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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貊國을 통해 살펴 본 春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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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春川 地域 靑銅器·鐵器時代 遺蹟의 性格

춘천에서 청동기시대 유적은 거의 전 지역에 걸쳐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청동기시대 유적은 강가의 충적대지 위에 자리하고 있으나 최근 조사된 거두택지 2지구의 경우 구릉 위에서 孔烈土器를 공반하는 주거지가 발굴조사 되는 등 공열 토기인들이 구릉위로 생활 근거를 확산한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다.104) 圓形粘土帶土器105)를 공반하는 주거지 유적은 낮은 구릉 위에 위치한 동내면 거두리106), 칠전동107), 온의동 유적108)과 강가 충적대지 위에 위치한 현암리109), 천전리 유적110)에서 확인되고 있다.

춘천 일대의 청동기시대 유적은 조사가 진행된 대부분의 지역에서 보이는데, 특히 맥국의 옛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昭陽江 유역 신북읍 천전리111), 율문리112), 동면 장학리 일원113)과 우두동114), 북한강 지역인 서면 신매리115), 현암리116), 중도117), 삼천동118) 일원, 그리고 공지천 유역인 동내면 거두리 등에서는  대규모 마을 유적들이 확인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춘천 일대에 이미 성읍국가 단계의 통치 세력이 자리잡을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져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주거지는 대부분 강가의 충적대지나 얕은 구릉 위에 있으며, 주변에 많은 산악지대가 있어 농경, 수렵, 어로, 채집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생업경제 활동을 하는데 유리한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어 대규모 취락이 형성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접한 북한강 상류 華川 용암리 유적과 더불어 비슷한 문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춘천의 청동기시대 문화는 대규모 마을 유적의 발굴을 통해 당시의 주거 생활 전반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최근 발굴조사 보고서가 발간된 천전리 유적의 경우, 조사 지역내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75동에 이르고 있다. 주거지들은 대부분 암갈색부식토가 혼입된 황갈색사질점토로 바닥면을 다짐처리 하였으며, 내부에서 중심주공, 노지, 작업공, 이색점토구역, 저장공 등의 시설이 확인된다. 주거지는 중앙주공의 배치에 따라 노지를 중심으로 하는 공간과 작업공 또는 이색점토구역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으로 분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시설은 전기 주거지에서는 확인되지 않지만, 과도기에는 무시설의 작업공간에 작업공만 설치되며, 중기의 주거지에서는 이색점토구역과 작업공이 함께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는 작업공간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와같은 주거 양식은 천전리 뿐 아니라 인근의 북한강 유역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어 ‘泉田里式 住居址’로 명명되고 있다. 

천전리 유적에서는 주거지 이외에도 당시 이곳에 거주하였던 주민들의 생활과 관련된 경작유구와․함정․수혈유구․굴립주유구 등에 대한 다양한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는데 인접한 율문리 유적이나 율문리~천전리까지 이어지는 도로변 하수관거 공사부지내 유적 등과 같은 문화적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각종 지리지에 貊國古城이 있었다고 언급되고 있는 牛頭山을 중심으로 한 우두동 일대와 서면 신매리․금산리․현암리 등 북한강과 소양강가의 충적대지 지역에서는 수십동의 주거지가 함께 있었던 청동기시대 주거지들의 발굴사례가 급증하고 있으며 다양한 출토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대규모 마을 유적들이 형성되었던 춘천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12세기 무렵의 전기 청동기시대부터 기원전 3~4세기 경의 후기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전 시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천전리 유적에서 확인된 경작유구는 당시 사람들이 밭농사를 통해 주된 식량자원을 획득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인근에 파 놓은 함정유구는 산에서 내려오는 짐승을 포획하거나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보이며, 화살촉을 비롯한 각종 석기와 요령식동검의 슴베편과 청동화살촉의 존재는 이들이 사냥과 전쟁을 병행하였고, 특히 청동 무기류의 존재는 당시에 상당한 권력 계층이 이들을 통치하였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춘천 일대의 청동기시대 문화상은 마을 유적들과 함께 무덤 유적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춘천 지역의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중 대표적인 것은 周構墓119)와 고인돌을 들 수 있다. 천전리 유적에서 조사된 16기의 주구묘는 크게 3단계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1단계는 전기 청동기시대 늦은 단계, 3단계는 중기 청동기시대 이른 단계로 보여 시기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춘천 지역의 주구묘는 청동기시대의 일반적인 무덤양식인 고인돌의 출토 유물과 비교해 볼 때 시기적으로 앞서고 있어 고인돌보다 앞서 사용된 무덤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춘천 일대에서 보이고 있는 고인돌은 卓子式과 蓋石式 고인돌이며, 거의 모든 고인돌에서 돌무지가 하부구조를 에워 싸듯이 깔려 있다.120) 이와같은 축조 방식은 춘천․양구 등 북한강 유역 고인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121) 이 지역 고인돌 축조의 독특한 형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이와같은 고인돌의 돌무지가 이후 철기시대 積石塚으로 발전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122)

