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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암집(毅菴集), 소의신편(昭義新編)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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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복여(復汝김두운(金斗運)과 이별하며 줌 贈別金復汝 斗運

선사(先師의암(毅庵유인석(柳麟錫선생은 도()를 밝히고 의()를 바르게 하셨으니 바로 세상에 드문 대현(大賢)이시다그러나 선생께서 밝히신 대도(大道)와 바로 잡으신 대의(大義)가 천하에 펼쳐지고 후세에 태평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함은 우리들이 선사(先師)의 사후(死後)에 서로 힘을 다해야 할 일이다복여(復汝김두운(金斗運)이 이미 문집(文集간행에 힘을 다 쏟았고또 연보(年譜편찬에도 마음을 다해서 여러 해 동안 정성을 들인 나머지 마침내 그 일을 성취할 수 있었다선사(先師)의 도의(道義)가 펼쳐지는 데는 마땅히 정해진 때가 있을 것이니 나는 두 손을 모으고 그 때를 기다린다병인(1926중춘(仲春)에 쓰다先師毅庵先生 爲能明道正義 乃不世出之大賢也 然其所明之大道 所正之大義 得伸於天下 而後世躋昇平之域 所以吾儕相與致力於先師身後事也 而復汝旣盡心於文集開刊焉 又盡心於編輯年譜 而積歲用誠之餘 竟得成就焉 先師道義之伸 宜亦有定期 吾其拱手而俟之矣 丙寅仲春題

 

乾坤今入蔑貞時 천지는 이제 바른 도가 깎여진 때이나,

夜氣漫漫曙不遲 밤 기운 깊어가니 새벽이 머지 않아 오리라.

春到西疇將有事 봄이 오면 서쪽 밭에 농사일 할 것이니,

農家須用蓄鎡基 농가(農家)에선 반드시 간직하였던 호미를 사용하리라.

 

4, ○ 사냥하여 얻은 짐승 하사하시는 것을 굳게 사양하고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축원함 정빈(貞嬪)의 일 固辭田獲之恩賜 以祝國泰民安 貞嬪事

國泰民安四箇言 국태민안(國泰民安네 글자를 말하며,

誠心仰祝動宸尊 성심(誠心)으로 우러러 축원하여 임금의 마음 감동시켰네.

固辭天門田獲賜 대궐에서 하사하는 사냥한 짐승 굳게 사양하니,

昇平歲月萬春存 태평한 세월 오래도록 봄날이라네.

以上國存時作 이상은 나라가 존재했을 때 지었다.

 

5, ○ 의암선생께 올리는 글 갑진(1904) 정월 5일 上毅庵先生 甲辰正月五日

나라에 슬픈 일이 생겨 모든 백성들이 슬퍼하고 있습니다게다가 이적(夷狄)과 금수(禽獸)가 자꾸 일어나 퍼져 걷잡을 수 없으니상황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인산(因山)에 예월(禮月)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못했으니망극한 슬픔과 원통함을 이기지 못합니다그리고 게다가 종묘사직의 위기가 경각에 달렸고화하(華夏)의 명맥(命脈)과 성인(聖人)의 계통(系統)이 따라서 어느 땅에 놓일지 모르겠습니다저와 같은 사람도 오히려 마음이 시리고 기운이 막힘을 견디지 못하여 해야 할 일을 아는 이가 없는데선생님께서는 평소에 고심혈성으로 나라를 근심하고 도()를 근심하였으니그 지극한 슬픔과 원통함이 어떠하시겠습니까만약 특별히 대의(大義)를 발휘(發揮)하여 세도(世道)를 만회할 수 있다면 임시변통(臨時變通)을 오랫동안 해오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반드시 가르침을 보여주시기를 천만번 바랍니다새해 정초에 선생님께서는 건강하시며 일가친척은 평안하신지요선생님의 여러 제자들은 더욱더 많이 일어나 도()를 강구하고 의()를 밝히니 사문(斯文)을 부지하기에 충분합니다저는 우러러 경축합니다장담(長潭)에 있는 귀댁(貴宅)은 근래에 모든 일이 한결같이 평안합니다직신(直愼)은 배가 부르다가 아프고 오한이 나는 설사가 자주 일어나니아마도 쇠약하고 늙어서 그런 가 봅니다스스로 가엾습니다그러나 세상의 변란이 이와 같이 심하니 또한 집을 옮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작년 겨울에 이리 오라는 가르침이 있었으나 아마도 그 뜻에 부응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저의 슬프고 울적한 심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몇 가지 조항을 뒤섞어 기록하고 동봉하여 올리니답장으로 깨우쳐 주시기를 바랍니다나머지는 기운과 체력을 도를 위하여 보중하시기를 기원하며삼가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하략)

