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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맥국 연구에 대한 몇가지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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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많은 소국들이 한국에 등장하였고 중국사사에 의하면 이외에도 옥저, , 맥 등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의 역사서로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삼국유사에 강원지역에는 예국과 맥국 그리고 실직국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춘천을 맥국(貊國)의 고도(古都) 즉 맥국의 중심지로 인식하여 왔다.

삼국사기의 지리 삭주조에서 가탐이 쓴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삭주(朔州)는 가탐(賈身冘)의 고금군국지(古今郡國志)에 이르기를 고구려의 동남쪽, ()의 서쪽, 옛날 맥의 땅이니 대개 지금 신라의 북쪽 삭주라고 하였다. 지금 춘주(春州)이니, 영현(領縣)이 셋인데 녹효현(錄驍縣, , 홍천군), 황천현(潢川縣, , 횡성군), 지평현(砥平縣, 현재, 양평군 지제면)이다.”1)

 

또한, 『삼국유사의 마한조에서는 삼국사를 인용하여 맥국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삼국사(三國史)에는 . 춘주는 옛날의 우두주인데 곧 옛날의 맥국이다. 또 혹은 지금의 삭주가 맥국이다.”2)

 

위의 두 자료는 현재까지 춘천지역의 맥국을 소개한 가장 오래된 자료이다. 이는 춘천지역에 맥의 나라 또는 맥국이 존재했음을 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 모두 확인해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맥국의 존재 여부에 대하여 여러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보면 하나의 견해는 맥국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견해와 다른 하나는 춘천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영서지역에 존재했다는 견해이다. 앞의 견해는 춘천지역에서 확인되는 고고자료와 문헌자료를 중심으로 살피면서 영서의 종족은 예족의 한 분파로서 강릉의 예를 동예(東濊)라 하고 춘천을 포함한 영서지역을 맥국이 아닌 영서예(嶺西濊)로 보려는 시각이다. 이와 다른 견해는 춘천지역에 맥국이 있었다고 확신하는 견해와 존재 자체는 인정하지만 종족, 정치체, 존속기간, 문화의 특성 등의 문제에서 유보적인 면이 있어서 확신하는 단계 이전까지의 견해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이 글에서 이러한 여러 견해를 모두 살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추후 연구사 검토를 포함한 맥국 연구의 큰 틀 속에서 그간의 연구를 회고하고 앞으로 새로운 연구방향을 제시할 연구전망을 정리해서 종합하는 기회를 기대해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춘천지역에 맥국이 존재했다는 견해의 논고를 수록하고 수록된 논고에 한정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김택균은 처음으로 맥국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시도한 연구자로서 그동안 여러 편의 연구성과를 발표하였다. 3)이번에 소개하는 글에서 김택균은 「『삼국사기에 보이는 맥의 실체4) 에서 맥의 어원적 개념과 그 변천에 대하여 먼저 살피고,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말갈의 위치와 용어의 개념 등에 대한 여러 설을 검토하였다. 또한 중국측의 사료들도 함께 검토하였는데 검토된 말갈은 맥계말갈로 파악하였다. 이에 앞서 김택균고은 춘천 맥국설에 관한 연구5)에서 삼국사기』시 등 문헌자료를 분석하고, 이 지역에 전해오는 지명의 어원과 전승에서 맥국의 흔적을 찾아, 춘천을 중심으로 하는 이 지역이 맥과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의 사서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맥국의 실체를 논증하고 있다.6)