천전리에서 집중 발견된 주구묘와 춘천 일대의 고인돌은 이들 무덤이 조성될 당시 많은 인원을 동원해 무덤을 만들 정도의 세력이 이미 이 지역에 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춘천 지역의 철기시대 유적은 서면 신매리123), 신북읍 천전리124)․율문리125), 동산면 군자리126), 동면 장학리127), 호반동 중도128), 우두동129), 근화동130) 등에서 주거 유적이 발굴조사 되었으며, 일부 유적에서는 중국 군현과의 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철기시대 주거지는 대부분 凸자형과 呂자형을 기본 형태로 하고 있으며, 강가의 충적대지 위에 집단 마을을 형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유적은 대부분 打捺文土器가 출현하기 시작하는 시기부터 기원후 2~3세기 사이에 만들어 진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는 이미 판재를 사용해 벽을 만들고 있으며, 율문리 75-2번지 유적에서는 아궁이와 부뚜막, 구들, 배연시설이 ‘ㄱ'자 형으로 완벽하게 구비된 상태의 주거지가 조사되기도 하였다.

이들 주거지는 당시 주거 생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으며, 출토 유물에 있어서도 일부 토기와 철기들이 中國 郡縣과의 교류관계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춘천 맥국과의 연계성을 찾는데 매우 중요하게 활용될 것으로 판단된다.   

율문리․신매리․우두동 등 여러 주거지에서 출토되고 있는 漢式系 土器는 嘉平, 洪川 등 인근 지역에서 출토 예가 급증131)하고 있는데 漢郡縣 중 樂浪郡과의 연계성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철기류는 주조괭이와 U자형 삽날․環頭小刀․철촉 등이 출토되고 있는데 주조괭이는 인근의 홍천 하화계리 유적에서 출토된 사례가 있으며, 樂浪土城 출토품과 유사하다.132) 주조괭이는 우두동․율문리에서 출토된 U자형 삽날과 더불어 철기시대의 주요 농기구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환두소도133)는 국내보다는 중국의 진한시대에 출토량이 많으며 낙랑토성에서도 발견되고 있는데 춘천에서는 우두동․율문리․신매리․천전리유적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이와함께 율문리~천전리 구간의 하수관거 매설 지역에서 출토된 五銖錢의 존재는 당시 한 군현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철기시대 유적에서 중국 漢武帝 시기부터 주조되기 시작한 오수전이 출토된 사례134)는 여러 곳이 있으나 다른 지역의 경우 바닷길 등을 통한 교역과정을 거쳐 유입되었거나 다소 늦은 시기에 사용되었던데 반해 춘천의 경우는 기원 전후 시기에 낙랑으로부터 직접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춘천 지역 철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한식계 토기와 환두소도 등 철기류,, 오수전 등의 존재로 보아 기원 전후 시기 철기시대의 춘천 지역과 낙랑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한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춘천 지역의 철기시대 무덤 중 대표적인 것으로 적석총을 들 수 있다. 적석총은 중도 2기, 신매리 1기, 산천리 1기(추정) 등이 있으며, 인접한 화천 위라리에서도 1기가 확인되었다. 이들 적석총 중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중도 적석총135)은 기원후 1~2세기 경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강 유역의 춘천과 화천에서 기원후 1~2세기 경 축조된 것으로 여겨지는 무기단식 적석총이 확인되고 있음은 당시에 이 지역에 대형 적석총을 축조 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통치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鴨綠江 중·하류 및 혼강 본·지류에 집중 분포하는 고구려 적석총과 유사한 형태의 적석총이 한반도 중부 내륙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삼국사기』 기록에서 보이는 말갈의 활동 무대였던 북한강 유역136)과 임진강 유역137), 남한강 유역138) 및 평창강 유역139)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이는 고구려와 같은 문화적 전통을 지닌 사람들이 중부지방으로 이주해 들어와 정착하는 과정에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적석총의 분포 지역을 찾아보면 당시 맥족(말갈)이 남하해 정착하는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적석총은 점토대토기와 함께 맥국 사람들이 분포했던 지역과 그들의 이동 경로를 추정해 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04) 강원문화재연구소, 『거두리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2003.