國哀普慟 又値夷獸猖獗 情狀叵測 因山不得待禮月已 不勝痛寃罔極 而況宗社危在頃刻 華脈聖緖 從而不知稅於何地 如愚軰人 尙不堪心寒氣塞 莫知攸爲 門下素有憂國憂道之苦心血誠 則其慟寃之極 當復何如哉 若有別般發揮大義 而挽回世道 可以得出於變通長久之地 特爲垂示 千萬至望 伏未審新元道體萬康眷下吉泰 門下諸彦朋興日多而講道明義 足以扶持斯文區區 溯祝長潭貴宅近節一安耳 直愼寒泄頻作 豈以衰老而然乎 自憐自憐 而世變如斯之甚 又將有移宅之慮 昨冬來汝之敎 恐不得奉副矣 下情愴結 何可名言耶 雜錄數条胎呈 批誨是企耳 餘祝氣體 爲道保重 伏惟下察 (하략)

 

5, ○ 의암(毅庵)선생께 올리는 글 갑진(1904) 8월 17

(전략) 7월 사이에 주군(州郡)에서 왜병(倭兵)을 돕기 위해 병사를 모집하는 일이 있었습니다세상의 변화가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하늘이 어찌 차마 이와 같습니까본군(本郡)에는 다행히 6,7인 이건수(李建壽), 이인영(李仁榮), 이민정(李敏政), 이풍림(李豊林), 강순희(姜順熙), 윤영철(尹永哲), 이정규(李正奎등이 병사를 모집하는 일에 불응함을 대의(大義)로 삼는다는 정론(政論)을 주창하여 사방(四方)을 움직였으며 인심을 들끓게 하여 나라 안의 물정(物情)이 죽음을 무릅쓰고 외이(外夷)를 소탕하고자 아니함이 없었습니다그리고 옛날의 의장(義將)들이 다시 일어나기를 희망함이 마치 젖먹이가 자애로운 어머니를 찾는 것과 같았으니인심과 천리가 오히려 행하여질 수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저 괴이한 무리들은 오히려 이러한 인심과 물정을 막아 없애고자 도모할 뿐이니 그들은 유독 무슨 마음입니까저는 의()에 처하여 글을 아는 선비로서 써 보내니읽어보신다면 그 정황을 다 아실 것입니다.(하략)

上毅庵先生 甲辰八月十七日

(전략七月間 州郡有爲倭 募兵之擧 世變及此 天胡忍斯耶 本郡頼有六七箇人 李建壽 李仁榮 李敏政 李豊林 姜順熙 尹永哲 李正奎 主倡正論 以不應募爲大義諦 而風動四方人心鼎沸 邦內物情 莫不欲拚死向前掃蕩外夷焉 而想望舊日義將之復起 殆若乳兒之慕慈母 可見人心天理 尙可以有所爲也 噫 彼恠鬼輩 反謀銷鑠此人心物情 乃已焉抑獨何心哉 此間人處義 文字士則謄去 下覽則可悉其情也 (하략)

 

권 6, ○ 항와(恒窩유중악(柳重岳)에게 줌 갑신(甲申:1884) 11

국가의 근일의 화란(禍亂)을 듣자니 통곡하고 통곡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병자(丙子:1876봄에는 왜추(矮醜)와 통호(通好)하였고 임오(壬午:1882봄에는 양적(洋賊)과 화약(和約)을 맺었고 올 여름에는 이미 서울에 천주당 건립을 허락하였고 또 국내에 법복을 훼손하는 명령을 내렸고 게다가 육경(六經)을 업신여겨 내버리고 조석(朝夕)으로 이서(異書)를 강론(講論)한 지 이미 팔구 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그 영향으로 군부(君父)의 육친(六親)이 재앙에 걸려들었고 세신(世臣)은 역적에 빠지게 되었으며 사졸(士卒)은 창을 거꾸로 잡고 인민(人民)은 어육(魚肉)난 것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습니다마침내 세주귀현(世冑貴顯)의 신하가 외구(外寇)를 끌어들여서 안으로 군부를 핍박하여 종묘사직을 빼앗으려 도모하고 재빠르게 금수귀매(禽獸鬼魅)의 나라로 만들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오오 통탄스럽습니다어찌하여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까다행히 황천(皇天)의 돌보심과 조종(祖宗)의 묵묵히 도와주심에 의지하여 역적(逆賊)을 내쫓고 복종하게 하여서 의관(衣冠)을 겨우 보존(保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오히려 뉘우칠 줄 모르고 마치 외이(外夷)를 군친(君親)과 같이 믿고서 자강(自强)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며금수(禽獸)를 골육(骨肉)보다 가까이 보고 대의(大義)에 의거(依據)하여 저들을 멸망시킬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푸른 하늘이시여푸른 하늘이시여이 어찌된 까닭입니까통곡하기에도 부족하니 오직 장초(萇楚)처럼 알지 못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與柳恒窩 重岳 甲申十一月

