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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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춘천의 삼국시대 유적

상세정보
1) 옥천동 고분군
춘천시 옥천동 산1번지에 소재한다. 한림대학교 박물관 뒤편 봉의산 산록에서 1984년 한림대학 지하물탱크 공사 중에 석곽의 일부가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16) 모두 5기의 석곽묘가 발굴조사 되었고 총 20여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는데 소형대부장경호(小形臺附長頸壺) 1점, 유개고배(有蓋高杯) 12점, 우각형파수부발(牛角形把手附鉢) 1점, 잔 1점, 병 2점, 적색연질호형토기 2점, 사발 1점이다. 특이한 점으로 3호 석곽 내에서 청동기시대 무문토기편이 수습되어 이 시기의 주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17)

2) 동면 만천리 석실분18)
동면 만천3리 마을의 서북쪽 야산에 위치한다. 한림대학교에서 1995년 발굴조사된 유적으로19) 2기가 조사되었다. 1호분은 시상(屍床)까지 도굴되면서 파괴된 상태였다. 석실 내부는 동-서 110㎝, 남-북 160㎝이다. 연도는 우편도로로 폭은 약 80㎝이다. 2호분은 석실 내부가 동-서 128㎝, 남-북 159㎝이고 연도는 우편연도이다. 폭은 약 68㎝이다. 2호분의 시상은 완전히 남았는데 남-북 161㎝, 동-서 약 76㎝이다.
고분의 축조는 경사진 명갈색점토층을 ‘ㄴ’자로 파고 들어가 축조하였다. 공반 유물이 없어 축조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연도가 우편연도이고 2호분의 영우 좌측에 시상이 형성되어 있는 점으로 볼 때 서면 방동리 고분과 신매리 고분과 일치하는 점이 많다. 이로 고구려계로 추정하고 있다.20)

3) 서면 방동리 고분21)
서면 방동리 816번지에 위치하며 강원도문화재자료 106호로 지정되었다. 장절공 신숭겸 묘의 재실 서쪽 끝 산록에 있는데 2기가 동-서로 있다. 발굴조사 결과 모두 동편연도의 단실묘이며 약간만 다듬은 할석을 사용하였다.
구조체가 1호분 보다 온전한 2호분을 먼저 보면, 방대형(方臺形) 석축기단의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간 위에 석실이 위치하는 형태이다. 석실 바닥의 크기는 동-서 130㎝, 남-북 210㎝, 현존하는 말각조정식 천정돌의 바닥면에서 석실 바닥면까지의 깊이는 134㎝이다. 연도의 길이는 230㎝, 폭은 60㎝ 내외이고 연도의 석축 높이는 110~130㎝이다. 석실 내부 바닥의 서측에 조성된 시상은 크고 작은 할석을 깔아 조성하였다. 넓이로 보아 2인의 시상으로 추정된다. 천저가구는 말각식 천정으로 석실 북쪽 부분의 대형 판석 두 개가 원위치에 놓여 있고 나머지 대형판석 두 개는 유실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청동세편, 회색연질토기, 회흑색 연질 토기편이다.
1호분은 2호분 서쪽 19m 지점에 위치하며 형식과 구조는 1호분과 동일하다. 동편 연도의 단실분으로 2호분과 같이 천정은 말각식이며 북쪽의 개석 2개만이 원위치에 놓여 있다. 1호분은 2호분 보다 규모가 작고 축조 방식이 훨씬 뒤떨어진 것으로서 2호분과 같이 모두 도굴되었다. 시상이 확인되지 않았으나 바닥에 납작한 소형할석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시상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석실 바닥 평면의 크기는 125×175㎝, 현존하는 말각조정식 천정석의 바닥면에서 석실 바닥면까지의 깊이는 120㎝, 연도의 길이는 175㎝, 연도의 폭은 60㎝ 내외이다. 연도 석축의 높이는 70~80㎝이다.
고분의 축조시기는 광개토대왕이 한강을 진출하여 장수왕대에 한강유역을 장악한 시기와 북한강 상류의 말각조정식 단실분의 축조를 볼 때 6세기 중엽으로 추정하였다.

4) 서면 신매리 고분군
서면 신매리 177-6번지에 위치하는 고분으로 강원도 기념물 제46호이다. 1982년 농경지 정리작업 중에 확인되어 긴급 수습발굴된 유적이다. 보고서에 당시의 문화재 안내문이 인용되었는데 이를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22)

봉분은 남아 있지 않으며 불도저의 날에 석실 뚜껑이 걸려서 발견되었다. 석실의 천장석은 당시 지표하 1m 깊이에 놓여 있었는데, 천장의 개석을 들어내자 석실의 내부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었으며 연도부에는 모래가 충진되어 있었다. 이 고분은 지상에 축조된 것으로 현실벽은 북벽과 동, 서벽은 자연석을 4~5단으로 쌓았고, 단과 단 사이는 회반죽을 두껍게 깔았다. 연도는 남벽에 설치되었는데 현실벽과 연도 양벽을 설치한 후 연도부의 상면을 커다란 판상석을 두 개로 덮었다. 현실 천장은 연도에서 현실 쪽으로 약간 들어 온 연도부 천장석에 연이어서 판상석을 석실의 네모서리에 걸쳐서 천장 구멍을 좁힌 후에 다시 동일한 방식으로 판상석 5개로 구멍으로 더 좁혀서 마지막으로 판상석 한 장으로 가운데를 막았다. 석실 바닥 평면은 구형이고 규모는 북벽 길이가 140㎝, 서벽 길이가 188㎝, 남벽이 80㎝, 그리고 높이가 142㎝이다. 연도 서벽 길이가 208㎝, 현실 동벽을 포함하 동 개체분의 인골편만이 발견되었을 뿐 처녀분인데도 부장유물이 없었다.