강원문화재연구소, 춘천 거두리 779-1번지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2006.

예맥문화재연구원, 춘천 거두2지구 택지개발 사업지구내(남서지구)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2006.

105) 박순발, 『한성백제의 탄생』, 2001, 6574: 연구자는 연나라의 고조선 침공 후 요녕지방 고조선 유이민 다수가 한반도 지역으로 유입될 당시 점토대토기가 함께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으며, 한강유역 및 충청지방은 해로를 통하여, 대동강유역은 육로로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유입 초기에는 기존의 토착 고인돌사회와 대립관계를 형성하였고, 이에따라 산 정상부와 같은 고지대에 자리를 잡으나 머지 않아 우월한 기술과 선진 경험을 토대로 토착 고인돌 사회를 장악하고 풍부한 농경지를 갖고 있는 강변 농경지역으로 진출한 것으로 보았다.

박진일, 2007, 점토대토기,그리고청동기시대와초기철기시대,『한국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한국청동기학회 제1회 학술대회 : 연구자는 점토대토기 단계를 5단계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 해당하는 절대연대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는데 3단계에 해당되는 천전리 유적 점토대토기의 경우 기원전 34세기 대를 제시하였다.

106) 한림대학교박물관, 2005, 춘천 거두2지구 택지개발사업 문화재 시굴조사 약보고서,

예맥문화재연구원, 2006, 춘천 거두2지구 택지개발 사업지구내(남서지구)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강원문화재연구소, 2006, 춘천 거두2지구 택지개발 사업지구내(북지구) 유적 발굴조사 2차 지도위원회의 자료.

107) 한림대학교박물관, 1996, 『칠전동 점토대토기 유적 발굴보고서』.

108) 임세권, 1977, 춘천시 온의동 무문토기 유적, 『사총 21·22합집』.

109) 예맥문화재연구원, 2009, 춘천 서면 문화산업단지 조성지구내 유적 발굴조사 4차 지도위원회의 자료.

110) 강원문화재연구소, 2008, 『천전리』.

111) 한림대학교박물관, 2006,춘천 천전리 121-16번지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강원문화재연구소, 2008, 『앞 보고서』,

예맥문화재연구원, 2008, 춘천 신북 하수종말처리장 및 하수관거 건설공사 부지내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112) 강원문화재연구소, 2005,춘천 율문리 생물산업단지 조성사업부지 유적 지도위원회의 자료,

---- 2006, 춘천 율문리 생물산업단지 조성사업부지 유적(2)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자료.

113) 강원문화재연구소, 2007,춘천 소양5-국도 56호선간 도로 확포장 공사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114) 강원문화재연구소, 2006,춘천 우두동유적-춘천 우두동 직업훈련원 진입도로 확장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예맥문화재연구원, 2007,춘천 사우교차로-명진학교간 도로공사 구간내 유적 발굴(시굴)조사 약보고서.

