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화
사이트 내 전체검색

2. 문헌자료로 본 맥국

상세정보

1) 광개토대왕릉 비문의 신래한예(新來韓濊)  

김창석(2009)(2018)은 3세기 중엽 백제가 영서예 지역을 잠식해가고, 4세기 초 낙랑 대방군이 소멸하자 고구려와 백제의 상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으며, 5세기 전반까지 고구려의 통제권에 영동예와 영서예 모두 들어갔다고 하였다. 3세기 들어 백제와 고구려가 영서예와 영동예 지역으로 각기 진출하면서 문화적 차이가 심화되었고, 5세기 고구려가 영동과 영서 모두 편입하면서 그간의 문화적 격차를 극복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양 지역의 차이를 종족의 완전한 분화로까지로는 볼 수는 없다고 하며, 「광개토대왕릉비문」의 ‘신래한예(新來韓濊)’를 통해 고구려인들도 영서예를 분명히 ‘예’로 인식했다고 하였다.

김창석(2009)은 414년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릉비문의 수묘인(守墓人) 연호(烟戶) 관련 ‘신래한예(新來韓濊)’부분에 주목하여, 특히 백제 근초고왕대의 영역 확장 과정에서 편입된 곳이 한반도내 예족의 분포상황과 합치된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그 사례 중 하나인 ‘사조성한예(舍蔦城韓穢)’의 경우, 한(韓)과 예(濊)가 섞여 살던 지역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한족 혹은 예족과 같이 하나의 종족으로 구성된 거주지는 ‘한’이나 ‘예’를 붙여 표시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한’ 혹은 ‘예’를 붙이지 않은 지역 가운데는 예족 거주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광개토대왕릉비에서 수묘인연호 관련 부분 원문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守墓人烟戶. 賣句余民國烟二看烟三. 東海賈國烟三看烟五. 敦城民四家盡爲看烟. 于城一家爲看烟. 碑利城二家爲看烟. 平穰城民國烟一看烟十. 此連二家爲看烟. 徘婁人國烟一看烟卌三. 梁谷二家爲看烟. 梁城二家爲看烟. 安夫連卄二家爲看烟. 改谷三家爲看烟. 新城三家爲看烟. 南蘇城一家爲國烟. 新來韓穢, 沙水城國烟一看烟一. 牟婁城二家爲看烟. 豆比鴨岑韓五家爲看烟. 句牟客頭二家爲看烟. 求底韓一家爲看烟. 舍蔦城韓穢國烟三看烟卄一. 古模耶羅城一家爲看烟. 炅古城國烟一看烟三. 客賢韓一家爲看烟. 阿旦城, 雜珍城合十家爲看烟. 巴奴城韓九家爲看烟. 臼模盧城四家爲看烟. 各模盧城二家爲看烟. 牟水城三家爲看烟. 干氐利城國烟一看烟三. 彌鄒城國烟一看烟七. 也利城三家爲看烟. 豆奴城國烟一看烟二. 奧利城國烟二看烟八. 須鄒城國烟二看烟五. 百殘南居韓國烟一看烟五. 大山韓城六家爲看烟. 農賣城國烟一看烟七. 閏奴城國烟一看烟卄二. 古牟婁城國烟二看烟八. 瑑城國烟一看烟八. 味城六家爲看烟. 就咨城五家爲看烟. 彡穰城卄四家爲看烟. 散那城一家爲國烟. 那旦城一家爲看烟. 句牟城一家爲看烟. 於利城八家爲看烟. 比利城三家爲看烟. 細城三家爲看烟.

 

원문 중에서 ‘신래한예(新來韓濊)’부분을 번역101)하면 다음과 같다. 

새로 들어온 한(韓)과 예(穢)(의 연호(烟戶)는 다음과 같다)

1. 사수성(沙水城:사천沙川=彌沙城연천)은 국연 1가, 간연 1가로 한다.

2. 모루성(牟婁城,牟盧城:포천)의 2가는 간연이 된다.

3. 두비압잠한(豆比鴨岑韓:미상)의 5가는 간연이 된다.

4. 구모객두(句牟客頭:미상)의 2가는 간연이 된다.

5. 구저한(求底韓:충남 全義)의 1가는 간연이 된다.

6. 사조성(舍蔦城:장항, 임진성)의 한예(韓穢)는 국연 3가, 간연 21가로 한다.

7. 고모야라성(古模耶羅城:강화도 하음)의 1가는 간연이 된다. 

8. 경고성(炅古城:충남 홍성 결성)은 국연 1가, 간연 3가로 한다.

9. 객현한(客賢韓:회양)의 1가는 간연이 된다.

10. 아단성(阿旦城:광진구아차성)과잡진성(雜珍城:경기부천)은 합하여 10가가 간연이 된다.