김용백도 오랜기간 맥국에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였다.7) 김용백은 맥국을 통해 본 춘천 고대사8) 등에서 춘천 일대에서 출토된 점토대토기를 연나라의 고조선 침입시 한반도로 이주한 고조선의 유이민과 연계된 유물로 보는 한편, 압록강 중·하류 및 혼강 본·지류에 있는 고구려 적석총과 유사한 적석총이 임진강·북한강·남한강 유역에 집중되어 있는 점에 착안해 점토대토기와 적석총을 고조선, 고구려와 같은 문화적 전통을 지닌 맥족 사람들이 춘천을 비롯한 중부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화적 현상으로 보면서 춘천을 포함한 영서내륙과 경기 북부지역을 광의의 맥국 분포지역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울러 기원 전후부터 기원후 3세기 무렵까지 연대가 제시되고 있는 춘천의 철기시대 주거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는 한식토기·환두소도·U자형삽날·오수전 등을 낙랑과 연관된 유물로 보고 이를 낙랑과 그 영향력하에 있던 맥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들 유물이 등장한 시점에 춘천 맥국은 더 이상 춘천에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춘천에 맥국이 있었던 시기를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전 1세기 무렵일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등장하는 말갈을 춘천맥국의 주축세력들이 낙랑에 의해 밀려난 후 낙랑에 부용하였거나 복속한 맥계말갈로, 낙랑우두산성이 있었던 지역을 춘천 우두산으로 비정하고 온조왕대 백제의 동쪽영역을 춘천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가평으로 보았으며, 백제와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맥계말갈이 백제 고이왕 대인 기원후 3세기 중반 말갈 추장이 말 10필을 백제에 헌납한 것을 계기로 백제의 영역에 복속된 것으로 보았다. 아울러 맥국이 춘천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며, 영서내륙과 경기 북부지역에 폭넓게 분포한 맥인(맥계말갈)들이 모두 맥국과 연계된 것으로 보아 춘천이 맥국의 중심지였고, 춘천 맥국은 광의의 맥국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제한된 문헌사료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문헌사료는 물론 고고학 연구 성과, 고언어학, 지명, 전설 등을 망라해 종합적으로 연구할 때 춘천 맥국의 존속 시기, 분포 범위, 이동 경로 등이 밝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성수는 맥국의 유래와 춘천-우두대촌과 청평사9)에서 기존의 연구자들이 인용하지 않은 환단고기』·『진역유기』·『규원사화』 등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맥국과 태소암(太素庵)을 연계하고 단군조선이 멸망하자 유이민인 예맥족이 춘천 우두촌을 정착지로 삼았다고 보았다. , 맥국을 조선 유민의 나라라고 정의하였다. 또한 맥국의 사회와 문화를 다루면서 홍만종, 안재홍 등의 설을 인용하여 우리 고유의 문화는 선도(仙道)의 문화로 이해하였다. 또한 맥국인들은 일본으로 진출하여 일본민족의 시조가 되는 등 일본 북구주에 그 유적들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고 하였다. 종합하면 기존에 발표된 맥국의 연구와 달리 맥국의 기원과 문화 그리고 맥족의 활동 영역 등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기하였다. 나아가, 맥국은 조선유민이 건국한 나라로서 사회 경제적, 문화적으로 가장 발전한 선진국으로 보았다.

최복규는 지표조사를 통하여 춘천지역의 맥국관련 고고자료를 학계에 보고하여 왔고,10) 춘천의 초기철기시대 맥국 유적11)에서 춘천 인근지역에서 발견된 주거지와 적석총 등 다양한 고고자료들이 맥국의 존재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자료로 제시하였다. 고인돌의 경우 덮개돌과 굄돌 밑에 많은 돌을 깔아서 상부구조물이 붕괴되거나 움직이지 않게 조성한 기법이 후대의 돌무지 무덤의 원형으로 보았고 청동기문화를 발달시키면서 국가의 틀을 다져갔다고 하였다. 또 한 중도의 적석총과 율문리, 우두동, 신매리, 천전리, 발산리 등지에서 확인되는 유적을 분석하면서 맥국의 중심년대를 기원전후 1~2세기로 추정하였다. 나아가 춘천지역의 맥국세력은 화천 위라리 적석총을 보아도 이 지역과 밀접한 접촉관계를 형성하면서 연맹국가로 발전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덕원은 맥국의 실체와 신라의 교섭12)에서 그간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국(:나라)의 개념이나 범위 등의 검토와 신라와의 교섭을 다루고 있다. 맥국의 국명(國名)()+()’ 종족+정치발전 단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맥의 나라라는 의미의 범칭(汎稱)으로 사용되었고, 추장(酋長)이 존재하는 정치발전 단계의 사회로 파악하였다. 또한 맥국은 강원도 춘천을 중심으로 존재하였던 맥국 즉 좁은 의미의 맥국과 경기도 연천을 비롯하여 북한강유역의 경기도 양평과 남한강유역의 충청북도 제천 등에 존재하였던 맥의 나라라는 범칭으로서의 맥국, 즉 넓은 의미의 맥국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신라와의 교섭관계는 비교적 일찍부터 이루어졌는데, 이때의 맥국은 맥의 나라라는 범칭으로서의 맥국 즉 넓은 의미의 맥국으로써 신라와 비교적 가까운 소백산맥 인근 지역에 있었던 맥국의 정치세력이었을 것으로 이해하였다.