115) 국립중앙박물관, 1982,『중도진전보고, 한림대학교박물관, 1986,『신매리 지석묘 주거지 발굴보고서』.

-----------2003, 『춘천 신매대교부지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 2008,춘천 북한강수계기존제방공사구간(신매 1) 문화재 발굴조사 3차 지도위원회의 자료집.

강원문화재연구소, 2003,『춘천 신매리 주차장 신축예정부지 유적』,

---------, 2005,『신매리 54-4번지 유적:주택신축예정부지 내 유적 시굴조사 보고서,

----------- 2007,『신매리 373-6번지 유적 주택신축예정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 2007,『신매리 1047-1번지 유적 주택신축예정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116) 예맥문화재연구원, 2009. 춘천 서면 문화산업단지 조성지구내 유적 발굴조사 4차 지도위원회의 자료.

117) 한림대학교박물관, 2002, 『춘천 하중도 제방공사 구간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118) 한림대학교박물관, 2002, 『춘천 삼천동 순환도로구간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119) 강원문화재연구소, 2008, 『앞 보고서』.

120) 하문식, 2008,혼하 유역 고인돌의 특이 구조와 성격,『동양학』43, 237262 : 혼강 유역의 무순 산용과 하협심, 신빈 용두산 유적에서 조사된 고인돌들은 모두 무덤방 주변에 돌무지를 하고 있어 춘천지역 고인돌과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그러나 춘천지역 고인돌이 강가의 무른 지반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돌무지를 한데 비해 이 지역의 고인돌은 산기슭이나 능선위의 단단한 지반 위에 있어 차이가 있으며, 1차 목적은 무덤방을 보호하는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는 이들 고인돌이 고구려의 초기 돌무지무덤의 기원을 규명하는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1) 국립중앙박물관, 1984,『중도진전보고, 2021.

122) 국립중앙박물관, 1983,『중도진전보고, 1617.

123) 한림대학교박물관, 2003,『춘천 신매대교부지 문화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강원문화재연구소, 2005,『신매리 54-4번지 유 적 : 주택신축예정부지 내 유적 시굴조사 보고서』, 2007,『신매리 10·47-1번지유적 주택신축예정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124) 한림대학교박물관, 2006,춘천 천전리 121-16본지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강원문화재연구소, 2008,『앞 보고 서』, 2008, 『천전리-동면-신북간 도로 확장 및 포장 공사구간 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예맥문화재연구원, 2008,춘천 신북 하수종말처리장 및 하수관거 건설공사 부지내 유적 발굴 조사 약보고서.

125) 예맥문화재연구원, 2008, 『춘천 율문리 유적-춘천 율문리 75-2번지 창고신축부지내 유적 시굴조사보고서』, 강원문화재연구소, 2008, 『춘천 율문리 335-4번지 유적-춘천 율문리 생물산업단지 조성부지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126) 예맥문화재연구원, 2007, 『서울-춘천고속도로 8공구 N.O지구 내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127) 강원문화재연구소, 2007, 춘천 소양5-국도 56호선간 도로 확·포장 공사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128) 국립중앙박물관, 1980, 『중도』, 1982, 『중도진전보고.

129) 강원문화재연구소, 2006, 춘천 우두동유적-춘천 우두동 직업훈련원 진입도로 확장구간내 유적 발굴조사 약보고서, 2006, 『춘천 우두동 707-1·35번지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 2007, 『춘천 우두동 롯데인벤스 우두파크 신축부지 내 발굴조사 보고서

130) 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09, 경춘선 춘천정거장 예정부지내(A구역) 문화재 발굴조사 6차 지도위원회의 자료

131) 춘천 지역에서는 신매리47-1번지 유적, 신매리 54-4번지 유적, 우두동 직업훈련원 진입도로 유적, 우두동 롯데인벤스 유적, 율문리 생물산업단지 유적 등에서 한식계토기가 출토되었으며, 가평 대성리유적, 홍천 철정리유적에서도 출토 예가 보고되었다.