國家近日禍亂 聞不勝慟哭慟哭 丙子春 與倭酋通好 壬午春 與洋賊結和 今夏旣許立天主堂於京裏 又令毁法服於國內 又况慢棄六經 而朝夕講異書 已爲八九年之久矣 其效遂使君父之六親罹殃 世臣陷逆 士卒倒戈 人民魚肉 非一非再 而乃至於以世冑貴顯之臣 引外寇而內迫君父 謀奪宗社 欲索性爲禽獸鬼魅之國 嗚呼慟矣 胡至於此乎 幸賴皇天之眷顧 祖宗之黙佑 得使逆賊黙伏 衣冠僅保然 尙不知悔恃 外夷若君親 而不思所以自强之道 視禽獸踰骨肉 而不思所以據大義而滅之也 蒼天蒼天 玆曷故焉 慟哭之不足 惟願萇楚無知也 (하략번역문에는 표기 안됨)

 

8, ○ 어떤 사람에게 줌 강성약(姜聖若)을 대신하여 짓다

국가(國家)가 불행하여 왜놈에게 협박(脅迫)을 받는 지경에 이르러 조병(助兵)을 모집하여 보내라는 명령(命令)을 면하지 못하고 있으니통곡하고 통곡합니다다시 어떠한 말로 서로 위로하겠습니까그러나 이 일은 실로 패거리가 되어 원수 오랑캐를 돕는 것에 관계되고 춘추대의(春秋大義)에서 엄히 금하는 것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신민(臣民)이 되어서 임금을 위하여 극()을 보존하는 처지에 있으니마땅히 죽음을 무릅쓰고 조칙(詔勅)을 받들지 않으며 대의체(大義諦)를 만들어 떳떳한 도리로 한 마음이 되어 만 사람 모두 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만약 이것에 이론(異論)을 세우는 자가 있다면 비록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해도 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략)

與或人 代姜聖若作

國家不幸 至被倭奴脅迫 未免有募送助兵之命令 慟哭慟哭 更以何言相慰耶 然此事實關黨助讎夷 而得罪春秋大義之嚴防 則在於爲臣民而爲君保極之地 斷當以抵死不奉詔 做大義諦 秉彛之同情 萬口之一談 若有立異於此者 則雖謂之無人性 非過也 (하략)

 

11, ○ 유목여(柳穆汝)에게 병오(丙午:1906정월 26

(전략)무릇 머리에 상투를 달고 있는 우리 후배들이 모두 이 노인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삼아서 죽게 되더라도 견양(犬羊)의 무리들에게 더러운 모욕을 받지 않는다면 국가가 거의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저 견양(犬羊)의 무리들이 날마다 창궐하여서도 이미 우리 유현(儒賢)들을 더럽히지 못하였는데또한 <저들이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황천(皇天)이 내려다보고 반드시 그들에게 복수를 해 줄 것입니다어느 날 천리(天吏)가 황명(皇明)의 태조(太祖)와 같이 난적을 토벌하라는 명을 받들어 행함을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그렇게 되기를 고대(苦待)하며 바라고 바랍니다. (하략)

與柳穆汝 丙午正月二十六日

(전략凡我戴髮後死者 擧以此老之心爲心 爲能抵死 不受汚於犬羊之奴 則國家 其庶幾乎 噫 彼犬羊 雖日事倡獗 旣不能汚我儒賢矣 亦將何爲哉 皇天降監 必爲之復讐矣 不知幾日 得復見天吏之奉行命討 有如皇明太祖耶 苦望苦望 (하략)

 

16, ○ 성연(聖然우상호(禹相浩)에게 답함 병진(丙辰:1916정월 23

(전략일노(日奴)가 서양(西洋)처럼 변화되어 소화(小華)를 어지럽히고 정방(正邦)을 뒤집고 대도(大道)를 멸절시키는 것을 보자 의진(義陣)에 달려가 의모(義謀)에 참여하였고의진이 패배하는 것을 보고는 고국을 떠나 요동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며 <노중련의바다를 건너는 높은 의리에 귀결시키고자 하였고요동의 풍토가 알맞지 않아 병이 나서 장차 죽게 된다면 항의순절(抗義殉節)하여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정하였으나 또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원수를 잊고 살 길을 찾는 사람이 됨을 면하기 어렵게 되자 자신을 꾸짖으며 깊이 부끄러워하였고적의 소굴로 도로 들어오려 하지 않는 것이 시의에 마땅하다고 요동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권면하였습니다이러한 몇 가지 말씀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흠모하고 경복하는 마음을 그지없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제가 가장 깊이 미워하는 자는이적과 금수가 바른 것을 없애는 것을[滅貞보고 공격하여 토벌하지 못하면서 공격하여 토벌할 필요가 없다고 외쳐 말하며도적의 소굴에 달게 거처하면서 고국을 떠나 의를 지키며 도적의 소굴에 왕래하기를 즐겨하지 않아 마치 장차 더럽혀질 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을 보고 도리어 큰 병이 든 사람처럼 여기는 자들입니다. (하략)

