가 지극하고 나라가 안정되어 영장(靈長:백성)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병인(丙寅:1866)과 신미(辛未:1871)에 저들의 배가 갑자기 우리의 경내에까지 들어와 서로 대치하여 한 달을 지내니 온 나라에 두려움이 거세어져 조석(朝夕)을 보존하지 못할 듯하자, 전하께서는 두 성명(聖明:순조와 헌종)의 가법(家法)인 싸워 지킨다는 뜻을 이어서, 벌하여 죄다 베어버리려는 것 밖에 다른 의도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적함(賊艦)으로 하여금 낭패하고 퇴각하여 물러가게 하자, 전역이 생기를 머금고 기뻐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천지에 음기가 가득하나 우리 동방 한 모퉁이만은 석과(碩果)가 다 먹힐 수 없는 것과 같아 성명(聖明:고종) 힘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은 천하의 후세에 칭찬의 말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왜사(倭使:왜의 사신)가 와서 예전처럼 수호(修好)하자 청하였으니, 우리가 그것을 신속하게 들어주더라도 그들을 살펴서 아마도 교린(交隣)의 의()에 해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왜인이 양적과 체결(締結)하고 교통(交通)하여서 내부로 서로 연계하고 있는 정황은 이미 드러났으니 앞서 진술한 바와 같습니다.

저 양적이 우리 나라와 통호(通好)하여 교역(交易)하고자 함은 재물과 비단을 채우고자 하는 부녀(婦女)의 욕심으로, 이에 그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생각하건대 그들에 대한 방비를 엄하고 매우 빽빽하게 하여 그 틈을 타고 들어 올 수 없게 되자, 이에 왜로서 앞잡이를 삼아 요구하고 협박하여서 우리 조정의 이목(耳目)을 속여 한 번 통호(通好)를 허락 받아 그들이 마음으로 바라는 점을 사사로이 할 수 있게 된다면, 저들이 때를 타고 연달아 나라 안으로 들어옴은 자연스레 지주(砥柱)에 부딪히고 여량(呂梁)을 부러뜨리고 바다에 도달함과 같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수습하여 금지하고 막아내고자 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하나가 되어서 세를 이루고 위엄을 세워 구조(救助)한다는 변명을 하며 우리를 물어버릴 것이니, 근일 북경(北京)의 일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미 약세를 보여 앞서 화호(和好)를 허락하고 어찌 분기(憤氣)하여 뒤에서 거슬릴 수 있겠습니까? 이는 그 형세이니 한 번 그들로 하여금 부득불 마음대로 하게 한다면 삼천리 태조께서 세우신 고국은 모두 그 껍질이 벗겨질 것이고 오백 년 공맹(孔孟)의 예의는 하나같이 황폐함에 빠져들 것입니다. 참혹하지 않겠으며 애통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전하 일신은 대궐의 깔개 위에서 팔짱을 끼고 남면(南面)하고서 그 높게 숭상 받으며 부귀의 즐거움을 누리는 자로 어찌 그 까닭을 알 수 없겠습니까? 전하의 대신(大臣)구경(九卿)삼사(三司)문무(文武)주목(州牧)의 관리들이 그 지위를 우러르며 도로에서 소리 높여 부르고 팔도의 만 백성이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떨면서 함부로 범하는 자가 없음은 또한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어찌 모두 친척의 자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습니까? 참으로 공맹(孔孟:공자맹자)의 도가 정주(程朱:정자주자)에게 전하여졌고, 우리 조선의 조종(祖宗)과 한 두 선정(先正) 대유(大儒)께서 전수 받아서 밝게 닦아, 이 백성으로 하여금 예의(禮義)에 흥기(興起)하게 하여서 평상시에는 친상사장(親上事長)의 도를 알게 하였고 일이 있으면 절개를 지키고 의에 죽는 충()을 귀하게 하였기에, 임금을 위하고 받드는 극진함으로 대궐의 밖에 달려 나아가 몸을 낮추어 임금의 수레에 경의를 표하였으니 군신상하(君臣上下)가 높은 베개를 베고 편안하게 잠을 자면서도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화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만약 왜선(倭船)에 기만(欺瞞)되어서 그들과 