11. 파노성(巴奴城:경기 양주)의 한(韓)은 9가가 간연이 된다.

12. 구모로성(臼模盧城:경기 이천)의 4가는 간연이 된다.

13. 약모로성(若模盧城:경기 僧梁)의 2가는 간연이 된다.

14. 모수성(牟水城:장단군 위천리)의 3가는 간연이 된다.

15. 간저리성(干氐利城:황해 토산)은 국연 1가, 간연 3가로 한다.

16. 미추성(彌鄒城:인주 인천)은 국연 1가, 간연 7가로 한다.

17. 야리성(也利城:충남 당진 면천)의 3가는 간연이 된다.

18. 두노성(豆奴城:연기)은 국연 1가, 간연 2가로 한다.

19. 오리성(奧利城:파주 교하)은 국연 2가, 간연 8가로 한다.

20. 수추성(須鄒城:춘천)은 국연 2가, 간연 5가로 한다.

21. 백잔(百殘) 남거한(南居韓)은 국연 1가, 간연 5가로 한다.

22. 대산한성(大山韓城:서산시 대산면)의 6가는 간연이 된다.

23. 농매성(農賣城:횡성)은 국연 1가, 간연 7가로 한다.

24. 윤노성(閏奴城:양구)은 국연 1가, 간연 22가로 한다.

25. 고모루성(古牟婁城:화천)은 국연 2가, 간연 8가로 한다.

26. 전성(瑑城:충남 연산)은 국연 1가, 간연 8가로 한다.

27. 미성(味城:충북 보은 회북면)의 6가는 간연이 된다.

28. 취자성(就咨城:철원 금성)의 5가는 간연이 된다.

29. 삼양성(彡穰城:삼척)의 24가는 간연이 된다.

30. 산나성(散那城:경북 청송)의 1가는 국연이 된다.

31. 나단성(那旦城:울진 평해)의 1가는 간연이 된다.

32. 구모성(句牟城:연천군 연천면 또는 김포)의 1가는 간연이 된다.

33. 간리성(於利城;충남 연산)의 8가는 간연이 된다.

34. 비리성(比利城:충북 충주)의 3가는 간연이 된다.

35. 세성(細城:淸河)의 3가는 간연이 된다.

 

현재 지명을 알 수 없는 5곳102)을 제외하면, 강원 영서지역 6, 경기 황해 서울지역 8, 충청지역 9, 동해안 지역 7곳 등으로 분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와 직간접으로 연관되었을 동해안 지역 7곳을 제외하면, 추정 가능한 23곳은 백제 영토이거나 백제의 지배 또는 강한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던 지역으로 나물 수 있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백제와 연관된 지역을 한(韓)으로 동해안 지역을 예(濊)로 통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창석(2009)의 주장대로 광개토왕릉비문의 ‘신래한예(新來韓濊)’에 언급된 지역을 백제 근초고왕 때 확장된 영역으로만 한정한다면, 백제 본토 9곳과 동해 관련 예(濊)지역을 포괄할 수 없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최범영(미발간논고)은 ‘영서지역은 공취성(攻取城)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 계통의 말갈(맥계 말갈:필자주)이 거주하였기에 고구려와 전쟁을 거의 치르지 않았고, 백제를 공격하거나 영동지역으로 이동하는 고구려군의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이 지역에서 약탈해 수묘인으로 삼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백제가 확장한 영토 내 한(韓)인을 약탈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래한예(新來韓濊)의 한인에 백제의 확장된 영토에서 약취해온 사람을 포괄하여 표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래한예(新來韓濊)의 한(韓)과 예(濊)의 성격을 다음 원문이 잘 보여준다. 

 

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存時敎言, "祖王先王但敎取遠近舊民守墓洒掃, 吾慮舊民轉當嬴劣. 若吾萬年之後, 安守墓者, 但取吾躬巡所略來韓穢, 令備洒掃."

 

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이 생시에 교(敎)를 내려 말하기를, “조왕(祖王)과 선왕(先王)은 다만 원근에 사는 구민(舊民)으로 하여금 묘를 지킴에 청소만을 맡게 하였는데, 나는 이들 구민이 쇠약해질까 염려된다. 만일 내 만년(萬年) 뒤에는(죽은 뒤에는) 안전하게 수묘하는 것은, 오직 내가 몸소 순행하여 약탈해 온 한(韓)과 예(穢)만을 취하여 청소를 준비하게 하라”라고 하셨다.

