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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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사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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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회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용어이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과거를 원시·고대·중세·근세라는 4시대로 구분하여 보려는 서양인의 역사관에서 만들어진 용어이다. 그런데 서양과 동양은 서로 다르게 역사가 변화되어 왔기 때문에 그들이 사용한 의미를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어서 동양에서의 고대는 나라가 없는 시대에서 나라의 형태가 갖추어지는 시대를 고대사회라 부르려는 의도가 있어 왔다.

한국에서의 고대사회란 어느 시기를 의미할까? 대체로 BC 1,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한반도와 요동지역에 청동기 문화를 배경으로 여러 종족이 발전하였다. 이 종족들은 집단화되고 집단화된 종족들은 서로 간에 정복과 복속을 통하여 더 큰 집단으로 성장하여, 초기 국가형태인 조선이후, 고조선(古朝鮮)이 국가형태로 등장했다. 따라서 초기국가 형태로 한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 시기를 고대사회의 시작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후 청동기문화를 배경으로 성장한 고조선은 철기문화를 도입하여 정치적·문화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였으나 B.C.108, 한나라의 침공으로 멸망한 이후 부여·고구려·백제·신라로 한국에는 고대사회가 계승되었다. 이 시기에는 이들 외에도 여러 작은 국가 즉, 소국(小國)이 등장하는데 중국 측의 사료에 의하면 78여개의 소국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국들 중에서 대부분은 고대국가로 이행하지 못하고 소멸하였다.

춘천지역의 자연환경을 보면 중심부는 북한강 중상류지역으로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주변지역으로 충적대지와 저구릉 산지가 발달하여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생존하기에 적합한 지형을 갖추고 있다. 또한 춘천의 중심지역 주변으로 화악산(1,468m)·북배산(867m)·계관산(736m)·삼악산(654m)·구절산(750m)·대룡산(899m)·가리산(1,051m)·부용산(882m)·오봉산(779m)·용화산(878m)에 둘러 쌓여 있어서 산림자원도 풍부하다. 이러한 자연 환경은 춘천지역에 오래 전부터 인간이 살기 좋아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와 청동기시대 및 고대국가의 기원으로 볼 수 있는 초기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적들이 밀집해 있다.

우선 국가체를 형성할 수 없던 선사시대 유적은 동내면 거두리 유적과 서면 금산리 갈둔 유적이 대표적이고 신석기 유적으로는 교동의 한림대학교 내에 있는 동굴유적을 들 수 있으며 중도동·송암동·서면 신매리와 금산리·북산면 내평리 등에서 확인되고 있다.

국가체를 형성하는 초기 단계인 청동기와 초기철기시대 유적은 북한강 유역의 주변지역이 모두 지하에 유적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집되어 있다. 최근 20여년간 집중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유적을 발굴하는 사람들은 춘천은 땅을 파면 어디든 유적이 나온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발굴조사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유적을 주거지역과 분묘유적으로 구분하여 소개하면 주거지역은 중도동·우두동·신사우동·신북읍 천전리와 율문리·서면 신매리와 금산리 그리고 현암리·북산면 내평리·동내면 거두리 등에서 조사되었다. 분묘유적은 신북읍 중도동·우두동·신북읍 천전리와 발산리 그리고 산천리·서면 신매리와 금산리 등지에서 확인되었다. 앞에서 본 분묘유적은 대부분 고인돌로 분묘가 조성되었으나 신북읍 천전리에서는 시신을 매장한 중심부 주변에 도랑을 파놓은 형태의 주구묘(周溝墓) 16기가 조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청동기시대 대표적 유물인 점토대 토기가 칠전동·서면 현암리·동내면 거두리에서 조사되었고 온의동·중도동에서도 유물이 채집된 바 있다. 이러한 조사 내용을 보면 춘천 관내의 대부분 지역에서 청동기인들이 살아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적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유적으로 중도동의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그들이 살던 집자리와 무덤인 고인돌이 수백기가 확인되었다. 이외에 그들이 먹고살기 위하여 농경을 한 경작지와 그들의 집단취락을 보호하기 위한 환호유적이 발굴조사되었다. 이 유적의 중요성은 다양하게 분석해야 하지만 첫째는 그 시대 사람들이 먹고 잠자는 생활공간인 집자리, 그들의 식량을 공급하던 농경지, 그들이 삶을 마치고 장례를 치렀던 묘자리인 고인돌이 서로 가까운 인접지역에서 함께 조사되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또한 환호가 조사되었는데 이 환호의 용도문제에서 적의 방어용인가 또는 짐승이 취락지 출입을 막기 위한 시설인가의 문제는 있지만 현재까지 국내에서 조사된 환호 중에서 최대의 규모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한 환호 내의 주거지와 환호 밖의 주거지는 각 신분적인 차이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발굴조사가 종료되고 유적이 갖는 각기의 속성이 정리되면 환호의 성격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초기철기시대 유적 역시 청동기시대 유적과 함께 중복되어 조사되고 있다. 그들이 살았던 생활유적인 집자리는 중도동·근화동·우두동·신북읍 천전리와 율문리·서면 신매리·동산면 군자리 등지에서 조사되었다. 분묘유적으로는 중도동에서 적석총이 조사되었으며 춘천을 벗어난 지역이지만 화천 하남면 위라리에도 남아 있다. 그리고 춘천댐으로 인하여 주변지역이 수몰되고 윗부분만 수면 위로 올라 있는 하남면 서오지리에도 적석총으로 추정되는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이 적석총은 춘천을 중심으로 하는 고대문화의 정체성을 정리하는데 중요한 유적이다.

그동안 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 춘천지역에 고대국가인 맥국이 있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기원전후 시기인 초기철기 시대에 춘천에는 맥국이 있었다고 춘천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믿어 왔다. 한구에서 고대국가란 맥국이란 압록강 변에는 고구려, 하남시와 한강 남쪽에는 백제, 경주에는 신라, 김해지역에는 가야 등의 작은 국가들이 건국되어 각기 발전하였으나 가야는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하고 532년에는 김해의 금관국(金官國: 금관가야)이 멸망하고 562년에 고령의 대가야국이 신라에 멸망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춘천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이라는 정치체는 언제 성립되고 언제, 어느 세력에 의하여 소멸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