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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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춘천의 삼국시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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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양로 가와가마25) 

춘천시 소양로 51-6번지에 소재한 유적이다. 이 유적 서쪽에는 보물 제77호로 지정된 춘천7층석탑이 있으며 이 석탑의 동쪽에서 발굴조사된 기와가마이다. 춘천7층석탑은 고려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 읍지에 충원사(冲圓寺)라 기록되어 이곳의 사찰 이름을 충원사로 불려져 왔다. 그런데 2007년 2월에 기와가마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기와가마 6기, 폐기장 2기, 수혈유두 3기, 부석유구 1기가 조사되었다.

 

명문와는 와요지의 수혈유구에서 출토되었다.26) 명문와는 방곽을 두고 그 안에 「천원지사(天元之寺)」명을 시문하였으며 와도흔은 안에서 밖으로 그었다. 와요지는 전면발굴이 아니고 부분발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조성시기를 명확히 밝힐 수 없으나 통일신라기로 발굴자는 보고하였다. 이 와요지가 주목받는 것은 이 와요지로부터 서쪽으로 40m정도 떨어진 곳에 고려전기로 보여지는7층석탑(보물제77호)27)이 현존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탑이 속한 사지명이 冲圓寺址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명은 세부적인 검토가 이루어진 바 없이 일부 연구자들에 의하여 사용되고 있다. 충원사에 관련한 자료는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것이 가장 오랜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자료 16】‘冲圓寺 : 봉의산 서쪽에 있다. 형기를 찾을 수 없다.’28)

 

【자료 17】‘冲圓寺 : 봉산의 서쪽에 있다. 인조 계해년 초에 忠原縣監 柳鼎立이 벼슬에서 쫓겨나 이곳에 와서 寓居하기 위해 터를 닦을 때, 땅을 파다 佛器를 얻었는데 銘에 이르기를 「신라 충원사(新羅 冲圓寺)」라고 되어 있어 비로소 그 옛터임을 알게 되었다. …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29)

 

위의 자료에서는 봉의산 서쪽에 있는 폐사지가 충원사라고 하였으나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자료에서는 사명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아래와 같다.

 

【자료 18】‘사지(寺址) 당간(幢竿) 탑(塔) : 부내면 전평리 요선당리 : 사명을 알 수 없고, 봉의산의 서쪽 기슭에 있다. … 당간은 지주(높이 10척, 폭 2척 5촌, 두께 2척)와 팔각의 간대(연화문 있다)의 탑은 높이 약 19척, 기단부 지름 8척 7중방탑으로써 약간 기울어져 있음에도 완전하다.’30)

 

위의 자료를 검토하면 충원사라는 사명과 사명을 알 수 없다는 서로 다른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차이점은 자료 16․17에서 보듯이 유적에 대한 소개없이 봉의산 서쪽이라고 하였고, 자료 18은 당간지주와 석탑을 지칭하면서 사찰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 자료가 모두 소양로 7층석탑이 있는 유적을 지칭하는지는 현재 알 수 없지만 탑이 있는 곳이 폐사지이므로 문헌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전칭하여 왔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천원사(天元寺)」명와가 출토된 와요지가 석탑과 약 40ⅿ정도 떨어져 있다. 현재까지 이 와요지 인근에서는 폐사지가 조사보고된 사례가 없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봉의산 계곡의 물과 화목이 풍부했을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사찰에 이 명문와를 사용하기 위하여 굽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명문와는 7층석탑이 건립된 사지의 사명으로 비정해도 무리가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말하면 이 사지는 신라말에는 「天元寺」라는 사명을 사용하였다가 충원사라는 사명이 사용되었다면 어느 시기엔가 사명이 변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춘천 관내에는 신라에 겁립된 탑은 현재꺠지 확인되지 않았으나 청평사 3층석탑(강원도문화재자료 제8호), 춘천 서상리 3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호)가 있다. 신북읍 고성리 용화산 자락의 양통마을에 상대갑석만이 남아 있어서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없으나 통일신하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25) 예맥문화재연구원, 『춘천 소양로 유적』, 2009.

26) 예맥문화재연구원, 春川 昭陽路遺蹟-춘천 소양로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예정부지내 유적 발굴조사보고서, 2009, 131132.

27) 이 탑의 특징적 요소로 상대갑석은 다른 부재와 석질이 다르고, 모직임의 방식이 상하대갑석이 다르게 치석되었다. 그리고 1층부터 4층까지 아래층 옥개석과 윗층 탑신석이 같은 돌로, 5층부터 7층까지는 각기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또한 57층 옥개석에 모두 찰주공이 있다. 찰주공이 2개인 것은 5층 석탑을 7층석탑으로 증축한 증거로 판단된다.

28) 오강원 역주, 조선환여승람, 『춘천지리지』, 춘천시, 1997, 490.

29) 율곡학회 역, 『國譯 江原道誌』, 강원도, 2005, 803·원문317.

30) 조선총독부,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1942, 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