 

광개토왕은 수묘인으로 몸소 순행하여 약탈해 온 한인과 예인만을 취하여 쓸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있다. 광개토왕이 남정하며 격렬한 싸움을 벌였던 나라는 백제이며, 실질적으로 포로로 잡아온 대상도 예인보다는 한인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것이다. 약탈의 주 대상이 된 한인은 백제 영토 내 한인과 근초고왕 때에 확장한 영토 내 거주 한인으로 보인다. 결국 신래한예(新來韓濊)의 한(韓) 예(濊)는, 백제의 영토와 확장된 영토를 의미하는 한(韓)과 동해안을 근거지로 했던 예(濊)를 지칭하는 말로 보아야 한다. 고구려가 백제의 확장된 영역 안에 있었던 족(族)을 영서예라고 인식하였다는 가설은 성립하기 어렵다.

 

2)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경계(境界) 분석

김창석(2009)은 단단대산령 서쪽에 영서예가 있었다는 근거로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예(濊)조의 “濊南與辰韓 北與高句麗 沃沮接 東窮大海 今朝鮮之東皆其地也”와 한(韓)조의 “桓靈之末 韓濊彊盛 郡縣不能制 民多流入韓國 建安中公孫康 公孫度之子 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 遣公孫模張敞等 收集遺民 興兵伐韓濊 舊民稍出 是後倭韓 遂屬帶方”을 들고 있다.     

앞의 예(濊)조의 내용을 “濊는 남으로 진한, 북으로 고구려ㆍ옥저와 접하고 동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다. 지금 조선의 동쪽이 모두 예의 땅이다.”라고 번역하고, 뒤의 한(韓)조의 내용을 “환제ㆍ영제의 말년에 韓과 濊가 강성해서 郡縣이 제어할 수 없고 (군현의 - 필자. 이하 동일) 백성이 많이 韓國으로 흘러 들어갔다. 건안 연간에 公孫康이 屯有縣을 나누어 그 남쪽의 거친 땅을 帶方郡으로 삼고 公孫模, 張敞 등을 보내 유민을 모아들이고 군사를 일으켜 한과 예를 치니 옛 백성들이 점차 돌아왔다.”라고 하였다. 

이를 두고 김창석(2009)은 “예(濊)는 지금의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하며, “‘신래한예’의 출신 지역은 한강 이북의 경기ㆍ황해 지역 일부 그리고 북한강 유역의 영서 북부 지역이 된다.”라고 하였다.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신래한예’의 출신 지역 전체를 검토하지 않고 추측한 결론에 불과하다. 위에서 인용하고 있는 한(韓)조의 내용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보면, 문헌에서 언급하고 있는 한(韓)은 신라지역의 진한 일부가 포함되며 주로 영토 최대 확장기의 백제를 지칭한 한(韓:마한)을 가리키는 것이며, 예(濊)는 남으로 진한과 접하고 있는 예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래한예의 예(濊)를 지금의 강원도와 경기도 북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설명할 수 없다. 

『삼국지』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동옥저(東沃沮)조에 옥저는 ‘남으로 예(濊) 맥(貊)과 접하고 있다’고 하였고, 『후한서』권85 「동이열전」제75 한(韓)조에 ‘마한(馬韓)은 오십 사개의 나라로 서쪽에 있으며 북으로 낭랑과 접하고 있다’고 하였고, ‘진한은 열두 개의 나라로 동쪽에 있으며 북으로 예맥과 접하고 있다’고 하였다. 예와 접하고 있는 진한은 열두 개의 나라인 반면, 북으로 낙랑과 접하고 있는 마한은 진한보다 그 규모가 네 배 이상 큰 나라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마한의 북쪽인 강원도 영서와 경기도 북부지역에 예(濊)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가정하기는 어렵다. 또 『삼국지』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제30 고구려조에도 ‘고구려는 요동의 동쪽 천리에 있는데 남으로 조선 예맥과 접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동일 서적 내에서 예맥과 예만으로 표기되는 것은, 고조선 시대부터 영서지역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던 맥이 한사군(낙랑)에 예속되면서 독립된 정치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영서내륙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101) 지역 앞 숫자는 필자가 설명의 편의를 위해 부여하였다. 현대지명은 최범영, “광개토왕릉 비문의 지명 연구 : 광개토왕의 남정 과정 복원 시도광개토왕릉 비문의 지명과 4세기말~5세기초 고구려의 영토변화http://cafe.daum.net/jangdalsoo/jCl7/2?q=%E5%8F%A5%E7%89%9F%E5%9F%8E를 참조하여 필자가 부여하였다.

102) 미상지역 5곳은 두비압잠한(豆比鴨岑韓:미상-필자주) 구모객두(句牟客頭:미상:필자주) 구저한(求底韓:미상-필자주) 백잔(百殘) 남거한(南居韓) 간리성(干利城;미상-필자주)이고, 대부분 임진강이나 한강 유역의 한()과 관련된 지역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