5) 증리 고분군
신동면 증리 진병산록에 소재하며 강원도 기념물 제45호이다. 낮은 산언덕 능선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삼국시대의 무덤들이다. 오랜 세월로 무덤 위에 올렸던 봉토는 대부분 유실되었고, 당시 사용되었던 돌 재료들이 일부 땅 위에 노출되어 있었다. 1980년에 우연히 이곳에서 파괴된 무덤과 함께 유물이 수습되어 부분적으로 무덤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 구조는 시체를 넣는 돌방(석실)을 쌓아 올리는 말각조정으로 되어있다. 춘천 증리 무덤들은 이 일대의 무덤 성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는 곳이다. 조사보고된 고분은 모두 14기라고 하는데 현지의 상황은 14기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보고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23)

1·2호분 : 구릉의 꼭대기에 위치한다. 2기 모두 석곽이 노출되어 있는데 둘 사이의 거리는 약 6m이다. 발견 당시에는 동쪽의 고분은 대형의 개석이 비스듬히 노출되어 있었으며 그 좌우에 작은 할석들이 흩어져 있고 남-북 약 2m의 석열이 노출되어 있었다. 개석은 약 80×70㎝ 정도가 노출되어 있었다.
고분의 주위에는 잣나무와 소나무가 밀식되어 자라고 잎이 두텁게 쌓여 있어 현재는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다.

3호분 : 1·2호분에서 약 100m 북쪽의 비탈 경사면에 고분용 석축들이 무너져 노출되어 있다. 비탈의 끝에 석열이 직선으로 남아 있는데 봉분의 흔적도 남아 있다.

4호분 : 3호와 비슷한 등고선 높이에서 동쪽으로 약 20m 거리에 1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할석들이 흩어져 있다.
5호분 : 봉분의 둘레가 약 10m 정도이다. 게석의 길이가 동-서 140㎝, 남-북 60㎝, 두께 25㎝ 정도이고 개석의 남쪽 밑에 석열이 드러나 보인다.

6호분 : 5호분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10m 거링 위치한다. 경계는 불분명하나 봉분의 윤곽이 넓게 퍼져 있으며 개석의 크기는 120×90㎝, 두께는 20㎝이다. 개석 주위에는 석축 잔재들이 10×10m 범위에 흩어져 있다.

7호분 : 6호분으로부터 서쪽으로 20m 거리에 장방형의 석실이 파괴된ㄴ 상태로 남아 있다. 장벽의 길이는 약 240㎝, 단벽의 길이는 약 130㎝이다. 잔존 높이는 약 60㎝이다.

8호분 : 7호분으로부터 서쪽으로 약 30m 거리에 위치하며 중앙부에 도굴 구덩이가 있다.

9호분 : 7호분으로부터 약 25m 거리에 뚜렸한 윤곽의 봉분이 남아 있으며 중앙부에 천정개석으로 보이는 편평석이 놓여져 있다.

10호분 : 9호분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m 거리에 위치하며 봉분의 윤곽은 추정할 수 없으나 할석들이 봉분 주위에 놓여 있다.

11호분 : 10호분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30m 거리에 위치한다. 한 곳에 크고 작은 할석들이 직경 약 2m의 범위 안에 쌓아 올려져 있다.

12호분 : 11호분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0m 거리에 위치한다.

13호분 : 12호분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30m 거리에 위치한다.

14호분 : 13호분으로부터 북쪽으로 약 10m 거리에 위치한다. 도굴의 흔적이 남아 있다.​

 

16) 한림대학교 박물관, 『한림대 박물관보』, 1985.

17) 한림대학교 박물관,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7, 87~88.

18) 한림대학교 박물관,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7, 88.

19) 한림대학교 박물관, 『춘천 동면 만천리 고분 발굴조사 보고서』, 1995.

20) 한림대학교 박물관,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7, 88.

21) 한림대학교 박물관, 『방동리 고분 발굴조사 보고서』, 1995.

김원룡, 춘성 서면 방동리 고구려식 석실분 2, 『고고미술』149, 한국미술사학회, 1981, 1~5.

노혁진 외, 강원도 춘천군 방동리의 특이구조 석실분, 『고문화』42·43, 1993, 79~103.

오강원, 춘천 방동리 석실분에 관한 약간의 고찰, 『춘주문화』11, 춘천문화원, 1996, 117~145. 

한림대학교 박물관,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7, 88~90.

22) 조유전, 춘성군 신매리 고구려식 석실분 일례, 『삼불 김원룡교수 정년기념퇴임논총』(고고학편), 1987, 450~466.

김진정 외, 춘성군 신매리 고구려식 석실분 출토 인골, 『삼불 김원룡교수 정년기념퇴임논총』(고고학편), 1987, 467~474.

한림대학교 박물관,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7, 91~92.

23) 한림대학교 박물관,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7, 92~95.