答禹聖然 相浩 丙辰正月二十三日

(전략至若見日奴和西洋 猾小華而覆正邦滅大道 則赴義陣參義謀 及其見敗 則去國客遼 擬歸滔海高義 及其水土不宜 致疾將死 則定以抗義殉節而還國 又不遂焉 則乃以難免爲忘讎求活之人 作自訟之深恥 而推獎他人之寓遼 不肯還入賊藪 爲時義之得當 此等數件言爲 亦足令人欽服無已 愚陋最所深惡 是見夷獸蔑貞 不能攻討 而唱謂不必攻討 及甘處賊藪 而看人去國守義 不肯徃來賊窟 若將浼焉 則反以爲大病者也 (하략)

 

20, ○ 경성(京城)과 팔도 각 읍의 사림(士林)에게 통고(通告)하는 글

유생(儒生유인석(柳麟錫)과 이직신(李直愼)은 삼가 경성(京城)과 팔도(八道각 읍의 여러분에게 아룁니다우리 동방(東方)은 비록 치우쳐서 바다모퉁이에 있지만지리로는 땅이 중주(中州:중국)와 연결되어 풍수(風水)는 절로 좋으며 천하의 끝[結梢:종착지]이 되고천도(天道)로는 황제(黃帝)가 비로소 나와 만물이 움직임을 낳을 때에 해당하고인사(人事)로는 해가 떠오르니 태평(泰平)하다.” 말하고 태평한 사람으로 인()하기는 무릇 중주(中州)의 밖에서 우리 동방만한 곳이 없습니다하물며 기자(箕子성인(聖人)이 임금으로 임해서 홍범대도(洪範大道)로 일국(一國)을 교화하여 이에 소중화(小中華)가 되었으니이는 그 홍몽(鴻濛)이 처음 열리고 풍기(風氣)가 바야흐로 왕성해지는 때에 황천(皇天)께서 이미 마음을 두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신라(新羅)와 고려(高麗때에는 회복함이 미약하고 오랑캐의 비루함을 지녔으나그러나 유풍(遺風)의 좋은 풍습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아 천리(天理)와 민이(民彝)가 왕왕 밝게 드러났으며본조(本朝)에 이르러 여러 성인께서 일어나고 여러 현인께서 출현하여 크게 치교(治敎)를 베푸시고 도학(道學)을 밝히자강상(綱常)의 큰 것과 문물의 성대함이 드러나 환히 빛남을 볼 수 있었습니다마침내 신주(神州)가 오랑캐에게 망한 날로부터 한결같이 화하(華夏)의 명맥과 성인의 실마리가 홀로 이곳에 있었습니다이것은 바로 이른바 ()나라의 예()는 노()나라에 있다’[周禮在魯]는 것이니만고(萬古)에 이어져 결실을 크게 하여 하늘 아래에 빛남이 있었습니다이것으로 하늘의 마음이 있는 곳과 양()은 없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으니 그 역시 인()하고 또한 지극합니다.