132) 정인성, 2007,낙랑 토성의 철기와 제작,『낙랑문화 연구』 : 연구자는 이를 B2형 주조철부로 보고, 이러한 형식의 철부를 낙랑토성 내부에서 제작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어 낙랑과의 연계선상에서 검토하여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133) 이건무, 1992,다호리유적 출토 붓()에 대하여,『고고학지』4.: 환두소도의 용도에 대해서는 낙랑과의 교역 관계를 갖고 있었던 변진 지역의 창원 다호리 1호분에서 붓과 함께 출토된 환두소도에 대해 나무 등에 쓴 글씨를 지우는 역할을 하는 문방구류로 보기도 하나 춘천에서 발견된 환두소도들은 생활유구인 주거지 내에서 출토된 점으로 보아 공구로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134) 춘천 이외에 국내에서 오수전이 확인된 초기철기시대 유적으로는 강릉 초당동유적, 창원 다호리유적 1호분, 창원 성산패총, 제주 산지항 유적, 풍납토성 경당지구 101호 유적 등이 있다

135) 중도선사유적발굴조사단, 1982, 『중도발굴조사보고서』, 박순발, 2001, 『앞 책』: 연구자는 중도 적석총이 고구려 계통의 적석총 중 이른 시기인 기원전 3세기 경에 축조된 무기단식 적석총과 형식이나 수법이 비슷하다고 보고 이와같은 형태의 적석총을 즙석식적석총이라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136) 북한강 최상류 지역인 화천 위라리를 비롯해 춘천, 양평 등지에서 적석총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황용훈, 1974,양평군 문호리지구 유적발굴조사,『팔당소양댐 수몰지구유적발굴종합조사보고서』.

137) 김성범, 1992,군사보호구역내 문화유적조사보고-경기도 연천군 편-,『문화재』25. 김성태, 1993,연천 삼곶리 적석총 발굴조사개보,『학술연구발표논문집』7, 문화재연구소, 1994,『연천삼곶리백제적석총』, 김병곤, 2002,임진강유역 적석총의 제문제,『임진강유역의 고대사회』: 연구자는 임진강과 한강 유역의 적석총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 본 후 임진강유 역의 적석총 조영자들이 부여나 고구려 지역으로부터 유입된 유이민 집단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방문화재연구원, 2009,연천 군남홍수조절지 내 횡산리적석총 발굴조사 지도위원회의 자료: 임진강 유역에는 개성 장학리적석총을 필두로 7정도의 거리에 연천 횡산리적석총, 삼곶리적석총, 우정리 12호적석총, 동이리적석총, 학곡리적석총이 있으며, 인접한 한탄강에 전곡리적석총이 있는데 연구자는 맥계말갈 세력과의 연계성, 백제 초기 건국세력과의 연계성 등의 검토 필요를 제기하고 있다.

138) 배기동, 1984,제원 양평리 A지구유적발굴조사보고,『충주댐 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종합보고서』, 최몽룡 외, 1984,제원 도화리지구유적발굴조사보고,『충주댐 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종합보고서』, 황용훈, 1984,제원 계산리A지구 원형적석고분 발굴조사 보고,『충주댐 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종합보고서』, 1984,제원 연곡리지구 고분 발굴조사 보고,『충주댐 수몰지구문화유적발굴조사종합보고서』, 1984,중원 지동리A지구 유적발굴조사 보고,『충주댐 수몰지구문화유적발 굴조사종합보고서』.

139) 복규 외, 1986,평창지역의 선사사회와 그 문화,『강원사학』2, 예맥문화재연구원, 2008,『평창 평창읍 평창강 수계 수해복구공사부지내 유적 발굴(시굴)조사 약보고서』: 평창강 유역에는 중리, 하안미리, 응암리, 마지리 등 여러 곳의 강변 충적지에서 적석총이 확인되고 있어 맥국과의 연계 가능성을 한층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