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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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헌자료로 본 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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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맺음말

본고는 문헌의 면밀한 검토와 분석을 통하여 영서예(嶺西濊)의 실체를 구명하고자 출발하였다. 영서예의 실체를 주장하는 주요 근거는 『삼국지』 「위서(魏書)」30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예(濊)조와 「광개토대왕릉비문」의 ‘신래한예(新來韓濊)’ 부분이다. 

「광개토대왕릉비문」의 ‘신래한예(新來韓濊)’에서 한(韓)은 근초고왕이 확장한 황해도와 일부 평안남도 지역, 북한강유역과 남한강유역뿐만 아니라 백제의 본토와 신라의 영토였던 경상북도 일부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가리키며, 예(濊)는 동해안 지역으로 한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로 본다면 ‘신래한예’의 예(濊)는 영서예가 아니다. 광개토왕이 남정하며 탈취의 주 대상을 백제인으로 삼았던 점을 상기해 보더라도 강원 영서와 경기도 북부 그리고 황해도 일부로 영서예를 한정해서 생각하기 어렵다.

『삼국지』 「위서(魏書)」30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예(濊)조와 관련해서는 원문의 “皆以濊爲民”에서 皆(개)자가 포함하는 의미부분이 어디까지인가가 영서예 존립근거의 핵심 사안이다. 이를 문장구조와 번역상의 기법으로 보았을 때, ‘皆以濊爲民’에서 ‘皆(개)’는 복수(複數)를 대신하는 대명사로 도위가 파견되는 일곱 고을을 받는다고 보아야한다. 또한 일곱 고을의 도위를 없앴다는 구절 ‘後省都尉’가 이어지고 있어 문맥의 원활한 흐름에 있어서도, 앞의 문구 ‘自單單大山領以西屬樂浪’까지 포함하여 해석될 여지는 없다.

김창석(2009)은 춘천맥국설의 형성이 고구려화(高句麗化)의 정도가 영동보다 진전된 춘천을 맥족의 근거지로 생각한 신라인의 오인에서 비롯되었으며, 이것이 다시 당(唐)으로 전해져 『고금군국지』에 채록되기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영서예 주장의 심각한 문제는 문헌 어느 곳에서도 ‘영서예’와 ‘영동예’라는 용어의 용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에 대한 부정(否定)에서 출발하는 점에 있다.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 유물과 유적을 신북을 비롯한 춘천 여러 지역에 다양하게 남기며 살았던 족속이 맥족이냐 예족이냐를 가리기에 앞서, 우리나라 최고의 문헌에 나와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일단 부정(否定)하며 자신의 가설을 밀어붙이는 태도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우리나라 현존 최고의 문헌이며 역사적 사실의 근거자료라는 점에서 권위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김창석(2009)은 논문 말미에 “따라서 앞으로 학술적 근거가 있는 반증 자료가 제시되지 않는 한, 춘천맥국설은 6세기 중엽 신라인의 영서예 인식과 대외관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의의를 한정해서 이해해야 한다. 특히 독자적인 왕국으로서 맥국을 설정하는 논의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적고 있다. 

또 김창석(2018)은 ‘맺음말을 대신하여 ; 지역사 연구의 함정’이라 부제를 달고 “첫째, 연구방법이 과학적이어야 한다. 둘째, 역사적 사실과 역사인식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셋째, 특정 지역을 다루더라도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넷째, 지역 정치의 입김에서 벗어나 학문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라고 하며 지역의 연구자를 하급 연구자로 매도하였다.

이러한 지역 연구자에 대한 매도가 과연 타당한지는 논의의 장에 함께 참여하여 그 여부를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