화호(和好)하여 문호를 열어 양적을 들어오게 한다면 그날 뒤로 사교(邪敎)가 안과 밖으로 가득 차서, 전하의 힘으로 그것을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 신민(臣民)으로 사교에 빠져 들어간 자는 어버이를 버리고 임금을 뒤로 함을 마치 다반사(茶飯事)로 여겨서 다시는 전하의 신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수오지심(羞惡之心:부끄러워하는 마음-역주)이 있어 죽더라도 여기에 빠져들지 않는 자라도 억울(抑鬱)하고 분격(憤激)하여 임금과 부모를 질시(疾視)하고 조정(朝廷)을 원수로 보아서 다시는 공경하며 마음으로 복종하여 존숭하려는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전하가 남면(南面)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여도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대신(大臣)구경(九卿) 이하가 몸을 온전히 하며 처자를 보호하려고 함에 아무런 근심 없이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공자의 도가 사라지고 금수로 변화됨은 국가 존망(存亡)의 일에만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백성으로 지극히 어리석어도 마음 씀이 이것에 대해 근심하고 염려하지 않음이 없는데, 유독 조정만이 깨닫지 못함은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조정이 왜와 서로 상대함에 마땅히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마땅히 대관(大官)이 그들에게 나아가서 처음부터 양이(洋夷)는 천지 부모의 적자(賊子)이고 화하(華夏) 성왕(聖王)의 난신(亂臣)이다. 일월이 비추면 서리와 이슬은 모두 사라진다. 혈기(血氣)가 있는 자는 <양이를> 성을 내며 미워하여서 토벌하여 죄줄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귀국(貴國:왜국)이 풍속이 도탑고 순박하며 유자(儒者)를 숭상하고 그 도()를 중히 여겨야 진실로 오래도록 이웃 나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도리어 저 양적의 속임을 받아 그들과 더불어 같은 무리가 됨을 달게 여기는 귀국을 부끄럽게 여긴다. 비국(鄙國:조선)은 비록 땅이 좁으나 조종(祖宗)으로부터 척양(斥洋:서양을 배척함)을 가법(家法)으로 삼아 지금에 이르기까지 어김이 없었으니, 이미 귀국과는 남북의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어 서로 도모할 수 없는 까닭에 더불어 수호(修好)할 수 없으니, 서계(書契)의 칭호(稱號)만을 남발함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귀국이 지금부터 만약 태도를 싹 바꾸어 고치기를 도모하여 통렬하게 양인(洋人)과의 관계를 끊으며, 스스로 그 좋아하고 미워함을 분명하게 하여 신명(神明)에게 그것을 질정(質正)하여도 의심이 없고, 돼지와 물고기 같이 하찮은 사람에게 믿음을 얻어 그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때에 삼가 마땅히 귀국을 이웃 나라로서 여기고 손님을 접대하는 예로서 맞이하여 귀국이 요청한 사목(事目)을 모두 마땅히 이치에 근거하여서 강론하여 결정할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이 할 수 없다면 그날로 바로 마땅히 배를 돌리어야 할 것이다. 부당하게 우리 경내에 오래 머무른다면, 난신적자(亂臣賊子)는 그 당여(黨與)를 먼저 다스린다는 춘추의 법을 시행할 것이다. 귀국이 이미 양적(洋賊)의 당여(黨與)가 되었다면 비국(鄙國)이 지난날 양국(洋國)을 처리했던 방법으로 귀국을 처리한다해도 잘못됨이 없을 것이다. 귀국은 서둘러 그것을 시행하라.”라고 이와 같이 소리내어 말한 연후에 그 응해오는 바에 따라서 의()로써 처리한다면 그들을 접대함에 근심을 막는 길이 있으며 그들을 거부함에 말의 단서가 있게 되어서 그 명분을 바르게 하고 의()를 밝히어 천하의 만국에 알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어찌하여 이러한 계획을 내지 않고 전일의 왜와 똑같이 보고 오직 옛날처럼 화호(和好)를 이어나가는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여 옛날과 같이 수호(修好)할 뿐만 아니라 이에 난적(亂賊)의 당여(黨與)로 하여금 하루아침에 오백 년 보장(保障)의 중요한 땅에 들어오게 하고 서서히 통호(通好)의 적지 않은 절목(節目)을 강정(講定)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오호라 그 또한 위태롭습니다. 