천지(天地)의 기수(氣數)가 불행하자 이내 오늘날의 큰 변고가 있어 난적(亂賊)과 수이(讐夷)가 안팎으로 조약을 체결하고 군부(君父)를 욕보이고 국모(國母)를 시해하여 강상(綱常)을 더럽히고 인류(人類)를 금수(禽獸)로 만들어, 4천년 당우(唐虞)의 예악(禮樂)과 2천년 공맹(孔孟)의 도리(道理)를 영원히 끊어지게 하여하늘의 마음이 있는 곳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오호라애통합니다이 사람의 무리는 장차 어찌해야 하겠습니까오호라애통합니다차마 말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하늘과 사람이 모두 분노하여 온 나라가 일제히 소리 지르며 거의(擧義)하자인석(麟錫등도 분수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동남쪽으로 가서 적을 토벌하고 오랑캐를 벌하여 원수를 갚고 중화(中華)를 보존하는 일을 하였습니다마침내 세력의 강약에 따라서 내가 뜻하는 바를 펼치지 못하였고홍수(洪水)와 열화(烈火)가 하늘에까지 이르고 번지는 기세가 넘치고 타올라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오호라끝내 우리 예의(禮義)의 나라가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석(麟錫등은 일국(一國)에서 복수하고 중화(中華)를 보호할 수 없음을 애통하게 여기고그 몸에 그것[중화]을 지키고자 계획하여 그대로 국경을 넘어 요동에 이르렀습니다약간의 동지와 강론(講論)하여 의체(義諦)를 정했으니, ‘화하(華夏)의 일맥이 다 떨어진 나머지에 천신만고(千辛萬苦)라도 그 전형(典刑)을 보전하여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으로 그 마음을 굳게 하여비록 하루를 더하더라도 그치는 것보다 낫다.’라고 하였습니다대개 국내의 동포로 이러한 마음이 있는 자와 이것을 함께하고자 합니다그 뜻을 슬퍼하는 자가 그 참람하고 망령됨을 용서할지 안할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에 생각건대 오늘에 그만둘 수 없는 한 가지 일이 있으니오직 우리나라는 화맥(華脉)과 성서(聖緖)를 보존할 수 있었기에 그래서 덕학(德學)절의(節義)공업(功業)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 할 수 있었고예의(禮義)있는 나라의 실제가 되어 찬연(燦然)히 완전하게 갖출 수 있었습니다.

대개 그 학술은 한결같이 순수하고 바름에서 나와 잡기(雜岐)가 없어거의 삼대(三代)에서 고증할 수 있고 송명(宋明) 송명(宋明)에는 아직까지 불교·노장·육상산(陸象山왕양명(王陽明)이 있어서 기잡(岐雜)을 면하기 어렵고본조 선비들의 학문은 한결같이 정이와 주자를 따랐다과 비슷합니다절의(節義또한 중국에서 드문 바가 있으니배신(陪臣)으로서 천왕(天王)을 위하여 죽고 조신(朝臣)으로서 국모(國母)를 위하여 죽으며 제자(弟子)로서 선사(先師)를 위하여 죽는 등의 일이 이것입니다.

만약 부녀자가 행한 정렬(貞烈)에 이른다면 세세로 풍속을 이루고 집집마다 풍속을 이루어 다 기록할 수 없을 것이니중국(中國)의 고금(古今)의 성쇠(盛衰)를 통틀어도 가장 뛰어날 것이 있습니다이것은 예의(禮義)있는 나라의 실제이고 만고(萬古)에 결실을 맺어 천하에 빛나게 되며황천(皇天)의 지극한 인()의 뜻에 해당하니 진실로 더없이 큰 공업(功業)입니다국가의 몇 백 년 종사(宗社)를 지키고 강토(疆土)를 보전한 제공(諸公)과 앞뒤로 서로 밑바탕이 됩니다오호라아름답습니다이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으나 금일의 변고(變故)를 만나쇠붙이를 녹이듯 없애고 그 영향(影響)이 끊어지게 하여 다시 천하에서 볼 수 없고 다시 만세(萬世)에도 들을 수도 없게 한다면사람의 무리로 태어나고 사람의 마음을 품은 자가 어찌 애통해하고 절박해하지 않겠습니까!

힘을 내어 지금 회복하여서 빛날 수 있게 이미 천양(闡揚)할 수 없더라도그것을 

오래도록 넓게 멀리까지 전파함은 또한 차선책으로 그만둘 수 없는 것입니다선조[祖先]에게 성대한 덕()과 아름다운 일이 있으나 천양하지 못함은 자손의 죄입니다선사(先師)에게 성대한 덕과 아름다운 일이 있으나 천양하지 못함은 후학(後學)의 죄입니다선왕(先王)에게 성대한 덕과 아름다운 일이 있으나 천양하지 못함은 신자(臣子)의 죄입니다지금 나라에 이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으나 그것을 천양하지 못한다면 과연 어떻겠습니까인석(麟錫)등은 여러 군자의 뒤에서 이 일을 함께 이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국조(國朝)이래로 나라 안의 덕학(德學)절의(節義)공업(功業이것 역시 일정부분을 취하거나 전체를 취하는 구분이 있는데 일정부분을 취한 것은 충신(忠臣)효자(孝子)열녀(烈女)의 종류이다세 건의 실적(實蹟)은 상하(上下)와 귀천(貴賤하나라도 유루(遺漏)하지 말고 모두 모으고열성(列聖)의 순서대로 무리를 나누고 순차를 만들어 하나의 대부(大部:체재)를 이루게 하여한 나라의 몸에 천리(天理)를 온전히 하여 만고 결실을 맺은 자를 신라(新羅)와 고려(高麗)까지 소급하여 자료를 싣고서그것을 『동국풍화록(東國風化錄)』이라 이름하려고 합니다.