유재춘은 맥국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특징13)에서 맥국에 대한 다양한 문헌에서 보여지는 역사적 인식의 문제를 검토하고 이를 자료로 제시하면서 역사적으로 춘천지역은 끊임없이 맥국의 중심지로 인식되어 왔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18세기 이후 실학자들의 왕성한 고증적 연구와 저술에 종족으로서의 예맥, 그리고 맥국, 예국 등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크게 보면 춘천 맥국을 인정하는 의견, 그리고 이를 부정하는 의견으로 나누어 볼 수 있고, 맥국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본디 중국 동북쪽에 살고 있던 이족(夷族)인데 후대에 우리나라로 옮겨와 대관령 서쪽 지역에 자리잡았고 그들이 도읍한 곳이 바로 춘천이라고 하였으며, 정약용의 경우는 한()나라에서 처음에 평양에다 낙랑을 설치했는데, 그 후 고구려에게 빼앗기자, 낙랑 사람들이 우수주(牛首州)에 와서 이 지역을 차지하고, 백제와 연결해서 읍루(揖婁)에 항거하며 고구려와 대항하였다고 하며, 지금 사람들이 우수주를 맥국(貊國)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이것은 대개 가탐이 지지를 편찬하면서부터 잘못 전해진 것이라는 견해이다. , 맥국을 낙랑이 옮겨 온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한편 춘천에 대한 이러한 맥국의 중심지라는 역사적 이해는 조선 숙종대에 춘천이 관방상의 요지로 주목을 받는데도 일조하였고, 고종시대에 와서는 춘천에 유수부를 설치하고 이궁을 건설하여 중요한 전략적 기지로 삼으려는 정책의 밑바탕에 도 그러한 맥국 고도(古都)’라고 하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1) 김부식 저·이병도 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 989, 197.

2) ​일연 저·이민수 역,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1 990, 49.

3) 김택균, 춘천 맥국설에 관한 연구, 강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3.

     ​김택균, 강원 예맥고, 『강원문화사연구』2, 강원향토문화연구회, 1987.

     ​김택균, 「『삼국사기에 보이는 말갈의 실체, 『고구려·발해연구』3, 고구려·발해학회, 1997.

     ​김택균, 문헌자료로 본 춘천의 맥국, 『춘천 맥국의 역사적 연구』3, 강원향토문화연구회, 2005.

4) 김택균, 「『삼국사기에 보이는 맥의 실체, 『백산학보』69, 백산학회, 2004.

​5) 김택균, 춘천 맥국설에 관한 연구, 『백산학보』30·31, 백산학회, 1985.

​6) 김택균, 영서예설의 허구와 그 실체 영서맥, 『고대 강원의 정치체와 물질문화』, 국립춘천박물관·강원연구원 강원학센터, 2018, 31~72.

7) 김용백, 춘천일대 고대사회연구, 강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

     김용백, 북한강 유역의 선사문화 연구:춘천 일대를 중심으로, 『강원사학』6, 강원대학교 사학회, 1990.

     김용백, 맥국을 통해 본 춘천 고대사, 『춘주문화』28, 춘천문화원, 2013.

     ​김용백, 춘천 맥국 연구, 강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8) 김용백, 맥국을 통해 본 춘천 고대사, 『춘주문화』28, 춘천문화원, 2013.

9) 박성수, 맥국의 유래와 춘천-우두대촌과 청평사, 『춘주문화』 27, 춘천문화원, 2012.

10) ​최복규 외, 『춘천 맥국관련유적 지표조사보고서』, 춘천문화원, 1996.

     ​ 최복규, 춘천지역의 유적과 맥국, 『인문과학연구』17,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7.

     ​ 최복규, 맥국-다시 찾는 맥나라, 『춘주문화』28, 춘천문화원, 2013.

11) 최복규, 춘천의 초기철기시대 맥국 유적, 『인문과학연구』26,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0.

12) 김덕원, 맥국의 실체와 신라의 교섭, 『역사민속학』24, 한국역사민속학회, 2007.

13) 유재춘, 맥국에 대한 역사적 인식과 특징, 『춘주문화』28, 춘천문화원,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