높고 높으신 전하에게 삼가 애걸하오니 어서 빨리 절목을 고치게 하시고 즉일로 대관(大官)이 서로 만나고 있는 곳에 명을 내리시어 대관으로 하여금 한번 앞서 했던 말을 돌이키어 의()에 근거하여 배척하여 끊어내고, 반드시 앞서 진술했던 바와 같이 성토(聲討)하여 몰아 쫓아내는 일에 결단코 시간을 늦추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내수(內修)의 방법에 이르러서는 사졸(士卒)을 훈련시키고 관아의 창고를 채우며 백성의 업을 안정시키고 변방의 수비를 굳건히 하는 네 가지이며, 창졸간에 적의 내습을 막아냄이 급선무이고 양물(洋物)을 금함에 몇 번이고 엄중히 단속함이 또한 그것에서 가장 시급하며 지극히 절실한 것입니다. 백성의 재물을 고갈시킬 뿐만 아니라 백성의 마음을 좀먹음에 이것보다 심함이 없을 것이니, 우리가 저들에게 의()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더욱 선정(先正)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성명(聖明)에게 바라옵건대 어서 빨리 엄한 지시를 내려서 나라 안에 포고(布告)하시어, 안으로는 궁궐로부터 밖으로는 민간에 이르기까지 양물과 관련된 일체의 물건을 찾아 모아서 그것을 사통팔달의 거리에서 태워버려 통렬하게 양물을 끊어내시는 의중을 보이신다면 다만 이 일 한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만리 밖에 있는 적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자가 너희 말이 좋기는 하다. 다만 이와 같이 한다면 서양과 왜 좌우에 거슬리는 일이나 보탤 뿐이니, 나라는 적고 국력은 약한데 어찌 적에 맞설 수 있겠는가? 병자(丙子)와 정미(丁未)의 일은 강상(綱常)과 관계되었던 바로, 그것이 국가의 존망(存亡)의 문제였으니 그들과 싸워야 함이 마땅하였다. 오늘에 이르러서 저들에게 차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화호(和好)를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함은 더욱 마땅하지 않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신등이 그것에 대응하여 그렇지 않다. 병자(丙子)와 정미(丁未)의 일은 화하(華夏)와 오랑캐의 구분이었고 오늘의 일은 사람과 금수를 판별함이다. 화하가 오랑캐가 됨은 그나마 말로 할 수 있다하나, 사람이 금수가 됨은 더더욱 말로 할 수 없다. 또한 저 때라면 명의(名義)에 관계된 바가 진실로 컸으며 저들의 뜻이 주인인 중국과 신첩(臣妾)인 우리를 침범하는 데에 있었고 재백(財帛)과 부녀(婦女)에 싫증남이 없는 욕심은 없었기에, 각각 강역(疆域)의 관방(關防)을 매우 엄하게 지켰으나 우리는 오히려 선왕(先王)의 예의(禮義)를 보전하여 지키고 공맹(孔孟)의 심법(心法)을 추락(墜落)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의 일에 군신(君臣)의 명분으로 함이 없다라고 말하며 한번에 저들에게 통호(通好)를 허락한다면, 일용(日用)이 서로 뒤섞여 우리의 심술(心術)을 미혹하게 하고 우리의 풍속(風俗)을 괴란(壞亂)하며 우리의 생로(生路)를 끊어버려서 이르지 않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니, 그 재앙을 한 자 되는 종이에 모두 열거할 수 없다. 질병에 그것을 비유하면 저 때의 재앙은 병이 얼굴(頭面)에 있었고 오늘의 재앙은 병이 가슴(心腹)에 있으니,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고 하나는 안으로 숨어 있어 비록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이 사생(死生)에 관계되는 점에서라면 도리어 지금의 재앙이 저번보다 다급함이 있으니,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 하늘은 높고 땅은 낮아 그 사이에 사람이 살아가니 시종(始終) 생성(生成)함은 그것에 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천하를 소유한 자는 도로써 천하를 다스려서 하나라도 불행이 있다면 천하로써 도를 따르고, 나라를 소유한 자는 마땅히 도로써 나라를 다스려서 하나라도 불행이 있다면 나라로써 도를 따르고, 집안을 소유한 자는 마땅히 도로써 집안을 다스려서 하나라도 불행이 있다면 집안으로써 도를 따르고, 몸을 소유한 자는 마땅히 도로써 몸을 다스려서 하나라도 불행이 있다면 몸으로써 도를 따르니, 이것은 천지를 관통하여 고금에 걸쳐있는 바뀌지 않는 바른 이치이다. 