원래 풍화(風化:교화)가 일어나는 까닭이 실로 열성(列聖)성덕(盛德)이 일어남으로 말미암고열성(列聖)이 일어나서 실로 기자(箕子)의 서업(緖業)을 이었으니 반드시 『국조갱장록(國朝羹墻錄)기자실기지(箕子實記誌)』 등의 글을 합하여 그 위에 두고 붙여 판각하여나라 안의 여러 읍에 배포하여 사람마다 이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게 하고 마음에 감발(感發)하고 격분(激奮)함을 일으키며또 천하에 펼쳐서 천하(天下만세(萬世)에 찬양하고 감탄하며 사모하고 본받도록 하고아울러 해외의 여러 오랑캐에게 배포하여 여러 오랑캐가 두려워 복종하게 하고 예()를 존숭하도록 한다면 듣건대여러 오랑캐들이 천하의 국속(國俗)을 칭술(稱述)함에 ()는 조선(朝鮮)보다 큰 곳이 없다.”라고 하였다 하니저들 역시 예가 중요함을 알고 있습니다지금 우리나라의 매우 어그러지고 어지러움을 보고도 오히려 이와 같이 숭상하니만약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대함을 보게 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사모하고 기뻐할 것입니다이 실적(實蹟)을 보여준다면 어찌 두려워 복종하는 이치가 없겠습니까국가는 오히려 혹 일 반 푼(一半分)이라도 위세를 높여 지보(支保)하는 이치가 있고 또 지극히 인()한 하늘의 뜻으로 래복(來復)의 기틀로 삼을 수 있으니일을 그만둘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생각건대 모든 군자께서 시대를 아파하고 도()를 근심하심에 진실로 피차(彼此)가 없으니진실로 혹여 이 말을 도울 것이라면서둘러 경기(經紀:근간)를 이루어주시기 바랍니다.

인석(麟錫등은 비록 극히 사람이 미천하고 정성이 얕으나 삼가 마땅히 지금의 처지에서 분수에 따라 힘을 다하여 널리 전함을 도모할 수 있는 까닭은아마도 우리 부모국가의 성대함을 두터운 바탕으로 삼았기 때문이고당우(唐虞)의 강역(疆域)과 공맹(孔孟)의 후예를 고동(鼓動)함에 여러 군자의 뜻있는 일을 만분의 일이라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외람되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으니죄송함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위 통문(通文)의 시행을 허여하여 부응해 주신다면대개 운영에 힘써 잠시라도 요설(蕘說)을 기다리지 마시고좌우(左右)께서는 차례대로 계획을 정성스레 진행하십시오감히 이에 몇 조목을 붙이니 아울러 알맞게 취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도유사(都有司)가 수취(收聚)를 주로 하고 아울러 기궐(剞劂)도 관리하십시오반드시 각 도마다 도유사가 있어야 합니다()는 좌우(左右)로 나누고각각에 도유사(都有司)를 둔다또 반드시 각 읍에 유사(有司)를 두고 <유사는일국(一國내에 세 건의 일에 해당하는 실적(實蹟)을 모아서 도유사에게 보내주고 이를 도와야 합니다.

도유사는 마땅히 나라 안에 덕망(德望있고 공의(公議)가 돌아가는 사람을 추천하고 도유사(道有司)읍유사(邑有司역시 그 도읍(都邑)에서 스스로 넉넉함이 있는 자를 추천해야 합니다유사는 반드시 충신(忠信)염공(廉公)하거나 의리를 돈독히 하며 문필(文筆)을 공부한 자를 선택해야 합니다충신(忠信)염공(廉公)한 자라야 실적(實蹟)을 수습할 때에 협잡(挾雜)하는 바가 없을 것이고의리를 돈독히 하며 문필을 공부한 자라야 간역(刊役)에 있어 뜻을 오로지 할 수 있습니다문적(文蹟비지(碑誌)읍지(邑誌)행장(行狀)유장(儒狀)의 종류 을 수집하는 일에 힘쓸 때에는 마땅히 허()와 실()을 살피고 반드시 공조(公朝)의 포상(褒賞시장(諡狀)정려(旌閭)증직(贈職)의 종류 이나 명현(名賢)의 찬술(撰述)에 근거해야 합니다.

당세(當世)의 생존자로 그 특별하고 두드러진 자는 빠뜨리지 말고옛날에 특별한 행실이 있었으나 자손이 없는 자는 더욱 마음을 다해 마땅히 채록(採錄)해야 합니다.

실적(實蹟아래에 국조(國朝)의 연대를 상세히 싣고그 현재 사손(嗣孫및 현저한 덕()이 있는 이름난 관리(官吏)를 기록합니다.