지금 대도(大道)의 존망(存亡)이 달려 있는 때에 안위(安危)의 성패(成敗)로 설명하려는 자는 그 또한 알지 못하는 자이고 그 또한 사리에 어둡고 미혹됨이 심한 자이다. 하물며 예로부터 도를 따르는 마음을 지닌 자는 하늘이 돕고 사람이 따라서 끝내는 그 온전함을 얻는다. 구차하게 마음을 온전하게 하려하는 자는 무리가 배반하고 친척이 유리되어 도리어 재앙을 불러들임을 시서(詩書) 이하의 글에서 명백하게 고증할 수 있으니,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오호라! 신주(神州:중국)가 육침(陸沈)하여 사해(四海)가 비린내와 노린내가 난지 지금 이 백년입니다. 한 가닥 양기(陽氣)가 우리 동방에 기탁하여 있는 것이 마치 음양(陰陽)이 혼몽(昏濛)하고 하나의 별이 홀로 밝으며 홍수(洪水)가 끊임없이 이어져오나 고산(孤山)이 무너져 내리지 않아 황천(皇天)의 상제(上帝)가 돌보심이 이곳에 있고 백신(百神) 만민(萬民)이 중대함을 의탁함이 이곳에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이곳에 정성스럽게 몸을 정립(挺立)하시어 밤낮으로 게으름 없이 대도(大道)를 잡아 지켜서 시종(始終) 흔들리지 않으신다면, 전하는 마땅히 기울어지고 막힌 지경에서 구해낸 성왕(聖王)이 되실 것이고 만세에 영원히 공을 미치시어 우()임금의 아래에 놓이지 않을 것이니, 어찌 성대하지 않겠으며 어찌 위대하지 않겠습니까?

신등은 일찍이 옛날 참판 신() 이항로(李恒老)의 그 학술(學術)심법(心法)의 바름과 도덕(道德)충의(忠義)의 순수함에 복종하여 혹은 그 문하에 이르러 그를 스승으로 섬기고 혹은 그 문도로 나아가 실마리를 따라서 송법(誦法)하였습니다. 항로(恒老)는 병인(丙寅:1866)의 일에 병든 몸을 이끌고 임금의 물음에 달려와 척화(斥和)의 글을 펼쳐 올렸습니다. 그 처음과 끝까지 세상을 걱정함이 깊고 도()를 지키려는 공()이었으며, 그 피눈물 나는 정성(血誠)으로 귀신을 감동시키어 죽는 날에도 오히려 간절하게 양이(洋夷)가 틈 엿봄을 사문(斯文)과 세도(世道)의 끝없는 근심으로 여기었으나, 지금 후학(後學)을 버린 지 이미 9년이 지났습니다. 신등이 가만히 항로(恒老)가 마땅히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리라라고 일렀습니다. 그래서 신등이 그 도를 조술(祖述)하고 그 실마리를 계승하여, 서양의 가르침을 물리쳐 배척하고 서양의 재앙을 두절(杜絶)하려는 방책은 일찍이 죽음을 무릅쓰고 힘을 다하였으며, 가만히 성인(聖人)의 무리에 스스로 기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위급(危急) 존망(存亡)의 때를 맞아 방인(傍人)의 시비를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이해(利害)를 계산하지 않고 이에 만부득이(萬不得已)하게 소를 올림은 영원히 선사(先師)의 남기신 뜻을 저버릴 수 없어서 입니다. 삼가 성명(聖明)에 애걸하오니 불쌍히 여기시고 넉넉하게 베푸시며 도()에서 구하시고 조속히 영단(英斷)을 내리시어 사방 민중의 마음에 굽어 답하소서. 신등이 놀라고 애통함을 이길 수 없고 분함의 절실함이 망극(罔極)하여 울부짖음에 이르렀으니, 삼가 죽음을 무릅쓰고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신등이 이 소()를 정서(淨書)하고 대궐에 호소하여 날을 지내며 모두가 충성된 마음으로 의견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랐습니다. 곧 조지(朝紙)에 의정부(議政府)에서 저들과 수호(修好)하여 통상(通商)하겠다는 뜻의 약신(約信)을 임금에게 아뢰었고 즉시 윤허하시었음을 보았습니다. 오호라 전하의 성명(聖明)으로 어찌하여 이와 같이 하실 수 있습니까? ()와 양()이 일체(一體)임은 분명하게 증명되었으나 저 척화(斥和)할 수 있으나 화호(和好)할 수 없다는 설과 더불어 원소(原疏)가 이미 끝났다면, 왜에게 화호(和好)함은 곧 양()과 더불어 화호(和好)한 때입니다. 한 번에 두 곳과 관()을 설치하여 접촉함은 곧 한 나라의 난()이 일어나는 시초가 됩니다. 오호라! 재앙이 들이닥칠 것입니다. 나라는 전복될 것입니다. 