대체로 이 일은 아주 방대하나 진실로 마음을 성실히 하고 힘쓰면 반드시 이루지 못할 것도 없으니결코 의심하여 비난하거나 방대하다고 하여 그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또한 앞으로 일의 변화가 끝이 없더라도 이 작은 틈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으니 속히 도모하시기 바랍니다영력(永曆) 253년 기해(己亥:1899) 2월 일

通告京城及八道各邑士林文

儒生柳麟錫李宜愼 敬通于京城 及八道各邑僉君子座前 竊以我東 雖僻在海隅 以地理 則連壤中州 風水自存 而爲天下之結稍 以天道 則當帝始出 生萬物之震焉 以人事 則日出 曰泰平 而泰平之人 仁凡在中州之外 無有如我東者 而靷乎 箕聖君臨 洪範大道 敎化一國 爰作小中華 是其鴻濛初闢 風氣方暢之際 皇天屬意已可見矣 羅麗中微 復帶夷陋 然其遺風善俗 猶有未泯 天理民彝 徃徃昭著 及至本朝 則列聖作而羣賢出 以張大之治敎明道學 著綱常之大文物之盛 炳煥可觀 而一自神州陸沉之日 華脉聖緖 獨於此存 政所謂周禮在魯 而承萬古 而大結稍 有光於一天之下 于以知天意所在 爲陽不可無 而其亦仁且至矣 天地氣數之不幸 乃有今日之大變亂賊讐夷 內外締結 辱君父弑國母 糞壤綱常禽獸人類使 四千年唐虞禮樂 二千年孔孟道理 永絶 而天意所在 至不可見 嗚呼痛矣 爲斯人之徒者 其將奈何 嗚呼痛矣 不忍言也 於是乎 天人俱怒 一國齊聲擧義 麟錫等 亦不量分力 有事於東南 以之討賊 伐夷復讐保華 竟因勢有强弱 不克伸吾所志 而洪水烈火滔天 燔穹之勢任他漲熾 莫可奈何 嗚呼其終不有我禮義之邦耶 麟錫等 慟莫復讐保華於一國 而計將守之於其身 因而出疆到遼 與若干同志 講定義諦 以爲華夏一脉 墜盡之餘 千辛萬苦 準保其典型 以待來復 固其心也 雖加一日 愈於已 蓋將欲與國內同胞 有此心者 共之也 未知悲其志者 可怒其僭妄否乎 仍念有一事不可已於今日者 惟我國 爲能存華脉聖緖 故德學節義功業 所以盡人紀 而爲禮義邦之實者 燦然極備 蓋其學術之 一出純正 無雜無歧 庶幾考諸三代 而埓於宋朝 宋明猶有釋老陸王 未免歧雜 本朝士學 一遵洛閩 節義亦有中國之所罕者 以陪臣 而爲天王死 以朝臣 而爲國母死 以弟子 而爲先師死等事 是也 至若女行貞烈之 世世成風 家家成俗 而不可勝記者 通中國古今盛衰 而卓爾也 其爲禮義邦之實 而結稍萬古 有光天下 以當皇天至仁之意者 誠莫大之功業 而國家幾百年 衛宗社保疆土之諸公 乃其前後相資也 嗚呼懿哉 有如此之懿 而遭今日之變 使皆銷鑠泯滅 絶其影響 無復見於天下 無復聞於萬世 則生爲人類 而懷人心者 安得不哀慟迫切也 旣不能出力 以光復於今 則闡揚其舊 播之廣遠 抑亦其次之不可已者也 夫祖先有盛德美事 而不之闡揚 子孫之罪也 先師有盛德美事 而不之闡揚 後學之罪也 先王有盛德美事 而不之闡揚 臣子之罪也 今國有如此之美 而不之闡揚焉 則果何如哉 麟錫等 切願從僉君(과 사이 우측행간여백에 표시 있음)後 共成此事 自國朝以來 盡聚邦內德學節義功業 此亦有偏就 全就之分 偏就 如忠臣孝子烈女之類 三件實蹟 上下貴賤 無一遺漏 以列聖世次 彙分撰次 成一大部 持載一國全體天理 結稍萬古者 因而遡及羅麗名之 曰東國風化錄 原夫風化之所由起 實由列聖聖德作之 列聖之作 實承箕聖之緖業 須以國朝羹墻錄 合箕子事實記誌等文 以置其上附之剞劂 布置國中列邑 使人人知有此美 而起感發激奮之心 又布之天下 使天下萬世 贊嘆而慕效之 幷布之海外諸夷 使諸夷畏服 而尊禮之 聞諸夷稱述天下國俗曰 禮莫大於朝鮮 彼亦知禮之爲重 見今我國 乖亂之極 而猶尙如此 若使之見中國 我國之盛際 渠必慕悅矣 示此實蹟 豈無畏服之理 則 國家 尙或有一半分勢尊 支保之理 而又有以爲至仁天矣 來復之基事之 不可以已也 有如是矣 伏惟僉君子 傷時憂道 固無彼此 苟或取於斯言也 請亟經紀成就焉 麟錫等 雖極人微誠淺 謹當於所在地 隨分盡力 圖所以布傳 庶幾籍重我父母國之盛 而鼓動乎唐虞之疆 孔孟之裔 以補僉君子志事之萬一矣 猥瀆至此 不任主臣