백성은 고기밥이 될 것입니다. 인류(人類)는 금수(禽獸)가 될 것입니다. 오호라! 하늘이시어 이 어찌된 일이며, 누가 재앙의 실마리를 낳아 이 심한 지경에 이르게 하였습니까? 통곡(痛哭)하기에 부족하니, 오히려 장초(萇楚:오릉자(五稜子))의 무지(無知)함이 부러우니 어서 죽어 <재앙의> 소식 듣지 말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입니다. 오호라! 전하께서는 위로는 태조대왕(太祖大王)의 만년의 큰 사업의 기초를 이어받으시고 몸에는 동한(東韓:조선) 천리의 군사(君師)의 큰 공적을 맡으시었으니, 그 중()함으로 어떠하며 어찌 차마 스스로 가벼이 하심이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육 천리의 땅으로 원수에게 부림 받음을 어찌 고인(古人)이 부끄러워 한 바가 아니겠습니까? 이에 어찌 당당(堂堂)한 예의(禮義)의 나라이며 윗사람을 친하게 하고 어른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백성을 거느렸고 산물이 많아 풍요로움을 누리는 나라이며 심산유곡(深山幽谷)의 험준함에 의지하고서, 이에 두려워 흘금흘금 뒤돌아보며 수 천명의 서양 도적 무리에게 복종하며 부림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중국의 사가(史家)가 그것을 기록하여 조선과 양인(洋人)이 화호(和好)함은 천고(千古)의 나쁜 명예가 아니겠는가?”라고 할 것이며, 천하의 사람이 그것을 논하여 누가 조선을 소중화(小中華)라고 이르겠는가? 양이(洋夷)가 이르는 곳에 그들도 또한 이에 어찌 할 수 없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비록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온들 어찌 스스로 씻어낼 수 있겠습니까?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이 일에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을 아신다면 스스로 분발해야 함을 아실 것입니다. 게다가 지나간 일은 간언(諫言)할 수 없으나 오는 일은 오히려 쫓아가 미칠 수 있으니, 저 적과의 약속()은 요구에 의한 약속(要盟)이며 요구에 의한 약속은 그릇된 약속입니다. 우리 조정에서 허락하여 시행함은 의()에 가깝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의에 가깝지 않음이 분명하니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뒤를 쫓아가 배척하고 끊어냄에 어찌 그것을 설명할 수 없을까 근심하겠습니까? 엎드려 전하에게 바라오니 곧바로 대관(大官)이 있는 곳에 명을 내려 전에 내린 명령을 취소하시고 이미 정하여진 천명(成命)으로 정도(正道)를 행하여 성토(聲討)하시기를 한결같이 원소(原疏)에 진술한 바와 같이 하신다면 천만 다행일 것입니다. 만에 하나 저들이 이미 철수하여 돌아가더라도 또한 약속을 그만두자는 사신을 내어보내심이 마땅할 것이며 그리고 급급(汲汲)하게 내수(內修)의 계획을 실행하셔야하니, 정학(正學)에 힘쓰고 자신의 사사로움을 이기며, 연회와 같은 안일함을 경계하고 근검(勤儉)에 힘쓰며, 어질고 능력 있는 이를 임용하여 조정을 바르게 하며, 기강(紀綱)을 세워 예의(禮義)를 밝히며, 그 윗사람의 것을 덜어서 그 아랫사람에게 보태어주며, 민생(民生)을 기르고 병사의 식량을 바로잡는 이 몇 가지를 행하여 영원히 새지 않도록 조치하십시오. 그 양물에 대해서는 금지시키는 방책을 더욱 엄하게 하시어 사설(邪說)이나 부의(浮議)와 같은 사이비(似而非)에 흔들리거나 의혹(疑惑)되지 않는다면 저들이 반드시 추악함을 부리고 노하여 꾸짖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에 스스로 말을 굳게 지키고 그 자강(自疆)의 세()가 있어서 충분히 방비하여 적의 침입을 격퇴함에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다면 비록 뒷날에 또한 우리 의상(衣裳)의 전통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며 <임금의> 작은 은혜지만 길하게 될 것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성명(聖明)께서 마음에 담아 두시었다가 처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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