右通如蒙許可有以施副 則凡於營辦 姑不待蕘說 而有所左右 第緣過許悃 敢玆贅附數條 並乞裁取

須有都有司 主收聚 仍管剞劂 又須有每道都有司 道有左右 各有都有司 又須有各邑有司 以收一國內三件事實蹟 送置都有司 所乃可有濟

都有司 宜推邦內負德望公議所歸處 都有司邑有司 亦取其道邑所推自餘 有司 必擇忠信廉公 篤義理工文筆者 忠信廉公 可於收實蹟之際 無所挾雜 篤義理工文筆 可以刊役能專意 而辦事收文蹟 碑誌邑誌行狀儒狀之類 之際 當審虛實 必據公朝褒狀 諡狀旌閭贈職之類 名賢撰述

當世生存者 不漏其特著 古有特行而無子孫者 尤宜盡心採錄

實蹟下詳載 國朝年代錄 其現在嗣孫 及有顯德名官者 大抵此事 雖極浩大 苟有誠心設力 必無不濟 决不可疑 難浩大 而止之 且前頭事變無窮 不得不乘此小隙 亟速圖之 永曆二百五十三年 己亥二月日

 

33, ◯ 팔도(八道)에 알리는 편지 檄告八道

오늘 왜노(倭奴)가 미쳐 날뛰고 국내의 적신(賊臣)이 아부하여 빌붙어서 국모(國母)를 시해(弑害)하고 군부(君父)를 핍박하고 백성 모두를 구박함에 이르고 요순(堯舜)과 공주(孔朱:공자와 주자)의 도()를 땅에서 쓸어내서 견양(犬羊)에 빠뜨리고 있다이 때문에 황천(皇天)의 상제(上帝)가 위에서 불같이 진노(震怒)하고 육군(六軍)과 백성 모두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여기며우리나라 곳곳에서 충의(忠義)한 장수가 벌떼처럼 일어나 반드시 중화(中華)를 높이고 이적(夷狄)을 내쳐서 국가의 원수를 갚고 부끄러움을 씻어냄을 제일의 대의(大義)로 삼는다의병이 이르는 곳에 각각의 관아와 각각의 고을 장관(長官)이 만약 편리한대로 관망하며 응하지 않는 자 및 적변(賊邊)에 붙어서 군정(軍情)을 저훼(沮毁)하는 자가 있다면 모두가 이적금수(夷狄禽獸)의 앞잡이고 난신적자(亂臣賊子)의 당여(黨與)이다단연코 군율(軍律)을 시행하여 먼저 베고 나중에 보고해도 좋다.

 

지난 을미(乙未춘천에서 창의(倡義)가 있었을 때 문자(文字대부분 잃어 버리고 다만 몇 줄의 문자만이 초고로 남아 있다그래서 남아 있는 것 중에 아직 당일(當日대의(大義)를 간직하여 볼만하고맹자의 이른바 나는 세 분 성인[三聖]의 가르침을 잇는다.”라고 함에도 어긋나지 않았다그래서 다시 기록하여서 후일 상고(詳考)의 자료로 삼고자 한다다섯 번째 영력(永曆을사(乙巳) 8월 5일 완산(完山습재옹(習齋翁이직신(李直愼)

 

檄告八道

今者 倭奴猖獗 國內賊臣諂附 至於逆弑國母 勒剃君父 驅迫萬姓 陷於犬羊 使堯舜孔朱之道 掃地以盡 是以皇天上帝 爀然震怒於上 六軍萬姓 咸思不共戴天 凡我處處 蜂起忠義之將 必以尊中華攘夷狄 爲國家 復讎雪耻 爲第一大義 義兵所到處 各營各邑長官 若有占便觀望不卽應者 及有附賊邊沮毁軍情者 是皆夷狄禽獸之前 矛亂臣賊子之黨與也 斷以軍律施行 先斬後報 可也

昔年乙未 在春川倡義時 文字散失殆盡 而惟此數行文 偶存於胡草 故紙中而猶可以見 當日所執之大義 有不悖於鄒聖所謂 予昇三聖之訓也 故復收錄之 以爲後攷之資也 永曆五乙巳八月五日 完山李直愼習齋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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